| ▲ 싱가포르 마리나베이 샌즈 앞에서 바라본 중앙업무지구(CBD) 전경. <비즈니스포스트> |
[싱가포르=비즈니스포스트] “싱가포르는 아시아 금융시장 성장의 과실을 가장 크게 누린 곳이다.”
6월10일, 싱가포르 중앙비즈니스지구(CBD) 내 금융중심지 래플스플레이스에서 만난 테렌스 탄 미래에셋증권 싱가포르법인 디지털사업 총괄헤드는 아시아의 부(富)가 빠르게 팽창하는 흐름 속에서 가장 큰 수혜를 입은 나라로 싱가포르를 꼽았다.
아시아의 고액자산가들이 늘기 시작하면서 싱가포르의 금융시장도 한 단계 도약했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고액자산가 증가는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시아 신흥 부자층은 빠르게 늘었고, 2010년대 들어서는 전통적 부의 중심지였던 북미를 앞지르기 시작했다.
글로벌 컨설팅업체 캡제미니와 RBC자산운용의 ‘세계 부 보고서(World Wealth Report)’에 따르면, 2014년 말 기준 아시아의 백만장자 수는 467만2천 명으로 조사가 시작된 1997년 이래 처음으로 북미지역(466만5600명)을 추월했다.
더군다나 아시아의 금융자산은 앞으로도 북미와 유럽보다 더 빨리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의 ‘2025 글로벌 자산 보고서’를 보면 앞으로 5년 동안 아시아·태평양 지역 금융자산은 연평균 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이는 북미(4%)와 유럽(5%)를 두 배 가량 웃도는 수준이다.
싱가포르의 금융산업이 발달한 배경으로는 낮은 세율과 친기업적 규제 환경 등 정부 주도 성장이 가장 먼저 꼽힌다. 하지만 아시아의 큰손들이 싱가포르로 몰리는 데는 '안전성', 즉 지정학적 요인도 빼놓을 수 없다.
권기정 NH투자증권 싱가포르법인장은 "2020년 홍콩 국가보안법 시행을 계기로 중국 자본이 많이 유입됐고, 중동지역 불안을 피하기 위해 이슬람 자본도 싱가포르로 유입됐다"고 말했다.
최근 중동 지역 지정학적 불안도 싱가포르의 자산 보관처로서의 매력을 다시 부각시키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싱가포르에서 만난 국내 금융사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구도 속에서 스위스처럼 실리를 취하는 국가”라며 “최근 이란 전쟁에서 이슬람 금융 중심지 가운데 하나인 두바이도 지정학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않았는데, 이처럼 국제 정세 불확실성이 커질수록 아시아의 안정적 자금 보관처로서 싱가포르의 위상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처럼 아시아 고액자산가들이 안정성과 중립성을 갖춘 싱가포르로 눈을 돌리면서 현지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한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현재 싱가포르에는 앞서 소개한 미래에셋증권, NH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한화자산운용 외에도 10여 개의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가 현지 법인 형태로 진출해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다.
| ▲ 싱가포르는 아시아 부자들이 몰리면서 고액자산가들의 자금을 관리하는 '패밀리오피스'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사진은 싱가포르 ‘마리나베이샌즈 쇼핑몰(The Shoppes at Marina Bay Sands)’ 전경. <비즈니스포스트> |
한국투자증권 싱가포르법인은 국내주식 브로커리지(위탁매매)를 중심으로 사업을 펼치고 있다. 리서치, 기업공개(IPO) 등의 분야에서 한국 본사와 시너지를 활용해 한국 시장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을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이 주된 일이다.
키움증권 싱가포르법인은 헤지펀드, 펀드오브펀드(재간접펀드), 인도펀드 등을 3대 축으로 운용하고 있다.
키움증권 싱가포르법인에 따르면 헤지펀드는 미국·아시아 기술주 중심 설립 이후 두 자릿수의 누적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재간접펀드는 인도·동남아·중국의 유망 벤처·사모 운용사에 투자하고 있고 인도펀드는 현지 상장주식과 IPO에 참여하고 있다.
대신증권은 주식이나 채권이 아닌 대체 상품 발굴 및 투자에 집중하고 있고 하나증권은 자산운용업을 중심으로 경쟁력을 확대하고 있다.
KB자산운용은 크레딧 펀드 위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다. 크레딧 펀드는 기업대출, 회사채, 메자닌(전환사채·신주인주권부사채 등) 같은 ‘신용·채권성 자산’에 투자하는 펀드를 말한다.
이지스자산운용 싱가포르법인은 아시아지역 데이터센터 분야를 중심으로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데 향후 자산투자(PropCo)와 운영플랫폼투자(OpCo)를 결합한 투자방식도 검토하고 있다.
단순한 부동산 자산 투자에 머무르지 않고 자산 가치 제고와 운영 경쟁력 확보를 동시에 추구하겠다는 전략이다.
데이터센터처럼 전력 가용성, 냉각 효율, 보안 등 운영 역량이 자산 가치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분야에서는 자산과 운영 플랫폼을 함께 확보하는 사업 모델이 중요해지고 있다.
타임폴리오자산운용은 국내 헤지펀드 운용사 가운데 현지에서 기반을 단단히 다진 곳으로 평가된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자체 운용으로 2025년 1조 원 규모 수탁고를 달성하는 성과를 거뒀다.
이처럼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들은 싱가포르를 아시아 투자 기회를 발굴하고 글로벌 자금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싱가포르에 진출한 한 국내 금융사 관계자는 “싱가포르는 한국, 일본, 대만, 중국, 인도, 동남아시아를 아우르는 비미국권(Non-US) 시장의 허브”라며 “이 권역이 글로벌 인구와 경제, 자본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만큼 싱가포르를 찾는 국내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민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