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현암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회장 탄생 100주년 기념식에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아들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
[씨저널] 김종희 한화그룹 창업회장은 1922년 11월12일 아버지 김재민씨와 어머니 오명철씨 슬하 4남1녀 가운데 차남으로 태어났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당숙 김봉서씨의 추천과 고이케 쓰루이치 경시의 소개로 1942년 서울 남대문에 있었던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에 입사했다.
조선화약공판주식회사는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세운 회사로 당시 국내에서 유일하게 화약을 공급하던 곳이었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구매부서 경리로 배치됐으나 당시 인천공장 공장장을 지낸 마쓰무로 노부오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면서 화약을 공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44년 1월에는 마쓰무로의 추천으로 생산부 다이너마이트계의 계장으로 승진했다. 광복 당시 마쓰무로는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평소 신뢰했던 김종희 창업회장에게 회사를 지켜줄 것을 당부했다고 전해진다.
마쓰무로는 "조선이 앞으로 자주적으로 독립을 하려면 산업을 일으켜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화약산업이 반드시 필요하므로 일본인들이 모두 회사에서 손을 떼더라도 남아서 지켜주게"라고 말했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김종희 창업회장은 광복 뒤에도 자리를 지켰고 지배인이 됐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김종희 창업회장은 가족과 직원 5명을 데리고 부산으로 피난길을 떠났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피난지 부산에서 친분이 생긴 미8군 스미스 소령을 만나 미8군과 '군수용 화약관리 용역계약'을 맺게 된다.
6·25 전쟁이 끝날 무렵 정부는 조선화약공판을 민간에 판다는 공고를 냈고, 김종희 회장은 이 회사를 인수하기로 마음먹었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1952년 인수한 회사가 오늘날 한화그룹의 모태가 된 한국화약이다.
당시 강성태 상공부 장관은 김종희 창업회장에게 복구비용 전액을 지원해줄테니 인천에 있는 화약공장 복구사업을 맡아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전해진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복구를 위한 설계도를 얻기 위해 인천 화약공장을 설계한 회사인 '일본유지'를 방문했다.
당시 일본유지에는 광복 이전에 함께 근무했던 마쓰무로가 상무로 일하고 있었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설계도를 입수해 복구작업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숱한 어려움 끝에 1957년 10월에는 다이너마이트 생산에 성공하는 쾌거를 이뤘다.
김종희 창업회장은 부인 강태영씨와 결혼해 슬하에 김영혜,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호연 빙그레 회장 등 2남1녀를 두었다. 3남매 가운데 장녀 김영혜씨는 이후락 전 중앙정보부장의 차남 이동훈 전 제일화제 회장과 결혼했다.
이동훈 전 회장과 김영혜씨의 장남 이제환씨는
손경식 CJ그룹 회장 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큰 딸 손희영씨와 결혼했다.
이후락 전 부장의 다섯째 아들 이동욱씨의 부인은
최종건 SK 창업회장의 막내딸 최에정씨다. 그리고 이후락 전 부장의 장남 이동진씨는 서정귀 전 호남정유 회장의 딸 서옥로씨와 혼인했다.
서정귀 전 회장은 김종희 창업회장의 장남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인 서정화 전 내무부장관과 6촌 관계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서정화 전 내무부장관의 딸 서영민씨와 결혼해 슬하에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김동원 한화생명 최고글로벌책임자 사장,
김동선 한화갤러리아 부사장 등 세 아들을 두었다.
김종희 창업회장의 차남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국회의원을 지냈다. 김호연 빙그레 회장은 김구 선생의 손녀이자 김신 전 교통부 장관의 막내딸인 김미씨와 혼인해 슬하에 김동환, 김정화, 김동만 등 2남1녀를 뒀다.
김미씨의 큰어머니는 안중근 의사의 조카인 안미생씨다. 조장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