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오용석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이 29일 서울 종로구 관광플라자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 공약 전수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오는 6월3일에 열리는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출마한 광역·기초 지방자치단체장 후보들이 말로는 기후 대응을 약속하면서도 실질적 이행 대책은 마련하지 못했다는 환경시민단체의 분석이 나온다.
국내 환경시민단체들은 한국의 재생에너지 전환에 중앙정부뿐 아니라 지자체 역할이 중요하다고 보고 있는데 현재 지방선거 공약은 한 마디로 '속 빈 강정'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중앙정부에서 추진하는 2030년 재생에너지 보급 목표를 달성하는 일에도 비상등이 켜졌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 탄소중립 로드맵 제시한 후보는 단 3.4%에 머물러
29일 녹색전환연구소, 더가능연구소, 로컬에너지랩 등 국제환경단체의 연합체인 기후정치바람은 서울 종로구 관광플라자에서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후보의 기후대응 공약을 전수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오용석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이 자리에서 "2030년까지 우리나라가 약속한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달성하려면 굉장히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며 "그래서 이를 이행하기 위해서는 지자체장 후보들이 목표 달성을 이행할 실질적 기후대응 공약을 집중적으로 낼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전수조사를 진행한 결과 탄소중립 로드맵을 공약에 포함한 후보는 전체의 단 3.4%에 그쳤다.
온실가스는 산업단지, 도시 밀집 지역으로 갈수록 배출량이 더 높아지는데 도시 지자체일수록 오히려 기후 관련 공약 비중이 적었다.
기후정치바람에 따르면 재생에너지 전환 관련 공약을 낸 후보는 전체의 40.1%였는데 이 가운데 대다수가 농촌에 집중됐다.
특히 전력 소비 문제와 직결된 가정용 태양광 지원 등 도시형 에너지전환 모델을 내건 도시 후보는 단 1명에 불과했다.
또 도심지에서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부문인 건물 관련 공약을 제시한 후보도 전체의 7.2%에 그쳤다.
수송부문 관련 기후공약을 낸 후보는 전체의 60.7%로 과반수를 넘었으나 대체로 대중교통 확대, 교통비 할인 등 복지 지원책에 집중됐다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전기버스 확대 및 차 없는 거리 조성 등 실질적 온실가스 감축 수단을 명시한 후보 비중은 2.1%에 불과했다.
오용석 부소장은 "인구 밀도가 높은 지역의 에너지 전환 공약이 거의 나오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오 부소장은 "건물 부문에서 기후 대응 공약의 절대 숫자도 적었던 것뿐 아니라 '반기후공약'이 많았다는 문제도 컸다"고 지적했다.
◆ "기후 공약은 부실, 반기후 공약은 풍성"
기후정치바람은 재개발·재건축, 신규 설비 건설, 석탄발전소 수명 연장, 데이터센터 유치 등 지역의 온실가스 배출을 도리어 늘릴 수 있는 공약을 반기후공약으로 분류한다.
전체 후보들 가운데 이런 반기후공약을 낸 후보 비중은 46.0%로 절반에 육박했다.
특히 골프장 건설이나 확충 공약이 많았다. 전국 173개 지역에서 후보 253명이 골프장 관련 공약을 내놨다.
서울 노원구의 한 후보는 지역 내에 '한국형 디즈니랜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오 부소장은 "여기에 더해 도시가스, 주민 생활편의 기초시설 확대, 케이블카, 관람탑 조성 등 다양하게 온실가스 배출을 늘릴 수 있는 반기후공약들이 쏟아졌다"고 지적했다.
오 부소장은 "문제는 유권자들이 이같은 공약들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시간이 이번 지방선거 기간 동안에는 부족했다는 점"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후보들의 공약집 발표는 심각하게 지연됐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통상적으로 선거 30일 전에 공개되던 공약집이 이번 선거에서는 15일전에 공개됐기 때문이다.
지자체의 기후 대응 공약이 부실하게 준비되면서 중앙 정부가 내놓은 2030년 온실가스 감축과 재생에너지 확충 목표 달성에도 비상등이 켜졌다는 시각이 나온다.
| ▲ 각 기후공약별 비중을 나타낸 그래프. 탄소중립 달성을 약속한 후보는 전체 624명 가운데 단 21명에 불과했다. <기후정치바람> |
◆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불협화음에 에너지 전환에 비상등 켜져
한국 정부는 2021년 10월 국제사회에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40% 감축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계획 발표 당시 정부는 이 목표를 실질적으로 이행하기 위해 2030년까지 국내에 재생에너지 설비용량 72.7GW, 친환경차 450만 대, 그린리모델링 건물 160만 호를 공급하겠다고 선언했다.
목표 달성 시점까지 5년이 채 안 남은 현재 국내 재생에너지 설비용량은 37GW, 친환경차 보급대수는 100만 대, 그린리모델링 가옥 공급 달성률은 10%에 그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앞서 지난 19일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제1차 재생에너지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2030년 재생에너지 보급목표를 100GW까지 확대하겠다고 발표했다.
문제는 기후정치바람의 공약 조사에서 드러났듯이 이를 달성해야 할 실질적 이행주체인 지자체장 후보들의 의지가 저조하다는 점이다.
윤순진 에너지전환포럼 공동상임대표는 최근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역 주민의 이익 공유 부지 선정, 주민 수용성 문제 해결 등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실질적 계획 이행은 모두 지방에서 한다”며 “100GW 목표는 중앙 정부의 의지만 가지고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국내 기후 싱크탱크들은 지자체가 재생에너지 비중을 채워야 할 실질적 의무와 권한을 부여받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현행 탄소중립기본법은 지자체가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내용까진 명시하지 않아 지자체들이 이를 이행할 동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은 지자체 재생에너지 전력자립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파악된다. 재생에너지 전력자립률이란 한 지역 내에 총 전력 소비량 가운데 재생에너지 생산량을 말한다.
에너지전환포럼과 그린피스가 지난 21일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재생에너지 전력자립률이 30%를 넘는 광역지자체는 경상북도 단 한 곳에 불과하다.
지자체들이 말로는 중앙정부의 탄소중립 계획에 동참하겠다면서 실제 행동에는 나서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특히 온실가스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인천, 서울, 경기도 등 수도권 광역 지자체의 재생에너지 자립률은 한 자릿수에 불과했다.
임재민 에너지전환포럼 사무처장은 “지역의 책임과 권리를 명확히 해야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세울 수 있다”며 “재생에너지 보급량을 늘려야 한다고 요구해도 지자체들이 실질적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지 못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녹색전환연구소가 올해 2월에 발표한 보고서를 봐도 전국 지자체의 2030년 기준 온실가스 감축 이행률은 25.3%에 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과 같은 상태라면 지자체들은 국가목표인 40%는 고사하고 30%에도 못 미칠 것이라는 뜻이다.
실제로 현재 기초 지자체 226곳 가운데 2030년 40% 감축목표를 이행하겠다고 선언한 곳은 단 23곳에 불과하다.
오용석 부소장은 "이제는 구조적 전환을 위한 기후 대응 공약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이런 공약을 내건 후보들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