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시민사회 관계자들이 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정부의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공론화 졸속 추진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앞에 놓인 빈 의자에는 각 의제들이 쓰여 있는 팻말이 올려져 있는데 의제만 있고 이를 책임있게 수행해야 할 사람들은 부재하다는 것을 나타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정부와 국회가 헌법재판소 결정에 따라 국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기본법을 개정해야 하는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에 국민 목소리를 반영한다는 명목으로 공론화를 추진하고 있는데 시민사회는 고작 한두 달에 불과한 기간 동안 여론을 듣겠다는 것은 졸속 처리에 불과하다고 날을 세우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산업계의 어려움을 고려해 기후 위기 대응에 다소 미온적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21일 기후위기비상행동, 플랜1.5,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 공론화 절차가 졸속 추진되고 있다며 정부와 국회에 이를 바로잡을 것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앞서 2024년 8월 헌법재판소는 청소년, 아동, 시민단체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에서 탄소중립기본법 제8조가 헌법에 불합치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정부와 국회가 2031~2049년까지 기간 동안 구체적 탄소 감축 계획을 설정하지 않아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갈 국민의 권리를 침해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에 따라 국회는 2026년 2월 말일까지 이를 보강한 탄소중립기본법 개정안을 확정해야 한다.
이를 놓고 최창민 플랜1.5 정책활동가는 "정부가 5년 단위로 그때그때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정하는 방식은 산업계의 부담과 같은 단기적 이익에 휘둘려 미래에 지나친 부담을 떠넘길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것"이라며 "하지만 정부는 국회 개선입법에 한 발 앞서 지난 12월에 2035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에 제출한 바 있다"고 설명했다.
2035 NDC는 2018년 대비 53~61%라는 범위 목표로 설정됐다. 이처럼 범위 형식의 목표로 설정된 이유는 정부가 국제 기후대응에 부합하는 목표를 설정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와 지나친 부담을 주는 목표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산업계 사이에서 절충안을 내고자 했다는 시각이 많다.
이런 점을 놓고 최 활동가는 "실질적으로는 배출권거래제 등 규제와 연동된 목표 하한선인 53%가 정부의 본심"이라며 "이같은 목표는 헌재 결정 이전의 기존 선형감축경로에서 단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한 수치"라고 강조했다.
선형감축경로란 온실가스 배출량을 지속적으로 일정한 비율로 감축해 나가는 방식을 말한다. 한국은 2030년 40% 감축 목표 수준에서 선형감축경로를 채택한다면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최 활동가는 "결국 정부는 산업계의 저항과 단기적 상황 논리에 또다시 굴복한 것"이라며 "기후위기 피해 당사자인 국민의 희망은 다시 한 번 절망과 낙담으로 꺾였다"고 비판했다.
현장에 참석한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정부가 표면적 공론화라며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척만 하면서 정부가 노골적으로 기업과 산업계의 편만 들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 ▲ 최창민 플랜1.5 정책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홍지욱 민주노총 기후특위 부위원장은 "기후위기에 따른 재난과 피해가 불가항력 상황으로 치닫고 있고 여전히 기후위기의 주범인 재벌과 기업의 책임은 부과되지 않은 채 정부는 산업의 성장 속도만 강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홍 위원장은 "모든 국민의 현재와 미래의 정의로운 삶을 결정지을 수 있는 탄소중립기본법을 개정해야 할 국회마저 당사자인 노동과 다양한 시민사회 참여를 배제하고 졸속 입법으로 가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이한소영 여성환경연대 상임대표도 "앞서 수립됐던 2035 NDC의 사례만 봐도 기후위기의 절박함을 고려하면 실제 이행해야 하는 것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며 "형식적인 공론장이 여덟차례나 열렸지만 발언권은 산업과 기술 중심이었고 청년, 여성, 농민, 돌봄 책임자, 지역, 장애인들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시민사회는 정부가 산업계와 기업의 입장에 편향된 자세를 버리고 투명한 공론화의 장을 신속히 마련할 것을 촉구했다.
현장에 참석한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이전에 있었던 공론화 과정을 보면 산업계와 전문가가 제공하는 정보를 참고하는 비중이 압도적이었고 감축 비용과 기술적 어려움에 편중된 이같은 정보는 시민들을 겁박했다"며 "반면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와 적응의 부담, 국가간 및 세대간 감축 부담의 공정 배분에 대한 논의는 의도적으로 배제됐다"고 비판했다.
이 관계자는 "대국민 논의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정작 기후위기의 직격탄을 맞는 당사자와 후발세대의 목소리는 들러리로 전락하고 있다"며 "2035 NDC 공론화 당시 정부 공식 온라인 의견 수렴 결과만 보더라도 95%의 참여자가 65% 감축안을 지지했다는 사실이 정책 결정 과정에서는 완전히 무시됐다"고 주장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