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희헌 기자 gypsies87@businesspost.co.kr2025-12-01 15: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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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이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몰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대관에만 집중한 사이 기본을 놓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김범석 쿠팡Inc(쿠팡 모회사) 이사회 의장이 10년 넘게 공들여 쌓은 탑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국내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계기로 김범석 의장이 그동안 사실상 외면했던 쿠팡의 크고 작은 논란들이 수면 위로 동시에 떠올랐다. 충성고객조차 안티팬으로 돌아설 태세다.
과징금과 보상안 등 단기적으로 안게 될 금전적 부담도 상당하지만 문제는 따로 있다. 단단해 보였던 회사와 소비자 사이의 신뢰에 생긴 균열을 어떻게 회복하느냐가 관건이다.
1일 이커머스업계 안팎의 얘기를 들어보면 11월29일 불거진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파장과 관련해 그동안 김범석 의장이 몰두해온 ‘양적 성장’의 한계가 보인다는 평가가 상당하다.
쿠팡에서 이름과 전화번호, 집주소 등과 같은 고객 3370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태껏 쿠팡은 무엇을 하고 있었냐는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분기마다 매출 10조 원 이상을 내는 규모의 회사로 컸음에도 사태를 수습하는 방식이 소비자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현재까지 쿠팡이 공식적으로 한 일은 개인정보가 유출됐다고 인정한 것과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을 내놓은 것이 전부다.
소비자들은 어떻게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지 몰라 우왕좌왕하고 있다.
쿠팡은 카드 정보와 결제 정보, 암호 등 로그인 관련 정보는 노출이 없었다고 해명하고 있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어떻게 해야 2차 피해를 방지할 수 있을 지를 놓고 쿠팡측의 설명이 없다 보니 ‘등록 결제카드 정보를 삭제해야 한다’, ‘모르는 기기로 로그인된 흔적이 남아있다면 모두 로그아웃하라’ 등의 얘기만 소비자들 사이에 오가고 있다.
찝찝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회원에서 탈퇴한다 치더라도 집주소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이상 쿠팡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피해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쿠팡에게 무엇보다 뼈아픈 지점은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태가 과거 논란을 수면 위로 다시 끄집어 올렸다는 점이다.
소비자들은 쿠팡에서 수년째 불거지고 있는 새벽배송 노동자들의 사망 사고 문제를 다시 입에 올리고 있다. 과로사 문제를 듣긴 했어도 편리함 때문에 쿠팡을 외면하지 못했다는 이들조차 보안에 구멍이 뚫린 쿠팡을 더 이상 쉴드(보호)치기 어렵다는 목소리를 쏟아낸다.
이밖에도 입점업체에게 과도한 수수료를 받는 것 아니냐는 논란, 과거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일부 노동자들의 취업을 방해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정치권 역시 이번 사태와 관련해 쿠팡을 향한 질타를 벼르고 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와 정무위원회는 각각 2일 오전 10시와 3일 오후 2시에 쿠팡 사태와 관련한 긴급 현안질의 일정을 잡았다. 과학기술부총리뿐만 아니라 박대준 쿠팡 대표이사 사장까지 소환해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을 예정이다.
쿠팡이 여러 논란에 휩싸인 것은 이미 수년 전부터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논란을 정면 돌파하기보다는 정부와 국회 등 자신들을 규제할 수 있는 기관을 상대로 해명과 설득을 하는데 힘썼다.
실제로 쿠팡이 올해에 영입한 정부 및 국회 출신 고위공직자만 18명이다. 여당과 야당을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 보좌진 출신 인물들을 억대 연봉에 영입했으며 쿠팡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는 공정거래위원회 출신 사람도 채용했다.
취업 심사 공개 의무가 없는 사람들까지 합하면 수십 명이 쿠팡으로 이직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사실상 기업의 논리를 끊임없이 정부와 국회에 전파해 쿠팡을 향한 논란과 규제를 방어하겠다는 형태의 움직임에만 집중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쿠팡 대표들은 이미 대관 출신으로 유명하다. 박대준 현 쿠팡 대표이사는 LG전자 대외협력실과 네이버 정책실을 거친 대관 출신 인물이다. 쿠팡에서 미국에 있는 쿠팡Inc로 자리를 옮긴 강한승 전 대표이사 역시 이명박 정부 청와대 법무비서관을 거쳐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로 근무해 대관쪽으로 영향력을 지녔다고 평가받는다.
이들이 쿠팡 수장으로 부임한 데에는 창업자인 김범석 의장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됐을 수밖에 없다.
사실 김 의장이 이렇게 대관 출신 인물들을 중용하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급변하는 이커머스 시장에서 영향력을 잃지 않으려면 각종 논란에 일일이 대처할 여유가 없다는 점이 그 근거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하지만 연매출 50조 원을 내는 거대 기업으로 성장한 현시점에 이런 태도는 더 이상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이 힘을 얻는 분위기다.
무엇보다도 각종 논란을 해소하지 못하고 덮기만 하면서 성장해온 탓에 수면 아래 곪아왔던 여러 문제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지경에 이르렀고 이는 김 의장 스스로 강조했던 ‘소비자 신뢰’가 붕괴되는 현상으로 번지고 있기 때문이다.
▲ 쿠팡을 향한 소비자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쿠팡을 향한 소비자들의 움직임은 본격화하고 있다.
이미 카카오톡 오픈채팅방뿐만 아니라 네이버 카페 등에서는 쿠팡의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한 집단소송을 준비하는 이들로 넘쳐난다. 정신적 스트레스가 상당하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힘을 얻고 있다.
김 의장이 당분간 감수해야 할 금전적 부담도 상당해 보인다.
쿠팡보다 앞서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겪었던 SK텔레콤만 해도 과징금으로만 1348억 원을 부과받았다. 쿠팡은 SK텔레콤보다 1.5배 많은 개인정보를 유출했는데 이는 역대 최대 과징금 대상이 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자체적 보상안 마련도 힘써야 할 처지다. SK텔레콤은 개인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통신비 50% 할인과 데이터 추가 제공 등의 후속 조치를 시행했고 일부 보상은 연말까지 연장해 시행하고 있다.
쿠팡 역시 유료멤버십인 와우멤버십과 관련한 구독료 면제나 감면 등 구체적 보상안을 내놓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유료멤버십의 월 구독료가 7890원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쿠팡이 한 달만 구독료를 면제해도 약 1천억 원의 수입이 줄어들게 된다.
여기에다 일부 고객들이 이탈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현관문 비밀번호까지 외부에 알려졌다는 소식에 적지 않은 고객들이 동요하고 있으며 실제로 네이버와 G마켓, 컬리와 같은 대체 플랫폼 사용을 고민하겠다는 이들도 적지 않다.
물론 과거 쿠팡이 유료멤버십 구독료를 인상할 때도 쿠팡을 탈퇴하겠다는 이들이 적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가입자가 더 늘어난 적도 있다. 하지만 이번 사건은 이보다 민감한 개인정보 유출이다 보니 앞날을 장담할 수 없어 보인다는 주장이 더 많다.
실제로 주가도 출렁이고 있다.
1일 국내 증권사에서 거래되는 쿠팡Inc 주가는 직전 거래일보다 7%가량 하락한 25달러대다. 쿠팡 주가가 25달러대까지 후퇴한 것은 5월 이후 약 7개월 만이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