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철강업계가 숙원으로 꼽아온 'K스틸법안'이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을 예정이지만 업계의 우려는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법안 통과로 정부의 재정 지원 틀이 마련되겠지만 전기세와 관세 대응과 같은 어려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산업용 전기료 급등과 해외 고율 관세로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에서 실효성 있는 구체적 후속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 경북 포항시 남구 제철동에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2고로에서 한 직원이 용광로에서 쇳물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27일 정치권과 철강 업계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국회가 본회의를 열어 이른바 K스틸법안(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탄소중립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을 처리할 것으로 보인다.
K스틸법안은 지난 8월 국회철강포럼 공동대표인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 등 여야 의원 106명이 함께 발의한 법안이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5년 단위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다양한 재정·세제 지원을 진행할 수 있는 근거가 담겨 있다.
정치권에서는 K스틸법안이 여야 모두 당론으로 추진한 민생·경제 법안이기에 국회 본회의 문턱도 무리 없이 넘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나라 안팎으로 큰 어려움을 겪는 철강 업계로서는 숨통이 트이는 셈이다.
다만 철강업계는 K스틸법안을 통해 철강산업 구조 개편과 불공정 무역 대응을 위한 제도적 기반이 마련되지만 실효성 있는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전기료 인상에 더해 관세 급등으로 적게는 수천억 원, 많게는 조 단위의 비용 부담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K스틸법만으로 철강 업계 경쟁력 회복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날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물론 K스틸법안이 호재인 것은 맞고 업계에서 기다리고는 있다"면서도 "최근 있던 전기료 급등 문제 등에 대한 내용은 없으니 후속 입법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
철강 업계는 최근 지속적으로 인상된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수익성이 크게 약화하고 있다. 철강산업에서 전기요금은 철강 제품 원가의 약 10%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전기료 인상은 철강 업체의 가격 경쟁력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다.
전력통계정보시스템을 보면 산업용 전기요금 판매단가는 2021년 킬로와트시당(㎾h) 105원을 기록한 뒤 계속 올라왔다. 지난해 전기요금 판매단가는 킬로와트시당 168원으로 2021년 대비 37.5% 올랐다.
신동현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이 지난 4월 한국경제인협회 의뢰로 작성한 '배출권거래제의 전기요금 인상 효과'를 보면 유상 할당 비중을 50%로 높이고 배출권 가격을 톤당 3만 원으로 가정할 경우 전기요금은 kWh당 9.41원 오를 것으로 추정한다. 이 경우 산업용 전기요금 부담이 연간 최대 3조 원가량 늘어난다.
▲ 현대제철 당진제철소의 후판 생산라인 모습. <현대제철>
반면 K스틸법안에는 산업용 전기요금 감면 등 에너지 비용 완화 대책이 담기지 않다. 예산 부담과 형평성 논란을 우려한 재정 당국의 반대가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철강업계는 지금의 전기료 수준을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토로하고 있다.
일부 기업은 한 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몽땅 전기료로 납부하기도 한다. 전기로 비중이 100%인 동국제강은 지난해 1025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전기요금으로 2998억 원을 지출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5천억 원, 현대제철은 약 1조 원의 전기요금을 납부했다.
자체 발전 비중을 늘려가고는 있지만 전력비 부담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기업들은 전기요금이 낮은 심야 시간대에만 설비를 돌리거나 조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현대제철은 4월 인천 철근 공장 가동을 중단했고 동국제강은 전력 수요가 정점에 이르는 7~8월 한 달간 인천공장 셧다운에 들어갔다.
통상 리스크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미국은 3월 철강 제품에 25%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 관세율을 50%로 높였다. 최근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됐지만 철강 관세는 논의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고율 관세 영향은 수출 실적에 곧바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KITA)에 따르면 올해 1~9월 대미 철강 수출액은 27억8958만 달러(4조1101억 원)로 지난해보다 16%나 감소했다.
아울러 기업들의 직접 부담도 만만치 않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올해 미국에 납부해야 할 관세 부담은 4천억 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유럽연합(EU) 역시 무관세 쿼터를 전년 대비 47% 축소하고 이를 초과한 물량에는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권에서도 이러한 부분을 우려했다.
K스틸법안을 대표 발의한 어기구 민주당 의원은 지난 19일 '철강산업 특별회계' 신설을 핵심으로 한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K스틸법이 시행되면 탄소중립 전환과 기술 투자, 인력 양성 등 대규모 예산 투입이 필요한데 현행 일반회계 체계만으로는 어려워 특별회계 설치의 근거 법률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회계는 매년 정부와 국회의 심의에 따라 편성되다 보니 국가 경제나 정책, 정권 등에 따라 지원 규모가 쉽게 변동될 수 있다. 반면 특별회계가 신설되면 철강산업 강화라는 특정 목적에만 쓰는 독립적 재원이 마련돼 중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지원을 할 수 있다.
어기구 의원실 관계자는 이날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국가재정법 개정안은 K스틸법안의 후속 입법이라기보다 '보완 입법'의 성격"이라며 "K스틸법안 원안에 철강산업 특별회계 설치 조항을 포함했는데 신설의 경우 국가재정법에 근거가 있어야 해 이를 정합적으로 반영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K스틸법안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해당 입법과 관련해 추가적인 논의를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업계에서는 후속대책의 조속한 마련이 필요하다가 바라봤다 .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철강업계는 고로를 가진 철강사와 제강사 간 이해관계가 달라 지원 패키지를 단일하게 설계하기 어렵다"면서도 "그럼에도 전기요금이나 관세 등의 부담은 동일한 만큼 빠르게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