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정훈 빗썸에이 대표이사는 20년 전 '아이템매니아'를 통해 가상의 자산이 현실에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인물이다. <그래픽 씨저널> |
[비즈니스포스트] 네이버와 두나무가 ‘결제(네이버페이)’와 ‘거래(업비트)’를 잇는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빗썸은 토스와의 연계로 맞대응을 하고 있지만 실행 속도와 규모 측면에서 조금 뒤쳐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주목받는 인물이 있다. 바로 빗썸의 실소유주 이정훈 빗썸에이 대표다.
이정훈 대표는 2002년 7월 자본금 500만 원으로 월세 30만 원짜리 원룸에서 컴퓨터 5대를 갖춰놓고 게임아이템 거래 플랫폼 ‘아이템매니아’를 창업했다. 그리고 이 회사는 6년 만에 연매출 300억 원이 넘는, 국내 최대의 게임 아이템 중개 사이트로 성장했다.
네이버의 두나무 인수설과 원화 스테이블코인 연합 구상이 겹치며 가상자산업계의 판이 재편되고 있는 가운데, ‘가상 재화의 가치를 가장 먼저 읽어낸’ 이정훈의 빗썸이 결제와 거래의 결합 전쟁에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 빗썸-토스와 두나무-네이버, 페이와 코인의 연계에서 가능성을 찾다
아직 공식 발표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만약 네이버와 두나무의 인수합병이 현실화된다면 현재도 가장자산 거래 시장에서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두나무의 업비트가 네이버라는 거대 IT 공룡을 등에 업고 승리 굳히기에 들어갈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인수합병 이야기와 별개로 네이버와 업비트는 이미 2025년 7월 원화 스테이블코인 협력을 공식화했다. 네이버페이가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하고, 업비트가 거래·유통과 기술 인프라를 제공하는 연합 모델을 구축한 것이다.
네이버페이는 6월 말 NORW, KRWZ 등 9종의 스테이블코인 상표권을 출원했고, 업비트도 7월 UPKRW, UBKRW 등 66건 이상의 상표를 출원했다.
물론 빗썸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2025년 7월 BPay, KRWSTABLE, BithumbKRW 등 스테이블코인 관련 상표권을 대거 출원했고, 8월에는 토스와 빗썸의 협력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빗썸은 네이버-두나무 빅딜 소식이 알려진 다음날인 9월26일에는 '빗썸페이', 'bithumb pay' 등 상표권 7종을 추가로 출원했다.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토스의 페이 시스템과 빗썸의 스테이블코인 거래가 연계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문제는 두나무와 네이버의 협력 방식 역시 네이버페이와 업비트를 연계하는 방안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네이버페이는 네이버쇼핑이라는 막강한 지원군을 등에 업고 있는 만큼, 경쟁력 측면에서 빗썸-토스 동맹이 두나무-네이버 동맹에 밀릴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시장조사기관 오픈서베이가 8월4일 발표한 ‘페이먼트·결제 트렌드 리포트 2025’ 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 가운데 네이버페이를 주력 간편결제 수단으로 이용한다는 응답자는 51.5%로 1위였다. 카카오페이는 25.1%, 토스페이는 13.2%였다.
두나무의 업비트 역시 가상자산 거래 영역에서 빗썸을 압도하고 있다. 가상자산 전문 분석 사이트 코인게코에 따르면 12일 기준 업비트의 24시간 거래 대금은 20억7398만 달러, 빗썸은 9억8759만 달러다.
인수합병 이야기 등으로 점점 협력이 가시화되고 있는 두나무-네이버 동맹과 달리 빗썸과 토스의 동맹은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는 것 역시 약점으로 지적된다.
가상자산 전문 매체인 블록미디어에 따르면 빗썸과 토스의 협력 논의는 각자의 기업공개(IPO) 이슈 때문에 현재 지연되고 있는 상태다.
◆ 경영 전면에 얼굴 드러낸 빗썸 이정훈, 빗썸의 방향타 어디로 끌고 갈까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갑작스럽게 경영 전면에 등판한 이정훈 대표에게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이정훈 대표는 빗썸의 실소유주로 알려져있으면서도 그동안 공식 석상에 좀처럼 얼굴을 내비치지 않아 궁금증을 자아내왔다.
하지만 10월 빗썸에서 인적분할한 신설법인 '빗썸에이'의 초대 대표이사로 선임되며 경영 전면에 모습을 드러냈다.
빗썸에이는 가상자산 사업이 아니라 빗썸의 신사업을 주도하는 회사이지만, 가상자산업계에서는 이정훈 대표에게 빗썸의 실소유주라는 위치가 있는 만큼 빗썸 전체의 전략에도 상당부분 관여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이정훈 대표가 두나무-네이버 동맹에 맞서 빗썸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이유다.
◆ 2000년대 초반의 아이템매니아, 시작은 역시 '가상자산의 가치'였다
재미있는 점은 이정훈 대표가 사실상 국내 최초로 ‘가상자산’의 가치에 주목한 인물이라는 것이다. 이 대표가 주목했던 ‘게임 아이템’이라는 재화는 현금 가치를 갖는 최초의 가상자산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1995년 전북대학교 기계공학과에 입학했지만 게임에 빠져 학사경고를 두 차례나 받고 결국 제적당한, 소위 ‘게임 폐인’이었다.
그런 이 대표의 인생을 바꿔놓은 것은 2001년 크리스마스였다. 여자친구의 선물을 사기 위해 게임 아이템을 처분하던 중 희귀 아이템 하나의 판매로 50만 원이 넘는 거금을 손에 쥐게 되면서 ‘가상의 자산이 현실에서도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다.
2002년 7월, 이 대표는 자본금 500만 원으로 월세 30만 원짜리 원룸에서 컴퓨터 5대를 갖춰놓고 '아이템매니아'를 창업했다. 게임 아이템을 안전하게 거래할 수 있는 중개 플랫폼이었다.
당시 직거래 과정에서 폭력 노출, 사기 등 등 여러 가지 위험이 수반된다는 점에 착안한 사업이었다.
아이템매니아는 무주공산이었던 국내 게임아이템 거래 시장을 빠르게 장악해나갔고, 이 대표는 2006년 골드만삭스에 회사 지분 100%를 매각하는 성과를 거뒀다. 정확한 매각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당시 골드만삭스는 지분 인수와 추가 투자에 약 5천만 달러(약 700억 원)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핀테크업계의 한 관계자는 “여러 가지 논란도 있고 베일에 쌓인 점이 많기도 하지만 이정훈 대표가 IT업계에서 전설적 인물이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며 “스테이블 코인 이슈도 그렇고 가상자산 거래소가 단순히 거래 중개 이상의 역할을 하고 있는 현재 시점에서 이정훈 대표가 어떤 방향으로 빗썸을 이끌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윤휘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