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 성공으로 확실한 경영능력을 입증한 덕분이다. 삼성전자를 반도체 기술 경쟁력에서 완전히 뒤집은 것은 SK하이닉스 역사를 통틀어 처음 있는 일이다.
SK하이닉스의 2024년 3분기 누적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5조3845억 원으로,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영업이익 12조2200억 원보다 3조 원 이상 많았다.
게다가 두 회사의 HBM 경쟁력 격차는 적어도 2025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이 2024년 1월4일 SK하이닉스 경기도 이천캠퍼스 R&D센터에서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가운데)과 최우진 SK하이닉스 P&T 담당에게 고대역폭메모리(HBM) 웨이퍼와 패키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 SK하이닉스 >
HBM 성공은 최 회장의 전폭적 지원과 함께 ‘수율(완성품 비율)이 곧 경쟁력’이라는 곽 사장의 경영 지론이 밑바탕이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곽 사장은 2021년 1월 SK하이닉스 뉴스룸 인터뷰에서 “우리 회사 생산기술의 총합은 수율로 정의할 수 있다”며 “수율을 업계 최고(Best In Class)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모든 역량을 모아 추진하고 있는 목표”라고 말했다.
곽 사장은 1994년 SK하이닉스 전신인 현대전자에 입사해 30년째 근무하고 있는 ‘SK하이닉스 맨’으로, 미래기술연구원 공정기술그룹장, 제조·기술부문 D&T기술그룹장, 제조·기술부문 디퓨전기술그룹장 등을 거친 반도체 공정 전문가다.
2019년 제조·기술담당 부사장을 맡았을 때도 D램과 낸드플래시 수율을 대폭 끌어올린 공을 인정받아 3년 만에 대표이사 사장으로 승진했다. 올해 대표이사에 오른 지 3년 차다.
SK하이닉스 HBM 경쟁력은 수율에서 나오는 것으로 평가된다.
5세대 HBM인 HBM3E의 수율은 80%에 근접한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경쟁사 수율과 비교하면 월등히 높은 것이다.
최 회장은 AI를 SK그룹의 미래 먹거리로 보고 있다.
이에 따라 그룹 계열사 가운데 AI 가치사슬 최후방을 책임진 SK하이닉스에 힘이 더 실리고 있다.
최 회장은 11월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에서 “SK는 반도체, 데이터센터, 서비스개발 등 모든 것을 커버하는 전 세계에서 흔치 않은 기업”이라며 “AI 시장 대확장이 2027년을 전후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재계가 전반적으로 부회장단 규모를 줄이고 있는 추세인 만큼, SK그룹도 이에 발맞춰 승진 인사 폭을 최소할 것이란 관측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3인 부회장단을 그대로 유지했고, 현대자동차그룹은 전문경영인 부회장이 1명뿐이다. LG그룹도 당초 올해 부회장 승진자가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왔지만 2명 부회장 체제를 유지했다.
재계 관계자는 “SK 인사가 ‘신상필벌’ 초점을 맞춘다면 곽 사장은 유력한 부회장 후보”라며 “다만 최근 주요 기업들이 고위 경영진 승진 폭을 최소화하고 있고, SK그룹도 ‘리밸런싱’ 작업의 일환으로 임원 수를 줄이고 있는 만큼 지난해에 이어 부회장 승진자가 없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