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유 기자 jsyblack@businesspost.co.kr2024-11-03 06:00:00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 북한이 파병을 실행에 옮기면서 한국에 실질적 역할을 바라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쟁은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지만 한국의 역할이 확대된다면 중장기적으로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한국 건설사의 역할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 국내 건설사들에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기회가 열릴지 주목된다. 사진은 지난해 7월 윤석열 대통령(왼쪽에서 세 번째)가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폐허가 된 지역을 둘러보는 모습. <대통령실>
3일 해외언론 보도를 종합하면 장기간 이어진 러-우 전쟁 속에서 북한군 파병이 국제정세를 다시 혼돈 속에 빠트리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 등에 따르면 이미 북한군 8천 명이 우크라이나 국경에 주둔하고 있으며 이들이 수일 안에 실제 전투에 배치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NBC뉴스에 따르면 미국 정보당국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만남이 예측됐던 5월 이미 북한이 미국 대선을 앞두고 10월 군사 도발에 나설 것으로 예측해 왔다. 다만 북한군이 파견돼 실제 전투에 투입되는 시점은 예상보다는 더 빠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등이 앞다퉈 북한과 러시아를 향한 비난을 쏟아내는 가운데 러시아 측도 날카롭게 맞서고 있는 모양새다. 러시아는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와중에 러시아 역시 동맹국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중국 역시 북한 파병에 따른 국제정세 변화의 사정권에 들어 있다. 서방 국가들은 중국이 북한군 파병을 방조했다고 보고 중국의 적절한 역할을 촉구하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은 10월31일(현지시각) 기자회견을 통해 “중국이 이 문제(북한군 파병)에 역할을 해야 한다”며 “미·중 외교관이 대화를 나눴으며 중국도 미국이 중국의 영향력 행사를 기대하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한이 군사를 파병하면서 한국도 러-우 전쟁 한 가운데 서게 됐다. 북한이 참전한 만큼 한국도 의미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시각이 나오고 있어서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10월30일 KBS와 인터뷰에서 한국 정부에 방공시스템, 무기 등을 지원해주기를 공식적으로 요청하겠다는 뜻을 내놨다.
윤석열 대통령은 앞서 10월29일 젤렌스키 대통령과 나눈 통화에서 “북러의 군사적 야합을 좌시하지 않겠다”며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이어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통화를 거쳐 조만간 캐나다에서 개최될 우크라이나 평화공식 장관급 회의에 정부 대표를 보내기로 하는 등 한국 정부의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러-우 전쟁 과정에서 커진 한국의 역할이 향후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서 국내 건설사에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 외교관 가운데 한국 전문가로 꼽히는 헨리 해거드 전 주한 미국대사관 정무공사는 전략국제문제연구소(CISI)에 실은 기고문에서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에 전폭적 지원을 결정하면 갈등 흐름을 바꾸고 평화협정까지 이어질 수 있다”며 북한군 파병 이후 한국 정부의 역할을 강조했다.
특히 해거드 전 정무공사는 “한국과 한국 기업이 평화를 위해 중추적 역할을 한다면 향후 5천억 달러 규모(약 690조 원)의 재건사업에 참여가 보장될 것”이라며 “한국 건설사가 우크라이나의 인프라 재건을 주도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현지에서도 전후 재건사업을 대비한 움직임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최근에는 재건사업을 담당하는 우크라나이나 정부 부처의 올해 예산이 1.5배 이상 증가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현지언론(ZN.UA)에 따르면 최근 우크라이나 정부는 지역사회 및 영토개발부 장관과 국가복구 및 인프라개발청 청장을 교체하는 인사를 단행했다.
특히 신규 인사와 함께 내년 두 부처 예산은 올해보다 60% 늘어난 17억 달러(약 2조3500억 원)으로 증가했다. 각가 지역사회 및 영토개발부가 5억5천만 달러, 국가복구 및 인프라개발청이 11억5천만 달러 수준이다.
한국은 우크라이나에 2022~2023년에 걸쳐 모두 2억5천만 달러(약 3500억 원)의 인도적 지원을 이행했다. 지난해 7월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계기로 정부 차원에서 우리 기업의 재건사업 참여도 공식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우크라이나에서 국내 기업·기관들이 참여하는 재건사업 관련 사업들이 순차적으로 결실을 앞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키이우에서는 전쟁 이후 교통 인프라 재건을 위한 계획수립 사업의 최종 보고가 예정됐다.
한국교통연구원이 중심이 돼 지난해 말 개시한 ‘키이우 지역 교통 마스터플랜 사업’ 1단계와 2단계의 최종보고회가 11월 열린다. 두 사업은 전후 키이우의 교통 인프라 재건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앞서 10월에는 한국수자원공사가 발주한 ‘재건사업 참여여견 조사 및 타당성 분석 사업’이 마무리됐다. 이 사업은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재건사업에 기여하고 국내 기업의 사업참여 여건을 조사하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됐다.
▲ 오세철 삼성물산 건설부문 대표이사 사장(왼쪽에서 네 번째), 원희룡 당시 국토교통부 장관(왼쪽에서 두 번째) 등이 지난해 7월 삼성물산-우크라이나 리비우시-터키 건설사 오누르의 리비우시 스마트시티 개발협력을 위한 업무협약식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모습. <국토교통부>
이 밖에도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해외인프라도시개발지원공사(KIND), 한국국제협력단(KOICA) 등이 중심이 돼 다수의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한국이 계획수립 단계부터 기여한 점을 토대로 향후 다양한 사업에서 사업기회가 생길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분위기다.
건설업계에서는 삼성물산(스마트시티), 현대건설(원전·인프라·공항), 현대엔지니어링(석유화학플랜트) 등이 우크라이나 재건사업 관련 업무협약(MOU)을 체결하며 사업에 참여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정세를 보면 본격적 재건사업이 언제 진행될지는 미지수라는 전망이 나오는 것은 사실”이라며 “공공기관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상황에서 정부의 뚜렷한 지원 방침이나 재건사업 규모를 생각해 봤을 때 재건사업이 수주 측면에서 기회가 될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다만 전후 재건사업이라는 특성상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참여에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사업성에 관한 세밀한 분석을 통해 실제로 수익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학기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7월 발간된 ‘우크라이나 전쟁과 재건사업: 문제점과 참여 방향’ 보고서에서 “사업비 확보 문제를 비롯해 충분한 검토 없이 우크라이나가 제시한 사업을 그대로 수용하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정치적으로 부정적 논쟁이 있는 사업은 수행한다 해도 국제 관계 측면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짚었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중동을 예로 들자면 건설사들의 기회이기도 하지만 불안정한 국제정세 등을 고려했을 때 종종 대규모 손실의 주요 요인이 되는 곳이었는데 우크라이나도 비슷한 상황”이라며 “당장 해외사업에서도 원가 상승 탓에 수익을 제대로 거두기 힘든 상황인 점을 고려하면 실제 재건사업에 얼마나 큰 관심을 보일지는 미지수”라고 바라봤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