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사진)이 현대홈쇼핑 대표이사 부회장에 오른 뒤 13년 만에 회장으로 승진했다. 그룹에서는 여전히 부회장으로 불리지만 핵심 계열사의 회장이 됐다는 점에서 책임감도 만만찮게 커질 것으로 보인다. |
[비즈니스포스트]
정교선 현대백화점그룹 부회장이 회장 명함을 하나 갖게 됐다.
‘현대홈쇼핑 회장’이 바로 그 명함이다. 그룹 직급은 여전히 부회장이지만 핵심 계열사 회장에 올랐다는 것이 주는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마냥 기뻐하기만은 힘들다는 시각도 나온다.
정교선 회장의 승진은 현대홈쇼핑의 실적 반등이 가시화한 시기에 이뤄진 인사이긴 하지만 홈쇼핑업계의 불황을 감안했을 때 결코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정교선 회장은 앞으로 현대홈쇼핑뿐 아니라 주요 자회사들의 새 먹거리를 발굴하는데 힘을 줄 것으로 보인다.
31일 실시된 현대백화점그룹의 2025년 정기 임원인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단연
정교선 회장의 승진이다.
정교선 회장이 부회장을 단 것은 2011년 12월이다. 2008년 말 사장으로 승진한 지 3년 만이었다.
하지만 회장 명함은 좀처럼 얻지 못했다. 13년 동안 부회장에 머물렀는데 이는 형인
정지선 현대백화점그룹 회장이 2002년 말 그룹 총괄부회장에 오른 뒤 5년 만에 회장에 오른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이런 세월을 뒤로 하고 회장으로 올랐다는 것은
정교선 회장 스스로도 기쁜 일일 수밖에 없다.
정교선 회장의 뒤늦은 승진이
정지선 회장의 견제 탓에 생긴 일은 아니다. 재계와 현대백화점그룹 얘기를 들어보면 두 형제의 사이는 다른 재벌그룹과 달리 매우 돈독한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정지선·
정교선 회장 형제는 주요 사안도 함께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룹을 대표하는 회장을 두 명 두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수밖에 없다. 형제 사이의 경영 주도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의심하는 시각이 생길 수도 있고 각 임원들의 충성경쟁 탓에 사이가 벌어지는 일도 생길 수 있다.
현대차그룹은 과거 연구개발 부문에 서울대학교 동기 사이인 부회장을 2명 선임해 조직을 쌍두마차 체제로 운영했다. 당시 두 부회장의 업무영역이 겹쳤을 뿐만 아니라 보고 방식도 서로 달라 일을 두 배로 해야 하는 등의 잡음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2018년 말 임원인사에서 두 부회장을 고문으로 물러나게 한 것은 조직의 비효율적 운영에 칼을 댄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보면
정지선 회장이 현대백화점그룹을 대표하는 단독 얼굴을 17년 동안 스스로 자처한 것은 잡음을 최소화하기 위한 경영적 판단일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재계 안팎에 적지 않다.
물론
정교선 회장은 그룹 차원에서는 여전히 부회장을 맡는다.
현대백화점그룹이 계열분리 가능성을 잠재워놓은 만큼 형제의 공동경영 체제에 변화가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애초 계열분리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른바 ‘한 지붕 두 가족’의 지주회사 2개 체제를 추진했다가 실패한 뒤 현대지에프홀딩스를 주축으로 하는 단일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했다.
정교선 회장으로서는 앞으로 책임감이 더욱 무거워질 것으로 보인다.
다행히 그가 회장에 오른 현대홈쇼핑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다.
현대홈쇼핑은 상반기에 별도기준으로 매출 5709억 원, 영업이익 419억 원을 냈는데 이는 지난해 상반기보다 매출은 7.5%, 영업이익은 61.5% 확대한 것이다. 최근 수년 동안 연간 매출이 정체 상태를 보인 데다 영업이익 역시 3년 동안 줄곧 하락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다.
정교선 회장의 승진도 이런 명분 덕분에 힘이 실린다. 4년 만의 영업이익 반등이 가시화한 시기에 실시된 인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룹 안팎에서
정교선 회장의 승진에 의구심을 보내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현대백화점그룹은 이날
정교선 회장의 승진 인사를 놓고 “한때 현금창출원으로 불리던 홈쇼핑의 업황 악화와 무관치 않다”며 “2009년부터 현대홈쇼핑 대표이사를 맡은 정 회장의 경력과 전문성에서 발현되는 통찰력과 추진력 같은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현대홈쇼핑의 취급고를 보면 상반기 기준 TV 1조84억 원, 인터넷 7946억 원을 기록했다. 두 채널은 현대홈쇼핑의 주요 채널인데 지난해 상반기보다 취급고가 각각 5.1%, 6.1% 후퇴했다.
비용절감과 새 먹거리 창출 노력이 병행되지 않는다면 영업이익 개선이 추세적인 모습을 보이기 어려울 가능성도 배제하기 힘들다.
종속회사를 포함하면 그나마 상황이 나아진다.
현대홈쇼핑은 지난해 말 현대퓨처넷, 올해 1분기 한섬을 각각 종속회사로 편입하면서 올해 매출 3조8천억 원대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기존 연결기준 매출이 2조~2조1천억 원 사이를 왔다갔다했던 것과 비교하면 큰 폭의 성장이 예견된 셈이다.
현대백화점그룹에 따르면
정교선 부회장은 앞으로 한광영 대표이사와 함께 오너경영인-전문경영인 2인 대표이사 체제를 유지하면서 회사의 중장기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역할을 맡을 것으로 전망된다. 남희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