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세계은행이 기후변화행동계획에 따라 자금을 지원하는 것을 중단하기로 했다. 사진은 파키스탄 카라치에 위치한 국제금융공사 건물 내부에 붙어 있는 세계은행 로고.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세계은행이 ‘기후변화행동계획(CCAP)’을 통한 개발도상국 기후대응 자금 지원을 사실상 폐지한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압박이 원인으로 파악된다.
유럽 주요 선진국도 잇따라 금전적 지원을 축소하고 있어 자체 재원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개도국의 기후대응 능력이 더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현지시각) 로이터와 블룸버그 등 외신을 종합하면 세계은행은 기후변화행동계획을 연장하기로 했으나 핵심으로 꼽히는 자금 지원 목표는 폐지했다.
기후변화행동계획은 개도국들이 기후변화로 발생하는 피해를 복구하고 대응책을 세울 수 있도록 세계은행의 자금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세계은행은 2023년 수립한 계획에서 2026년부터 2030년까지 5개년 기후변화행동계획에 전체 개도국 지원 예산의 약 45%를 할당하겠다는 방침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서 세계은행은 이를 전면 철회했다. 세계은행 운용 자금의 약 17%를 지원하는 미국 정부의 압박이 원인으로 분석된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2025년 4월 성명을 내고 “세계은행은 기후재원이라는 단기적 목표에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며 “투입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프로젝트에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전문지 폴리티코에 따르면 미국 재무부는 2026년 6월20일(현지시각) 세계은행에 다시 서한을 보내 기후대응 자금 지원 목표를 폐기하라고 요구했다.
미국 정부는 기후변화 자체를 부정하며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테일러 로저스 백악관 대변인은 폴리티코에 성명을 내고 “민주당과 급진적 단체, 기후 극단주의자들은 우리가 지구를 파괴하고 있다는 허황된 주장을 퍼뜨려왔다”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를 경고하는 헛소리에 미국의 경제와 안보가 위협받는 것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고 전했다.
| ▲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이 26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에서 열린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세계은행은 기후변화행동계획 자체는 유지하겠지만 개도국에 자금을 지원하는 대신 기존에 제공한 예산이 효율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관리하고 자문하는 역할을 담당하겠다고 밝혔다.
현재까지 세계은행이 기후변화행동계획을 통해 개도국에 지원한 자금은 508억 달러(약 79조 원)에 이른다.
세계은행의 이번 결정으로 개도국들이 기후변화 피해를 예방하고 복구하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개도국의 기후대응을 지원하던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유엔개발계획(UNDP), 유엔환경계획(UNEP) 등 다른 국제기구도 이미 파산 위기에 내몰려있기 때문이다.
국제기구 전문매체 제네바솔루션즈에 따르면 미국이 현재까지 유엔에 납부하기로 했지만 내지 않은 분담금은 누적 20억 달러(약 3조1천억 원)에 이른다. 2025년에만 8억 달러(약 1조2천억 원)가 밀렸다.
사이먼 스티엘 유엔기후변화협약 사무총장은 11일(현지시각) 성명을 통해 “우리가 직면한 경제적 어려움이 개도국들에 필요한 자금 지원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며 “하지만 우리의 당면 과제는 지속적 추진력을 유지하고 향후 더 나은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동안 개도국 기후대응 지원에 적극적 태도를 보이던 유럽 선진국들마저 미국을 뒤따라 태도를 바꾸고 있다.
영국은 2026년 3월부터 국제기후금융(ICF) 기여금을 기존 연간 23억 파운드(약 4조7천억 원)에서 20억 파운드(약 4조1천억 원)까지 줄이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도 2월 의회에서 기후대응 지원을 포함한 대외원조예산을 35억690만 유로(약 6조2천억 원)로 2025년 대비 약 20% 삭감했다.
2021년부터 연간 60억 유로(약 10조6천억 원) 규모 글로벌 기후대응 자금 지원을 약속한 독일도 이를 2025년 10월부터 45억 유로(약 7조9600억 원)로 대폭 삭감했다.
국제 구호단체 옥스팜은 2026년 6월18일(현지시각) 성명을 내고 “선진국들은 필수적 공공 기후재원 지원 확대에 책임을 계속 회피하고 있다”며 “기존 약속대로 기후재원을 집행하더라도 이는 실제로 필요한 금액의 3분의 1 수준에 그친다”고 지적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