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삼성SDI가 2025년 3월5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인터배터리 현장에 전고체 배터리 모형을 전시했다. < 삼성SDI 유튜브 영상 갈무리 > |
[비즈니스포스트] 은값이 안전자산 선호 심리로 크게 오르는 가운데 은을 소재로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는 한국 배터리 3사에 고민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국 배터리 3사는 저렴한 중국산 배터리에 고전하고 있는데 은값이 계속 고공비행하면 ‘게임 체인저’로 기대했던 전고체 배터리 상용화 시점이 더욱 밀릴 수밖에 없다.
20일(현지시각) 금융전문지 파이낸스마그넷는 경제분석가 발언을 인용해 “은값이 온스당 375달러(약 55만 원)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은값은 온스당 95.34달러(약 14만 원)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은값은 지난해 185% 이상 급등해 금값 상승폭을 앞질렀는데 향후 4배 수준까지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셈이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을 추진해 국제 정세가 요동쳐 안전자산인 금이나 은에 수요가 몰리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자산거래 플랫폼 트라두의 니코스 차보라스 분석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장악하려 하면서 무역과 지정학 불확실성이 가중돼 은 가격이 기록적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은값 상승은 한국 배터리 업체의 사업에도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은 소재는 전도율과 안정성이 높고 리튬에 친화적이라 배터리에 활용하기 적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은값 상승은 전고체 배터리의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게 만들 공산이 크다.
전해질을 고체 물질로 만드는 전고체 배터리는 이론상 에너지 밀도와 안전성을 높일 수 있어 일명 ‘꿈의 배터리’로 불린다. 그런데 상용화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시장성이 떨어질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특히 양산 목표 시점이 가장 빠른 삼성SDI가 은값 상승 영향권에 먼저 들 수 있다.
삼성SDI는 2027년 전고체 배터리 양산 목표를 세우고 BMW를 비롯한 고객사와 실증을 준비 중인데 은값 상승 여파에 먼저 노출될 수 있다.
앞서 삼성SDI는 지난해 9월 ‘전고체 전지용 음극 및 이를 포함하는 전고체 전지’ 특허를 최종 등록했다.
해당 특허는 배터리 음극에 은-탄소(Ag-C) 복합층을 넣어 수명과 안전성을 늘리는 삼성종합기술연구소(SAIT) 기술에 기반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SDI가 공개해 오던 전고체 배터리 개발 로드맵과 공식 자료에서 은-탄소 기술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삼성 계열인 연구소 기술에 기반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 ▲ 한 상인이 2025년 12월31 서울 종로에 위치한 한 보석상에서 은괴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
투자 전문가 케빈 뱀브로는 2024년 8월10일 자신의 X(옛 트위터) 공식 계정에 “삼성SDI의 전고체 배터리 셀 하나당 최대 5g의 은이 들어갈 것이라 추정한다”며 “전기차 1대당 1㎏의 은이 필요할 수 있다”고 썼다.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 나선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역시 영향권에 들 수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고체 전해질을 사용하는 차세대 배터리에 은과 백금 등 금속을 사용하는 리튬친화성 소재(LPM) 코팅 기술을 개발해 2021년 10월 특허를 출원했다.
SK온 또한 한양대학교 연구진과 은을 집전체에 추가해서 구성한 전고체 배터리용 음극을 개발했다. 관련 연구 논문을 2024년 10월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기도 했다.
물론 한국 배터리 3사가 아직 전고체 배터리의 상용화 단계에 도달한 건 아니지만 은값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차세대 배터리 상용화 시점이 더욱 늦춰질 수 있다.
배터리업계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에 “은뿐만 아니라 여러 소재 등을 검토하며 개발 중”이라고 설명했다.
삼성SDI와 LG에너지솔루션 및 SK온 등 K배터리 3사는 세계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높은 중국산 배터리에 밀리고 있다.
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세계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K배터리 3사 합산 점유율은 2024년 같은 기간보다 3.5%포인트 하락한 15.7%를 기록했다.
반면 세계 1위와 2위 업체인 중국 CATL과 BYD 합산 점유율은 50%를 상회했다.
이에 고성능인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해서 시장 판도를 바꾸려 하는데 은값 상승으로 개발 시기가 길어질수록 앞으로 대결 구도는 결국 불리해질 수밖에 없다.
삼성SDI를 필두로 한국 배터리 3사가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지만 은값 상승이라는 변수에 대응할 수 있을지가 관건으로 보인다.
다만 에너지 전문매체 카본크레딧은 “중국 전기차 기업 BYD 또한 은을 사용하는 전고체 배터리를 개발하고 있다”며 중국 업체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은값 상승에서 자유롭지 않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