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경상북도 울산시 울주군 온양읍 인근에 설치된 송전탑 옆으로 구조헬기가 지나가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우리나라의 현재 전력망 체계가 경직성이 높아 정부가 세운 단기 재생에너지 목표를 달성하기 힘들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재생에너지 도입 속도를 높이기 위해 지역 분산형 전력망을 실현해 유연성이 높은 체계를 서둘러 갖춰야 할 필요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늘어나고 있다.
12일 기후솔루션의 '지역주도형 재생에너지 보급을 위한 전력시장 개선 방안' 보고서를 보면 현재 국내에서 재생에너지 생산 중심 지역인 호남과 제주도 등에서는 신규 재생에너지 설비 접속이 제한되고 있다.
한국전력이 계통포화 때문에 2024년부터 전국 205개 변전소를 계통관리변전소로 지정했는데 여기에 호남과 제주도에 위치한 모든 변전소가 포함됐기 때문이다.
현재 전력망에 생산되는 재생에너지 용량을 더 이상 추가로 수용할 수 없는 상태여서 호남과 제주 지역은 송변전 설비가 완공되는 2031년까지 신규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의 전력망 계통 접속이 원칙적으로 제한된다.
재생에너지 발전 설비를 늘려 전기를 생산해도 전력망에 공급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는 정부가 2030년까지 현재보다 3배 이상 많은 100GW 재생에너지를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저해할 가능성이 높다.
재생에너지 사업자가 발전소를 확충하려면 시장에 전기를 공급하고 전기료를 받아 수익을 내야 하는데 계통 제한 때문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는 계통포화, 즉 전력망 부족을 해결할 핵심 해법으로 에너지 고속도로(초고압 송전망) 확충을 제시하고 있다.
기후솔루션은 "이같은 접근법은 시간적, 사회적 한계를 동시에 안고 있다"며 "345kV 송전선 하나를 건설하는 데는 평균 9년이 소요되는 데다 이미 계획된 송변전 설비 사업의 절반 이상이 주민 반발과 인허가 문제로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점을 고려해 기후솔루션은 지역 전력구매계약(PPA)과 가상발전소(VPP) 등을 활용한 시장 유연화 방안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가상발전소란 지역 각지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에너지 자원을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해 하나의 발전소처럼 통합 관리하는 체계를 말한다. 물리적으로 발전소를 건설하지 않아도 건설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내며 지역 내에 흩어져 있는 소규모 전력원들을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현재 국내에 설치된 재생에너지 발전소의 99%는 10MW 이하 소규모 설비로 대부분 배전망에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 배전 계통을 활용해 지역 내에서 전력을 사용할 수 있는 시장만 구축해준다면 대규모 송전망 증설 없이도 재생에너지 수용 여력을 확보할 수 있다.
정부와 한전은 최소 설비용량과 계약전력 기준을 엄격히 정해 중소기업과 소규모 발전사업자의 시장 참여를 제한하고 있는데 이런 규제를 완화하는 것이 선결과제로 꼽힌다.
| ▲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1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한국전력KDN 등 에너지 분야 산하기관 업무보고에 앞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부도 이미 제도 개선의 필요성에는 동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기후에너지환경부가 첫 출범했을 당시 김성환 기후부 장관은 "마이크로그리드나 가상발전소(VPP)를 통한 분산형 전력망을 실험해볼 필요가 있다"고 발언한 바 있다.
김 장관은 올해 신년사를 통해서도 "화석연료 시대의 일방향 전력망에서 벗어나 재새에너지 시대에 걸맞은 지산지소(전기가 생산되는 곳에서 바로 소비됨)형 양방향 전력망으로 전환해 나가겠다"며 "재생에너지 확산을 가로막는 규제는 과감히 개선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한국의 전력망 구조를 두고 기후솔루션과 비슷한 제언이 국내외 주요 단체에서 잇달아 나온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지난해 11월 '한국 2025' 보고서를 통해 한국 정부는 전력망 한계를 극복하고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확대하려면 경직성 높은 전력시장 구조를 개편하고 지역별 전기 시장을 활성화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개인, 소규모 사업자간 전력 거래를 허용해주고 지역 내에서 포화된 전력이 소비될 수 있도록 허용해주는 제도 개편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에너지전환포럼도 지난달 국회 토론회를 통해 지역이 자체 생산한 전력을 자체 소비할 수 있는 '재생에너지 자립 도시'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순진 에니저전환포럼 상임공동대표는 "재생에너지 수요는 빠르게 늘고 있지만 전력망 포화, 수도권과 비수도권간 산업 입지 불균형 등 구조적 문제로 전환 속도는 지속적으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며 "재생에너지 자립 도시는 단순한 에너지 정책이 아니라 지방의 새로운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고 국토 균형발전을 꾀하기 위한 종합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지역 분산형 전력망 체계로 전환하는 것은 현재 정부가 지방을 수도권의 '전력 식민지'로 삼고 있다는 비판 여론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기도 하다.
김건영 기후솔루션 변호사는 "지역을 계통포화로 묶어두고 송전망만 늘리는 방식으로는 재생에너지 목표 달성도, 지역 균형발전도 어렵다"며 "지역이 직접 전력을 생산하고 소비하며 거래할 수 있도록 전력시장 구조를 전환해야 재생에너지확대와 전력망 부담 완화, 지역경제 활성화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