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솔 기자 sollee@businesspost.co.kr2025-12-23 17:3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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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서원 오리온 부사장(왼쪽부터)과 전병우 삼양식품 전무, 신동원 농심 부사장 등 식품업계 오너3세의 승진 속도가 이례적으로 빠른 것으로 평가되며 식품업계의 보수적 분위기와 비교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비즈니스포스트] 담서원 오리온 부사장과 전병우 삼양식품 전무, 신동원 농심 부사장 등 식품업계 오너3세의 승진 속도가 삼성과 SK, 한화 등 다른 오너 대기업과 비교해 빠르다는 평가가 나온다. 직원 처우나 기업 문화, 연구개발비 집행 등에서는 보수적인 식품기업이 경영권 승계에 있어서는 누구보다도 민첩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23일 식품업계에 따르면 최근 업계의 주요 기업 오너3세들의 승진이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이화경 부회장 사이 장남인 담서원 부사장은 1989년생으로 이번 승진 전 전무와 상무로 각각 약 1년을 근무했다. 오리온에서의 경력만 따지면 2021년 7월 경영관리파트 수석부장으로 입사한 뒤 4년 만에 부사장 직함을 달았다. 초고속 승진을 떠나 광속 승격이라고 할 수 있다.
삼양식품의 전병우 상무는 지난달 전무로 승진했다. 2023년 10월 상무로 승진한 뒤 2년 만에 인사에 이름을 올렸다.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의 장남인 1994년생인 전 전무는 2019년 10월 삼양식품에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했다.
전 전무의 승진을 두고 삼양식품은 “전 신임 전무는 불닭브랜드 글로벌 프로젝트와 해외사업확장을 총괄해 온 실적을 인정받았다”며 “특히 중국 자싱공장 설립을 주도해 해외사업의 성장 동력을 마련했으며 코첼라 등 불닭브랜드 글로벌 마케팅과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로 핵심 사업 경쟁력 강화를 이끌었다”고 설명했다.
최근 식품업계 오너3세의 승진 사례는 또 있다. 신동원 농심 회장의 장남으로 1993년생인 신상열 미래사업실장 전무는 11월 부사장으로 내정됐다. 2024년 하반기 정기 임원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한 지 1년 만이며 이전에는 상무로 3년을 근무했다. 2019년 농심에 평사원으로 입사한 뒤 6년 만에 부사장까지 오른 것이다.
이처럼 식품업계에서 오너3세의 승진 속도는 다른 산업과 비교해봤을 때 빠른 편에 속한다. 입사 뒤 부사장 직함을 달기까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18년,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16년이 소요됐다. 비교적 최근의 사례를 살펴봐도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은 입사로부터 9년, 정기선 HD현대 회장은 8년 뒤 부사장에 올랐다.
식품업계 오너3세들의 연이은 승진을 두고 최근 호실적으로 분위기가 좋은 사이 경영권 승계 작업을 진행시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오리온은 지난해 처음으로 매출 3조 원과 영업이익 5천억 원을 넘어섰다. 올해는 3분기까지 누적 매출 2조4079억 원, 영업이익 3907억 원을 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7.4%, 영업이익은 1.8% 늘어난 것이다.
▲ 삼양식품은 지난해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 5년5개월에 1인 평균 급여 5424만 원을 기록했다.
삼양식품도 매년 실적 신기록을 경신해 지난해에는 매출 1조7280억 원, 영업이익 3446억 원을 냈다. 올해 3분기 누적 실적은 매출 1조7141억 원과 영업이익 3850억 원을 기록하며 또 다시 최고 실적 경신이 확실해졌다.
농심은 3분기 누적 매출 2조6319억 원, 영업이익 1506억 원을 기록했다. 2024년 같은 기간보다 매출은 1.9%, 영업이익은 5.5% 늘어났다.
하지만 이들 회사는 이 같은 실적 성장세에도 직원 처우와 신제품 개발 투자 등에는 인색하다는 비판을 듣는다. 회사의 전반적 기조가 보수적인데 유독 승계에만 발 빠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식품업계는 다른 업계와 비교해 급여가 낮은 것으로 평가된다. 삼양식품은 지난해 직원의 평균 근속연수 5년5개월에 1인 평균 급여 5424만 원을 기록했다. 이는 최근 많이 상승한 값으로 2022년까지만 해도 평균 급여는 4천만 원 초반이었다.
농심은 평균 근속연수 11년에 1인 평균 급여 6094만 원을 기록했다. 오리온은 비교적 형편이 나아 평균 근속연수 10년에 1인 평균 급여 8천8백만 원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300인 이상 사업체 상용근로자의 연 임금 총액 평균은 7121만 원이었다.
재직자들의 기업 후기를 살펴보면 오리온은 연봉과 성과급 체계에 만족하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식품업계치고’ 높다는 것이 전반적 생각이었다. 반면 삼양식품과 농심은 공통적으로 “직원에게 인색하다”든가 “성과급이 적다”는 평가가 자주 눈에 띄었다.
더불어 기업 문화가 보수적이라는 지적도 존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해당 취업 사이트의 기업 후기에서 오리온에 재직하고 있다는 한 이용자는 경영진에 바라는 점으로 “매우 보수적인 문화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농심에서 인사ᐧ총무 직무로 근무한다는 한 이용자는 “인지도에 비해 급여나 복지 만족 수준은 미미한 편”이라며 “굉장히 수직적이고 보수적이다”고 평가했다. 삼양식품에도 “회사가 구닥다리다”, “기업의 성장만큼 내부 성장이 없고 오히려 90년대로 돌아가는 것 같다”는 후기가 작성됐다.
연일 호실적을 내고 있는 상황임에도 제품 개발에 소극적 태도를 취한다는 것 또한 이들 회사가 자주 지적받는 요인이다.
삼양식품은 올해 3분기 연구개발비를 85억 원 썼는데 이는 매출의 0.49% 수준이다. 2023년 0.48%, 2024년 0.46%에서 크게 늘지 않은 수준이다. 오리온은 45억 원으로 매출의 0.53%, 농심은 208억 원으로 0.8%를 연구개발에 지출했다.
물론 삼양식품의 연구개발비는 2022년 26억 원에서 2024년 79억 원으로 꾸준히 증가한 면이 있다. 하지만 여전히 글로벌 수준과 비교하면 아쉬운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네슬레의 경우 지난해 매출의 1.8%를 연구개발비에 투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기업들은 항상 경영권 승계에 신경을 많이 쓴다”며 “식품업계 오너3세들의 승진 속도가 일반인이 보기에는 빨라 보이지만 그들에게는 당연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이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