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원/달러 환율이 1500원 선에 바짝 다가서면서 금융시장 불안이 확산되고 있다.
원화 약세가 지속되면 외환시장 변동성 확대뿐 아니라 물가 상승, 기업활동 위축, 소비 둔화 등으로 연결되면서 실물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왼쪽부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14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시장상황 점검회의 시작에 앞서 기념 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억원 금융위원장, 이찬진 금감원장 등 금융당국 수장이 모인 경제금융 컨트롤타워 ‘F4’의 정책 대응 역할이 한층 더 중요해졌다는 시선이 나온다.
25일 금융투자업계 안팎에 따르면 금융당국은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넘나들면서 경제금융 시장 리스크 확대 우려가 커지자 위기 대응 태세에 돌입했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 등 주요 수출 대기 업을 만난 데 이어 기재부와 한국은행, 금감원 등은 최근 대형 증권사 외환담당자들도 불러 환전 관행 실태 점검에 나섰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국민연금, 보건복지부가 환율안정 대책을 논의하는 4자 협의체도 마련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국민연금이 포함된 외환 대응 협의체는 없었다.
최근 원/달러 환율 상승은 과거 경제위기 상황과 달리 개인과 기관투자자의 해외투자 확대 등 수급 구조적 변화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에 따라 자본시장 ‘큰 손’인 국민연금을 동원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국은 전날 첫 회의에서부터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 투자가 외환시장 수급에 미치는 변동성을 줄이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은 국민들의 은퇴 뒤 노후 소득 확보를 위해 연금을 운용하는 기관이다. 국민 은퇴자산의 수익률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만큼 장기적 해외투자 계획 등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운용한다.
증권사 외환담당자들과 회의 역시 같은 맥락의 행보로 읽힌다. 당국은 ‘서학개미’의 해외주식 거래 급증 현황과 관련 대량 환전 관행을 점검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거주자의 해외 투자 확대에 외국인 자금 이탈이 겹쳐 나타나는 외환시장 수급 불균형을 조정해 환율 상승세를 진정시켜 보겠다는 취지로 파악된다.
서울외환시장에 따르면 이날 오후 3시30분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7원 내린 1472.4원에 거래를 마쳤다. 최근 6거래일째 상승세가 잠시 멈췄다.
다만 원/달러 환율은 이미 오랫동안 1400원대에 머물면서 시장의 불안과 경계심이 높아지고 있다.
▲ 25일 서울외환시장 오후 3시30분 종가 기준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4.7원 내린 1472.4원에 거래를 마쳤다. 사진은 하나은행 딜링룸. <연합뉴스>
이정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현재 달러 인덱스 대비 달러-원의 레벨은 14.8배로 트럼프 관세 충격 당시를 가뿐하게 넘어서고 있다”며 “같은 1470원대 환율이지만 원화 가치는 한국이 비상계엄에 빠졌을 때보다도 더 하락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이 머지않아 1500원대를 넘어설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바라본다.
박형중 우리은행 연구원은 “지금처럼 높은 환율이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될 수 있다”며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해외투자가 확대되는 등 한국 경제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 연구원은 “일본 신정부의 대규모 추경 편성에 따른 엔화 약세, 12월 미국의 기준금리 결정 등 대내외적으로 환율 상승압력을 더 키울 수 있는 대내외 요인도 있다”며 “이를 고려하면 올해나 내년 1분기에는 환율 상단이 1500대로 올라설 수도 있다고 본다”고 내다봤다.
앞서 1997년 IMF 외환위기, 2008~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환율 수준을 다시 한 번 눈앞에 두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제조업 수출 중심의 경제구조로 환율 등 외환시장 변동성의 영향을 크게 받을 수밖에 없다.
특히 수입을 해야 하는 중소기업, 달러자산이 없는 중소기업, 경제취약계층 등은 고환율에 따른 물가 상승의 타격을 고스란히 받게 된다. 기업의 경영활동, 국민의 소비활동 위축으로 직결될 수 있는 문제다.
재정부터 외환, 금융, 자본시장 정책과 감독을 총괄하는 F4의 컨트롤타워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진 시점이다. 당장 이번주 목요일 열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결정에도 시장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은이 이번 금통위에서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금리 결정 외에도 이창용 총재의 통화정책 방향성에 관한 발언은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재 원/달러 환율 상승세를 단순히 수치적으로 접근하기보다 구조적 변화에 초점을 맞춰 장기적 안목에서 재정, 금융정책 조정과 대응방안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며 “당장 환율의 하향 안정화보다 경제주체들에 새로운 경제구조, 경제체력에 따른 환율 수준에 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이에 맞는 기업정책, 경제정책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고 바라봤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