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 기자 bamco@businesspost.co.kr2025-11-18 11: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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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국민의힘이 '반 이재명' 투쟁을 벌이며 재계의 숙원인 '배임죄 폐지'를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계열 정당은 이른바 정통 보수정당으로서 1970년대 산업화를 이끌었고, 그 뒤에도 '친기업'은 당의 기둥이 돼왔다. 하지만 정치투쟁 와중에 어쩌다 '반기업' 행보를 보이는 딜레마에 빠진 셈이다.
▲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16일 국회에서 열린 현안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8일 정치권 움직임을 종합하면 국민의힘은 대장동 항소 포기 결정의 배후로 이재명 대통령을 지목하면서 대여 투쟁의 고삐를 죄고 있다. 이 와중에 배임죄 폐지 반대에도 목소리를 더욱 높이고 있다.
앞서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재명 정권이) 기업인들이 바라지도 않고 요구하지도 않는 배임죄 완전 폐지를 기업인들의 이름을 앞세우며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의 대표적 숙원인 배임죄 폐지를 '친기업' 정당을 표방하는 국민의힘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 추진을 두고 '이재명 구하기'라 의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있는 대장동 사건의 죄목이 배임죄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민주당이 배임죄를 없애 이 대통령 재판을 무효로 만들려 한다고 국민의힘은 주장한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그동안 배임죄 폐지 또는 완화를 꾸준히 주장해 왔다. 실제 관련 입법에도 적극 나섰다.
당장 올해 8월11일 신동욱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 10명은 '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배임죄를 완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을 비롯한 국민의힘 12명 역시 7월4일 '형법 일부개정법률안'을 통해 배임죄를 완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국민의힘의 전신이던 자유한국당 시절 황교안 당대표는 2019년 9월22일 삭발로 결의를 다지고 '민부론'을 발표했는데 거기에는 배임죄 폐지가 주요하게 포함돼 있었다.
물론 국민의힘이 오랜 역사를 부정하고 배임죄 폐지 반대를 통해 '반기업'으로 돌아선 것은 아니다. 이 대통령에 대한 공격에 있어 대장동 사건은 가장 큰 약한 고리로 꼽히는데 '우연히' 배임죄가 얽혀들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통해 이 사건에 다시 여론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의힘은 국정조사 등을 요구하며 연일 현 정부를 공격하고 있는데 배임죄 폐지 반대는 그 일부일 수밖에 없다.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15일 논평을 통해 "더불어민주당과 정부가 내년 상반기까지 형법상 배임죄를 폐지하고 대체 입법을 마무리하겠다고 한다"며 "이는 결코 기업과 국민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오직 '이재명 대통령 방탄을 위한 입법'이며 국민의 눈에는 그저 '낯부끄러운 처사'로 비칠 뿐"이라고 공격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배임죄 폐지는 이 대통령과 무관하며 '친기업' 입법이라 반격하고 있다. 코스피 4천 시대를 맞아 상법 개정으로 기업이 불편해진 만큼 기업인 사기 진작을 위해 배임죄 폐기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병기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9월30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배임죄 폐지는 정치 싸움이 아니다"라며 "민주당은 정치적 계산과 낡은 이념에 묶이지 않고 민생경제와 미래를 위한 투자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의장 역시 10월1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국민의힘이 형법상 배임죄 폐지를 놓고 이 대통령 면소를 위한 꼼수 아니냐고 지적을 두고 "그렇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앞서 이 대통령은 9월15일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서 열린 '제1차 핵심규제 합리화 전략회의'에서 "결정을 잘못하면 (배임죄로) 유죄가 나 감옥에 간다"며 "판단과 결정을 자유롭게 하는 게 기업의 속성인데 위험해서 어떻게 사업하겠느냐. 이런 것을 대대적으로 고쳐보자"고 말했다. 이날 발언은 여권이 배임죄 폐지를 추진하는 실질적 계기가 됐다.
재계 반응도 국민의힘을 부담스럽게 만든다.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한국경제인협회, 한국경영자총협회은 9월30일 잇따라 입장문을 내고 여권의 배임죄 폐지 움직임에 강력한 지지를 보냈다. 이들 단체는 전통적으로 민주당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왔는데 잠시나마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대한상의는 입장문에서 "정부와 여당이 경제형벌 합리화 1차 방안을 발표한 데 대해 환영한다"며"그동안 경제계가 지속 요청해온 배임죄 가중처벌 폐지, 행정조치를 우선하고 형벌을 최후수단으로 한 점, 형벌 대신 경제적 패널티 중심으로 전환한 점 등은 TF 출범 이후 경제계와 소통하며 기업 현장의 의견을 적극 반영한 결과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고 말했다.
여기에 한미 통상협상 타결을 두고도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처지가 역전됐다.
▲ 이재명 대통령이 16일 서울시 용산구 대통령실에서 열린 한미 관세협상 후속 민관 합동회의에서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앞줄 오른쪽부터 여승주 한화그룹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 대통령, 최태원 SK그룹 회장. 뒷줄 오른쪽부터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 김용범 정책실장. <연합뉴스>
민주당은 재계의 가장 큰 고충인 한미 통상협상의 불확성을 걷어내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은 협상 결과에 대한 '송곳 검증'을 공언했는데 이는 자칫 재계의 대미 수출 및 투자에 발목을 잡는 것이 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16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미 관세협상 후속 논의를 위한 민관 합동회의를 열고 재계 총수들을 만나 "한미 통상 안보 협상 과정에서 가장 애를 많이 쓴 것은 여기 있는 분들을 포함한 기업인"이라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규제 완화와 해제, 철폐 중에서 가능한게 어떤 게 있을지 실질적으로, 구체적으로 지적을 해주면 제가 신속하게 정리해 나갈 것"이라며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은 이날 같은 자리에서 정부에 감사를 전하며 나란히 국내 투자와 고용 확대를 약속했다. 이에 한미 무역 협상 타결을 계기로 현 정부와 기업간 관계가 끈끈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반면 국민의힘은 한미 관세협상 타결을 두고 국회 비준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7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한미 무역 협상과 관련해 "국익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한 협상결과에 대해 국회의 검증과 동의 절차 없이 특별법만으로 처리하려는 것은 국민의 알 권리를 무시한 명백한 반헌법적 행위"라며 "헌법이 정한 비준절차를 존중하고 국민 앞에 협상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이 주장하는 국회 비준은 소요 시간이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
국회 비준은 정부의 협정문 국회 제출, 소관 상임위원회 심사,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국회 본회의 표결을 거쳐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은 송곳 검증을 벼르고 있어 절차 통과에 상당한 시일이 걸릴 수 있다.
반면 정부가 추진하는 특별법은 사안의 시급성에 따라 정부와 국회의 합의에 따라 일부 행정 절차를 생략하거나 단축하는 게 가능하다.
국민의힘의 이런 행보를 두고 발목잡기를 지나 반기업적 행태라는 비판이 여권에서 나온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국민의힘은 경제 재 뿌리기 정당인가"며 "한미 관세·안보 팩트시트를 '백지시트'로 폄훼하는 것은 국익을 해치는 선동일 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제(16일)는 대통령과 대기업 총수들이 만나 5년간 1300조 원에 달하는 국내 투자 계획을 논의했다"며 "멈췄던 우리 경제가 힘차게 다시 뛰고 있다. 국민의힘은 함께 뛰어주지는 못할망정 발목 잡지 말길 바란다"고 지적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