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포용금융 정책 추진 방향을 ‘금리 인하’로 구체화했다. <그래픽 씨저널> |
[비즈니스포스트] “(15.9% 금리는) 너무 잔인하지 않아요?”
이재명 대통령이 9월 국무회의에서 최저신용자특례보증 금리를 가리켜 한 말이다. 주로 저축은행이 취급하는 금융상품을 겨냥한 이 말에 저축은행 업계는 가슴 졸이고 있다.
서민금융진흥원에서 운영하는 정책금융 상품 가운데 고금리대안자금(햇살론15, 최저신용자특례보증, 불법사금융예방대출)은 모두 15.9%의 대출금리를 적용한다. 햇살론15는 시중은행이나 인터넷은행이 참여하지만 최저신용자특례보증은 저축은행이 주로 취급한다.
저축은행은 시중은행보다 저신용자의 이용 비율이 높다. 지난해 기준 저신용자 대상 신규 신용대출 공급 비중은 저축은행이 34.2%, 은행이 7.3%로 차이가 크다. 이재명 대통령의 ‘잔인한 금리’ 발언이 특히 저축은행 업계에 압박으로 작용하는 이유다.
이재명 정부 들어 ‘포용금융’이 강조되고 있다. 포용금융은 123대 국정과제 가운데 하나로 금융 약자가 금융서비스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지원하는 것을 말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포용금융을 정책적으로 실현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취임 한 달여 만인 10월 ‘소비자·서민 중심 “금융대전환” 간담회’를 열고 “서민·취약계층에 대한 금융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다”며 “정책서민금융상품의 금리도 낮추어 나가겠다”고 말했다.
포용금융 정책 추진 방향을 ‘금리 인하’로 구체화한 것이다. 제1금융권 금리에 비해 제2금융권 금리 수준이 훨씬 높으므로 합리적 정책 판단으로 보이지만, 한쪽에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 저축은행 업계에 가해지는 이중의 압박, 금리 인하와 연체율 관리
저축은행이 취급하는 대표적 서민금융 상품은 ‘최저신용자특례보증’과 ‘불법사금융예방대출’이다. 모두 연 15.9%의 금리가 설정돼 있다.
이 금리는 보통 대출금리 8%와 보증료 7.9%로 구성된다. 대출금리에는 은행의 자금 조달 비용과 운용 경비가, 보증료에는 대위변제 비용이 포함된다.
대위변제는 금융회사가 대출을 실행하고 금융 소비자가 원리금을 갚지 못할 경우 정부 등 보증을 선 기관이 대신 갚아주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대위변제를 하더라도 저축은행의 부담이 완전히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정책금융상품에서 연체가 발생하면 정부가 대위변제를 진행한다 해도 연체가 발생한 만큼 저축은행의 연체율이 높아지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저축은행 연체율은 6.90%로 직전 분기(7.53%)보다 0.63%포인트 하락했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다. 금융감독원이 권고한 저축은행 업계 연체율 관리 가이드라인은 6.0% 미만이다.
정책금융상품의 주요 플레이어로서 저축은행 업계는 금리 인하와 연체율 관리라는 이중의 정책 압박을 받고 있는 셈이다.
◆ 서민금융상품 지속가능성, 이억원 제도적 지원에 달려
정부가 보증하는 서민금융 상품의 대위변제율은 매우 높은 수준이다. 2024년 최저신용자특례보증, 햇살론15의 대위변제율은 각각 26.8%, 25.5%에 이른다. 이는 같은 해 최대치를 기록한 신용보증재단의 대위변제율이 5.66%인 것과 비교하면 차이가 크다.
대위변제율이 높은 만큼 금융위원회의 정책적 지원 정도는 서민금융상품의 지속가능성을 좌우하는 요소가 된다. 서민금융상품의 정부 보증비율은 90%로 연체된 금액의 대부분을 정부가 감당하고 나머지 10%만 금융기관이 손해를 감수하는 구조다.
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출연금 변동 없이 대출금리만 인하할 경우 결국 정부 예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다만 서민금융상품의 실제 수요가 예상 규모를 뛰어넘어왔기 때문에 적정한 예산을 편성하는 것이 어려움으로 지적된다.
금융위원회의 최저신용자특례보증 실적을 보면 2022년 첫해 1002억 원(3만4208건)이 공급돼 공급목표 600억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2023년에는 수요가 몰려 2924억 원(11만2009건)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금리 인하를 추진하는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관련 예산 증액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원회 내년 예산안에는 햇살론 금리를 15.9%에서 12.9%로 내리고 사회적 배려자의 경우 9.9%까지 낮추기 위해 예산을 1067억 원 증액하는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 저축은행 업계가 걱정하는 것과 바라는 것
저축은행 업계가 우려하는 것은 금리가 손익분기점을 위협하는 수준까지 내려가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금 수준에서 금리를 인하하면 일부 저축은행은 손익분기점을 위협받는 수준이어서 오히려 공급을 줄이려고 할 것”이라며 “정부에서 예산을 늘린다고 하더라도 조달비용(예금이자비용, 행정비용) 자체에는 변화가 없기 때문에 기본적인 마진은 고려해서 이자를 책정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저축은행은 제1금융권만큼 리스크를 흡수할 수 있는 자금이 부족한 상황이므로 금리 인하 요구는 실정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편으로 금리를 무조건 낮추는 것이 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금융상품을 이용하는 중저신용자보다 높은 신용도를 갖고 있는 소비자가 보다 높은 금리로 대출 상품을 이용해야 한다면 역차별 논란도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주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