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국회가 철강업계의 숙원인 'K스틸법'을 11월 안에 통과시키기 위해 막판 속도를 내고 있다.
철강 업계는 구조적 업황 부진에 K스틸법의 통과가 절박한 상황이다. 정부가 최근 중국산 압연 후판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2026년도 예산안과 특검팀의 수사를 둘러싼 정치적 대립, 환경단체의 반발 등 변수가 작용하면 시점이 늦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 국회가 철강 업계의 숙원이라 할 수 있는 'K스틸법'을 11월 안에 통과시키기 위해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은 경상북도 포항의 포스코 포항제철소 선재 공장 내부 모습. <포스코>
5일 정치권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오는 19일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고 'K스틸법안' 등을 논의한다.
이른바 K스틸법안(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기술 전환을 위한 특별법안)은 △탄소중립 및 녹색철강 지원 △전력공급망과 원료 기반 확충 △불공정 무역 대응 등을 뼈대로 한다. 여야 의원 106명은 올해 8월 초 어려움을 겪는 철강 업계 지원을 위해 K스틸법을 공동발의했다.
특히 K스틸법안은 사업개편(구조조정) 및 저탄소 등 녹색철강기술에 대한 세제·재정 지원, 연구개발(R&D) 지원, 수입 철강재 대응 방안 마련 등의 내용도 담고 있다. 대통령 직속 '철강산업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를 설치하고 5년 단위의 국가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앞서 정치권에서는 법안이 신속하게 통과될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논의에 제동이 걸렸다.
제정법안인 만큼 심사 내용이 많은 데다 여야 대치 속 국정감사까지 겹치며 우선순위에서 밀린 탓이다. 실제 이 법안은 연관된 부처가 7곳이기 때문에 정부 내에서도 협의가 많이 필요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K스틸법안이 이번 달 안에 본회의에서 처리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오는 19일 예정된 상임위 법안심사소위도 열리고 여야 모두 법안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어기구 김주영 허종식 권향엽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정재 이상휘 국민의힘 의원, 무소속인 김종민 의원 등 국회 철강포럼 소속 의원들은 4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스틸법의 조속한 국회 통과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은 "철강산업의 위기는 곧 대한민국 제조업 전체의 위기이자 지역경제의 위기로 직결된다"며 "K스틸법이 11월 내 본회의를 통과할 수 있도록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강조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도 5일 충남 당진에서 열린 '철강산업 위기대응 간담회'에서 현대제철 등 주요 철강업계 관계자들과 만나 "철강산업의 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입법 지원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K스틸법 통과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이달 통과를 단언하긴 힘들다는 관측도 정치권에서 나온다. 법안 내용이 많고 기후단체 반발 등을 고려하면 상임위원회 심사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 여기에 여야가 새해 예산안과 내란특검 수사 등을 두고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어 본회의 개회 등이 힘들 수도 있다. 특히 최근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겨냥한 내란특검의 수사로 여야 대립은 최고조를 향하고 있다.
▲ 추경호 전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달 31일 서울고검에 마련된 내란 특검팀 사무실에서 조사를 마친 뒤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앞서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장 대표는 지난 9월8일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한 회담에서 민생경제협의체 구성에 합의했고, 여기서 스틸법을 공통 공약으로 논의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더 센 3특검법', 검찰청 폐지 등을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 등을 둘러싸고 극한 대립이 이어지면서 사실상 좌초됐다.
아울러 환경단체의 반발이 심한 것도 변수가 될 수 있다. 환경단체들은 K스틸법안을 두고 "녹색철강 전환을 위한 실효성을 담보하기엔 미흡하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녹색철강시민행동(광양환경운동연합, 기후넥서스, 기후솔루션, 당진환경운동연합, 빅웨이브, 액션스픽스라우더, 충남환경운동연합, 포항환경운동연합, 환경운동연합)은 8월7일 공동 성명을 통해 "K-스틸법(안)은 녹색철강을 핵심 명분으로 내세우면서도 정작 녹색철강의 정의와 기준, 온실가스 감축 책임에 대한 규정이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K스틸법안 통과가 계속 늦어진다면 올해 6월부터 미국에서 50% 관세율을 적용받는 철강 업계 고통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고율 관세와 유럽의 수입 쿼터 축소로 수출길이 좁아지는 가운데 탄소배출권 거래제 강화 등 규제 부담이 늘면서 원가 압박이 심화하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말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반도체·자동차 등 분야 관세 협상을 타결했지만 안보 품목으로 분류된 철강은 논의 테이블에조차 오르지 못했다.
이에 정부는 우선 철강 업계의 급한 불을 끄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4일 '철강산업 고도화 방안'을 발표하고 철강산업의 생존력 확보와 미래 경쟁력 강화를 위한 산업구조 재편에 나선다고 밝혔다.
기획재정부도 3일 중국산 탄소강 및 합금강 열간 압연 후판에 향후 5년간 34.1%의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번 조치는 지난해 10월4일부터 진행한 조사 결과 중국산 철강 제품의 저가 수입으로 국내 산업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을 확인한 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중국산 저가 철강의 우회 수입 차단, 철강 수급 조절 등 근본적 개선을 위해선 K스틸법안 통과가 필수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이날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K스틸법은 중국산인데 국내에서 가공한 뒤 국산으로 둔갑하는 사례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며 "중국산이 우회 수입되는 상황들이 계속 있었는데 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성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