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석천 기자 bamco@businesspost.co.kr2025-10-14 13:4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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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미국과 중국의 무역갈등이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한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지경이다.
한국 정부는 글로벌 무역질서의 혼란뿐 아니라 미·중 정상회담 개최 등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의 흥행 대성공을 바라고 있는데 곤란한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자칫 경주 APEC 정상회의가 미·중 갈등으로 별 성과 없이 끝나는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이재명 대통령이 8월25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14일 정부와 정치권의 움직임을 종합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주석이 10월31일부터 11월1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고 별도 미중 정상회담을 열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각)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중국에 대해 걱정하지 말라,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며 "존경받는 시진핑 주석도 잠시 실수했을 뿐이다. 그는 자국의 경기 침체를 원하지 않고, 나도 그렇다. 미국은 중국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돕고 싶을 뿐이다"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불과 이틀 전 사실상 중국과 '관세 전쟁'을 선포했던 것에서 돌변해 유화적 태도를 보인 것이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1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중국이 무역과 관련해 극도로 공격적인 입장을 취했다"며 "미국은 이에 대응해 11월 1일부터 중국산 제품에 추가로 10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현재 55%의 관세가 적용되고 있는 중국에 최종적으로 15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조치는 중국이 희토류 수출 제한에 나선 것에 대한 반격이었다.
중국 상무부는 100% 추가 관세 선포 전날인 9일 '역외(해외) 희토류 물자 수출 통제 결정'을 내놨다. 이를 통해 희토류 13종의 수출을 제한했고 수출 시 중국 상무부가 발급한 수출허가증을 받도록 했다. 수출 통제에는 중국산 희토류를 사용해 해외에서 제조된 물자도 대상에 포함된다. 해외 군수 기업에 대한 희토류 수출 신청이나 '관심 리스트' 기업 등에 대해서는 수출 신청이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중국의 이와 같은 강경 정책은 그동안 미국이 중국에게 부과한 55% 관세율에 대해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신호라는 분석이 나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100% 추가 관세 폭탄 선언'에 시장은 곧바로 반응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이 나온 10일(현지시각) 미국 다우존스지수는 전날보다 1.9%, S&P500 지수는 2.7% 떨어졌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 지수는 3.56% 폭락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등 빅테크 기업들의 손해도 막심해 모두 7700억 달러(1100조 원)가 증발했다. 시장의 반응은 큰 압력이 됐고,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존경받는 시 주석"이라면서 중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였다.
이처럼 며칠 사이 미중 무역 갈등이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경주 APEC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우리 정부의 시름도 깊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에 화해 제스처를 보냈지만 언제 어떻게 상황이 또 바뀔지 알 수 없게 된 탓이다.
일단 트럼프 대통령이 대중 무역 제재에서 한걸음 물러서면서 그가 APEC 정상회의에 참여할 가능성은 다시 커졌다. 이날 말까지 양국 실무진 협상에 진전이 있다면 경주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도 크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은 13일(현지시각)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우리는 상당한 수준으로 긴장을 완화시켰고 한국에서 미·중 정상회담 일정이 여전히 이뤄질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베선트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100% 추가 관세를 11월 1일 전에는 발효되지 않을 것이라고 했고 양국 협상 파트너 간의 실무급 회의가 여러 차례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상무부는 12일 공식 입장문을 통해 "중국은 미국이 잘못된 처사를 즉시 바로잡고 양국 정상간 통화를 통해 합의된 공감대를 준수하며 이렵게 얻은 협상의 성과를 지키고 중·미 경제 무역 협상 메커니즘의 역할을 계속 발휘하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미국과 중국이 무역갈등을 진화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재명 정부의 최대 현안인 한미 관세협상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관측도 나온다. 한미 관세협상은 그동안 미중 갈등이 고조되면서 우리나라에 양국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충성심 시험대'로서 격화한 측면도 있기 때문이다.
▲ 이재명 대통령이 6월10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대통령실>
최근 미국 정부는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우리 정부에 '새로운 제안'도 내놨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13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저희가 미국 측에 문제점들을 다 설명했고 미국 측에서 지금 새로운 대안을 들고나왔다"며 "그래서 지금 검토하고 있는 단계"라고 말했다. '새 대안'의 구체적 내용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심하기엔 아직 이르다.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스타일에 따라 미국은 언제든 대중국 압박의 수위를 높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경주 APEC 정상회담 이전에 미중 양국간 실무협상에 다시 교착 상태에 빠진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않을 공산이 크다. 혹은 참석하더라도 잠시 한국에 머물면서 한미 정상회담을 약식으로 진행하는 선에서 그칠 수 있다.
레스터 문손 시드니대 미국 연구소(USSC, United States Studies Centre) 선임연구원이 연구소 홈페이지에 13일 게재한 글에서 트럼프의 외교 방식을 두고 "모든 것, 모든 곳, 한꺼번에 행동하는 충격요법식(shock-and-awe) 외교적 접근 방식이다"라며 "이전 합의와 규범은 당장의 행동을 위해 축소되거나 버려진다"고 경고했다.
김준일 시사평론가는 13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제대로 안 열리면 한미 정상회담도 완전 약식으로 열릴 수 있다. 지금 진행되는 한미 관세협상이 어떻게 진행될지 봐야된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과 중국은 언제든지 서로 돌아설 수 있는 여지를 남겨 두고 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13일 방송 인터뷰에서 "많은 부분은 중국이 대응하느냐에 달려있다. 미국 대통령은 중국보다 훨씬 더 많은 카드를 갖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바람은 지렛대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상무부는 12일 "우리는 관세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며 "미국이 조치를 취할 경우 단호하게 상응하는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권석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