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ournal
Cjournal
시민과경제  경제일반

외환보유고 80%를 현금으로 내놓으라는 미국, 통상협상 실마리 찾기 난망

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 2025-09-15 14:31:50
확대 축소
공유하기
페이스북 공유하기 X 공유하기 네이버 공유하기 카카오톡 공유하기 유튜브 공유하기 url 공유하기 인쇄하기

[비즈니스포스트] 미국 조지아주 한국인 노동자 구금 사태 여파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한미 통상협상이 미국의 '무리한 요구'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미국이 우리나라와 합의한 투자금액 3500억 달러를 두고 사실상 현금을 '공짜로' 내놓으라는 입장을 밝히면서 양국 간 후속협상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외환보유고 80%를 현금으로 내놓으라는 미국, 통상협상 실마리 찾기 난망
▲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5일 미국과의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 출국장으로 향하고 있다. <연합뉴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15일 오전 한미 관세협상 후속 협의를 위해 미국으로 출국한다고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가 전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이 뉴욕에서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과 면담하고 귀국한 뒤 하루 만에 이뤄지는 고위급 릴레이 방미다.

여 본부장은 미국 워싱턴D.C.에서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미국 통상 당국 관계자 등을 만나 관세 협상 후속 협의를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우리나라와 미국 정부는 지난 7월30일 미국이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펀드를 조성한다는 내용의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미국이 최근 우리나라에 일본과 유사한 양해각서(MOU) 체결을 요구하고 나서면서 후속협상이 사실상 교착상태에 빠졌다. 

일본은 미국이 투자처를 결정하면 45일 안에 현금을 투입하고 투자금이 회수된 뒤에는 미국이 투자 수익의 90%를 가져가는 내용의 MOU 체결에 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우리나라도 이와 유사한 수준으로 서명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고려하는 간접투자 방식은 배제한 채 현재 외환보유고의 80%가 넘는 금액을 사실상 미국에 현금으로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은행이 3일 발표한 우리나라의 2025년 8월말 기준 외환보유고는 4162억9천만 달러 수준이다.

우리 정부는 직접 투자 비중을 최대한 낮추는 대신 각종 보증을 강화해 부담을 낮추길 원하고 있지만 미국의 강경일변도 협상방식으로 실마리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외환보유고 80%를 현금으로 내놓으라는 미국, 통상협상 실마리 찾기 난망
▲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부 장관이 1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시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CNBC와의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각) CNBC 인터뷰에서 “한국은 관세를 내든지, 아니면 합의를 받아들이든지 양자택일(black or white)을 해야 한다”며 관세를 15%로 깎아주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도 14일 인천국제공항에 귀국한 뒤 협상 성과를 묻는 질문에 "협의가 진행 중"이라며 말을 아꼈다.

더구나 미국은 현금 투자에 더해 투자 이익의 90%를 미국에 귀속시키고 투자처 선정도 미국 정부가 한다는 조건까지 내걸고 있다.

만일 2029년 초까지 이어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임기 안에 3500억 달러를 현금으로 투자한다면 우리나라가 보유한 달러가 대량으로 빠져나가 원화가치가 급락하고 외환 유동성 위기를 발생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해 정부는 미국에 ‘무제한 한미 통화 스와프’를 제안했다. 통화 스와프는 비상시 자국 통화를 담보로 상대국 통화를 빌려올 수 있는 계약으로 외화 유동성 위기를 막는 안전판 역할을 수행한다.

대규모 대미 투자에 따라 한국 외환 시장의 불안정성이 커질 수 있기에 이를 막을 안전장치로서 통화 스와프를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으로 풀이된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외환시장을 고려할 수밖에 없어서 그 사안(한미 통화스와프)도 고려하면서 협상에 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미국의 요구 수준이 ‘선’을 넘자 국내 정치권 일각과 미국 내부에서도 차라기 한미 관세협상을 깨고 25% 관세를 지불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진보당은 이날 논평을 내어 “(미국의 요구를) 하나하나 뜯어볼수록 이것은 협상이 아니라 한국경제에 대한 약탈”이라며 “정부는 지금이라도 대미투자 철회를 선언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약탈적 협상을 거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센터(CEPR)의 선임경제학자 딘 베이커는 지난 11일(현지시각) 한국 정부가 관세를 낮추기 위해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 3500억 달러를 내는 것보다 그 돈으로 한국의 수출 기업을 지원하는 게 낫다는 주장하기도 했다.

베이커는 미국이 15%로 낮춘 상호관세가 다시 25%로 증가하면 한국의 대미 수출은 125억 달러 감소할 것으로 추산했다. 대미 투자액의 20분의 1(약 175억 달러)만 대미 수출 감소로 피해를 입을 기업과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무리한 요구가 있더라도 우리나라가 관세협상을 깨는 건 현명하지 못한 선택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한미 FTA(자유무역) 기획단장을 맡았던 이혜민 한국외대 초빙교수는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만약에 합의를 깨게 되면 미국이 25%로 돌아간다는 보장이 없다”며 “(우리 정부가) 보조금을 주게 되면 미국은 소위 보조금에 대한 ‘상계 관세’ 조치를 취할 수도 있고 품목 관세 조치도 취할 수 있다”고 짚었다.

이 교수는 “미국 내에서도 (관세협상을) 너무 무리하게 몰아붙인다는 여론도 있기 때문에 계속 협의를 하면서 논리적으로 부당함을 얘기하고 설득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외환보유고 80%를 현금으로 내놓으라는 미국, 통상협상 실마리 찾기 난망
▲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15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금까지 한미 두 나라의 협상 관련 움직임을 종합해 볼 때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장기전 양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미국의 요구가 매우 무리한 수준인 데다 조지아주 노동자 구금 사태로 미국 투자에 대한 기업들의 불안감이 커진 상황에서 섣불리 협상의 결론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이날 언론브리핑에서 한미 관세협상 마무리가 늦어진다는 질문에 “기간과 국익이 꼭 연결된다고 말하기는 어렵다”며 “외환 보유나 우리 기업 보호 등 다양한 국익의 측면에 영점을 맞춰서 최대한이 되는 지점의 (협상) 시간도 계산의 범위에 들어간다”고 말했다.

강 대변인은 이어 “대통령 말씀처럼 우리 국익에 훼손되지 않는 방향으로 무리한 요구가 있다면 국익 보전을 목표로 협상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김대철 기자

최신기사

중국 석탄 발전소 원전으로 전환 추진, 탄소중립 목표 달성에 힘 싣는다
비트코인 1억6117만 원대 횡보, 미국 9월 금리결정 앞두고 관망세
코스피 외국인 매수세에 사상 첫 3400선 돌파, 10거래일 연속 상승
[오늘의 주목주] '지주사 자사주 소각 기대' 삼성물산 7% 상승, 코스닥 테크윙 21..
연구진 "유럽 올해 여름 기상이변으로 430억 유로 손실, 2029년엔 1260억 유로"
한국거래소 정은보 'MSCI 선진국지수' 겨냥 뉴욕행,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물길 트나
[현장] 명인제약 이행명의 상장 승부수, 전문경영인 체제로 글로벌 CDMO 기반 닦는다
열연강판 사업 고전 중인 포스코 이희근, 알래스카 LNG가스관용 대량 공급으로 부진 만..
중국 CATL ESS 수요 기대로 투자의견 상향, JP모간 "가장 저렴한 배터리주"
산재 사망사고 반복시 과징금 영업이익 5%, 고용부 '노동안전 종합대책' 발표
Cjournal

댓글 (0)

  •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 저작권 등 다른 사람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댓글은 관련 법률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 -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 등 비하하는 단어가 내용에 포함되거나 인신공격성 글은 관리자의 판단에 의해 삭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