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재 기자 piekielny@businesspost.co.kr2025-08-20 15:19:42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금융감독원이 삼성생명의 계열사 회계처리 방식을 들여다본다.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등 삼성생명의 주요 계열사 회계처리 방식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그룹 전반의 지배구조에 영향을 줄 수 있어 삼성그룹에 민감한 사안으로 평가된다.
▲ 금감원이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 관련 비공개 간담회를 연다. 사진은 14일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이찬진 원장이 입장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에 따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이번 사안을 어떻게 다루는지는 향후 이찬진 호 금감원의 검사 강도나 방향성을 파악하는 주요한 잣대가 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이 원장이 참여연대 출신인 만큼 삼성생명 회계처리 기준 변경을 요구하는 시민사회 주장에 힘을 실을 수 있다는 전망과 취임 초기 안정성 측면에서 현재의 회계 기준을 인정해 줄 수 있다는 전망이 함께 나오고 있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21일 생명보험사의 계열사 주식 회계처리 방안을 두고 대형 회계법인 관계자 등 업계 전문가를 불러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한다.
현재 삼성생명의 회계처리 방식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주장이 시민사회와 학계, 정치권 등에서 확산하는 가운데 이에 대한 의견을 듣겠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최근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보유 지분율에 변화가 생기면서 이들 지분을 어떻게 인식할지를 놓고 회계처리 논란이 불거졌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와 삼성화재가 밸류업을 위해 자사주를 소각하며 보유 지분율이 높아졌는데 이에 따라 삼성전자 지분을 일부 매각하고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한국회계기준원 등 학계에서는 삼성생명이 자회사로 바뀐 삼성화재 실적을 지분법 방식으로 인식하고 삼성전자 지분 역시 일부 매각이 이뤄진 만큼 새로운 회계기준(IFRS17)에 따라 보험부채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회계처리 방식 변경이 삼성그룹 전체 지배구조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생명은 1980~1990년대 판매한 유배당 보험상품의 보험료를 기반으로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등 핵심 계열사 지분을 취득했다. 회계처리 방식을 바꿀 경우 중장기적으로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지분율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삼성생명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삼성그룹을 전체를 지배하는 데 중요한 고리 가운데 하나로 평가된다.
특히 금감원의 이번 비공개 회의는 지난 주 참여연대 출신이자 이재명 대통령의 측근으로 평가되는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한 뒤 일주일 만에 이뤄지면서 금융권의 더욱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참여연대는 한국 경제가 바로 서기 위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가 투명해져야 한다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문제에 오랜 기간 목소리 낸 경제분야 시민단체다.
이찬진 원장도 과거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장, 집행위원장, 정책자문위원장 등을 거치며 삼성그룹 지배구조 논란의 핵심이었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 등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번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을 놓고도 참여연대 출신들은 강경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김남근 박홍배 이강일 이정문 더불어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 어떻게 풀 것인가’ 긴급토론회에는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출신인 김경률 회계사와 박현용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변호사 등이 참여했다.
김경률 회계사는 ‘삼성 삼성! 삼성?’, 박현용 변호사는 ‘삼성생명의 특혜적 삼성전자 주식 보유에 비친 대한민국의 단상’을 주제로 토론을 진행하며 현재의 회계처리 방식을 삼성그룹만을 향한 특혜라고 주장했다.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김남근 의원도 참여연대 집행위원장 출신이다. 김 의원은 토론회 인사말에서 “이번 토론회가 삼성생명에서 나타난 회계기준 해석과 적용 문제를 정확히 이해하고 금융사의 회계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는 방안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금감원장에 참여연대 출신이 오른 것은 참여연대 정책위원장 등을 지닌 김기식 전 원장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김 전 원장은 시민사회에서 활동하다 19대 국회에 입성해 정무위원회에서 일하며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가로 평가하는 이른바 삼성생명법을 밀어붙이는 등 삼성 저격수로 불렸다.
이후 2018년 문재인정부 2대 금융감독원장에 오르면서 삼성생명을 비롯한 국내 금융권의 긴장감이 크게 높아졌는데 의원 시절 ‘외유형 출장’을 다녀왔다는 의혹 등에 휘말려 결국 취임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이찬진 원장의 취임 이후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이 불거지고 있는 만큼 참여연대와 삼성그룹의 악연이 금감원이라는 제도권 안에서 다시 한 번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비공개 간담회가 삼성생명을 봐주기 위한 금감원의 보여주기식 행위에 그칠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18일 국회 삼성생명 토론회를 주관한 경제시민단체 경제민주주의21은 이날 ‘금감원, 삼성생명 회계처리 관련 친삼성 행보 당장 중단하라’는 성명서를 내고 “비공개 간담회 초청자 선정 기준을 밝히고 비공개 회의를 공개회의로 전환하라”고 요구했다.
▲ 1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삼성생명 회계처리 논란 어떻게 풀 것인가' 토론회를 주최한 김남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뒷줄 오른쪽 3번째), 주관한 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뒷줄 오른쪽 2번째) 등이 발제자, 토론자 등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경제민주주의21>
경제민주주의21에 따르면 금감원은 여당 정무위 소속 의원의 요구로 이날 오전 10까지 21일 간담회 참석자 명단을 제출하겠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제출 명단을 거부했다.
경제민주주의21은 “여러 통로로 확인한 결과 금감원과 삼성생명에 직접적 이해관계를 가진 회계법인과 학자, 시민단체 한 곳이 초청을 받았다고 한다”며 “금감원이 의도한 결론이 무엇인지, 금감원의 비밀 간담회의 숨은 뜻이 무엇인지를 짐작케 한다”고 비판했다.
경제민주주의21 역시 참여연대 출신들이 나와 만든 경제분야 시민단체다.
조혜경 경제민주주의21 대표는 비즈니스포스트와 통화에서 “금감원은 삼성생명 회계처리와 관련한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간담회를 소집했다고 하는데 그동안 삼성생명에 비판적 목소리를 냈던 이들은 모두 배제됐다”고 지적했다.
그는 “금감원이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는 18일 토론회에 왔어야 하는데 의원실의 수차례 요청에도 금감원은 토론회 참석을 거절했다”며 “금감원이 내일 간담회를 왜 여는지, 삼성 측의 입장만을 들으려고 간담회를 진행하는 건 아닌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찬진 원장도 취임 이후 과감함보다는 조금은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이 원장은 취임식 이후 기자실을 찾아 “어떤 괴물이 왔나 상상력을 발휘하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는데 저는 의외로 과격한 사람이 아니다”며 “저에게 자본시장이나 금융시장에 불안정을 초래할 만한 어떤 액션이 나올 것을 기대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