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5-07-08 12:4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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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1일부터 한국에 25%의 상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당초 상호관세 적용이 예정됐던 시점을 하루 앞두고 알려온 것이라 한국 정부는 몇 주일의 협상 기간을 벌게 된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품목별 관세, 비관세 장벽, 국방비 증액 등 '3대 변수'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면서 협상을 일괄 타결하는 '패키지딜'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 도널드 트럼트 대통령이 상호관세 유예기간을 오는 8월1일로 연장하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정부가 대응책 마련에 분주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DC 백악관 블루룸에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찬을 함께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은 8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Truth Social)에 공개한 무역 서한에서 "우리(한국과 미국)의 관계는 유감스럽게도 상호주의와 거리가 멀었다"며 "2025년 8월1일부터 우리는 미국으로 보낸 모든 한국산 제품에 겨우 25%의 관세를 부과할 것이며 이 관세는 모든 품목별 관세와 별도"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9일 상호관세 부과를 90일 유예한 뒤 한국에는 지금까지 기본관세 10%만 부과한 상태로 한미 무역협상을 진행해왔다. 앞으로 한미 사이에 새로운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채 8월1일이 되면 원래대로 25%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한 셈이다.
산업부는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을 두고 “사실상 상호관세 부과 유예가 연장된 것”이라며 “관세로 인한 불확실성을 조속히 해소하기 위해 남은 기간 동안 상호호혜적 협상 결과 도출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미국과의 협상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며 장기전 전략을 펼친다는 구상을 내놨다. 우리 정부도 이번에 관세협상 1차 목표인 ‘상호관세 적용 유예기간 연장’을 얻어낸 셈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상호관세 유예 연장 시점을 8월1일로 못박은 점 등을 살펴보면 유예 연장을 다시 한 번 얻어내 협상을 장기전으로 끌고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국제무역법원은 지난 5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한 상호관세는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그 뒤 미국 워싱턴D.C. 연방항소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문제와 관련한 항소심 구두 변론기일을 오는 7월31일로 지정했다.
트럼프 행정부로서는 연방항소법원의 심리가 시작되면 관세 부과의 정당성 논란이 부각돼 다른 나라와의 협상력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에 8월1일로 협상기한을 지정한 것은 상호관세 정책에 관한 미국 내 법적 분쟁이 시작되기 전에 한국과 협상을 마무리짓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와 일본에 가장 먼저 서한을 발송한 점도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싣는다.
이러한 상황을 종합하면 정부는 앞으로 3주 가량 미국과 '끝판 협상'을 벌이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 저부는 대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제조업 르네상스 파트너십'이라 부를 수 있는 제조업 협력 가능성을 강조해 미국의 관세 조치 완화를 이끌어내겠다는 것을 핵심 전략으로 한다.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5일 기자들과 만나 “우리나라 기업들이 대미투자에 관심을 보이고 있고 상호 협력 가능성이 높은 AI(인공지능),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에너지, 바이오 등 분야는 사실 미국이 제조업을 재건하는 데 있어서 큰 협력을 필요로 하는 분야”라며 “한국이 그런 분야에서 독보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미 무역협상에는 상호관세 외에 특정 품목에 붙는 품목별 관세도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상호관세율을 10% 수준으로 낮추는 동시에 자동차(25%), 철강(50%), 알루미늄(50%) 관세를 면제받거나 최소한 경쟁국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구상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미유럽팀장은 8일 MBC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미국에 주력으로 수출하는 품목들이 자동차, 반도체, 철강 등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더 중요한 건 사실 무역확장법 232조 품목별 관세”라고 짚었다.
다음으로 ‘비관세 장벽 철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로 꼽힌다.
▲ 이재명 대통령이 8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은 외국 클라우드 서비스 제공업체 사용 제한 정책,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 해외 콘텐츠 공급자에 대한 망 사용료 부과, 거대 온라인 플랫폼 규제 입법 동향 등을 '디지털 교역 장벽'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는 우리나라의 디지털 주권 보호라는 측면에서 쉽사리 완화를 결정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망 이용료 부과 법안을 발의했으며 온라인 플랫폼에 대한 규제도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이에 더해 미국은 우리나라가 미국산 소고기 수입과 관련해 30개월 미만 소고기만 허용하는 ‘월령 제한’, 가공육 제품(다진 소고기 패티, 육포, 소시지 등) 수입 금지도 문제 삼고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당시 소고기와 관련해 큰 국민적 반감이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우리 정부가 양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세 번째 변수로는 국방비 증액 문제가 꼽힌다.
트럼프 대통령은 NATO 국방비 증액을 유럽연합에 요구하면서 한국에도 비슷한 압력을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아시아 동맹국들을 향해 국방비를 국가 전체 GDP(국내총생산)의 5% 수준으로 늘리라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올해 국방비 예산은 61조2469억 원으로 전체 GDP의 2.32%다.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다면 국방부 예산을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려야한다.
경제성장, 복지 정책 등 정부재정을 투입하는 여러 공약을 실행해야 하는 이 대통령은 관세협상에서 미국의 국방비 예산 증액 요구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상호관세 유예기간 만료를 앞두고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과 별개로 미국을 방문한 것도 국방비 증액과 무관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한편 정부는 조만간 열릴 한미 정상회담이 이번 한미 관세협상에 '지렛대'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위 실장은 7일(현지시각)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 겸 국가안보보좌관과 만나 조속한 시일 안에 한미 정상회담 개최를 통해 모든 현안에서 상호호혜적 결과를 진전시켜나가길 희망한다는 뜻을 전달했다.
대통령실도 이날 한미통상 관계부처 대책회의를 여는 등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다만 실무진이 한미 관세협상과 관련해 다양한 전략과 아이디어를 마련하더라도 대통령 차원에서 결단해야 할 사안들이 많은 만큼 이 대통령의 고민도 더욱 깊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위 실장은 6일(현지시각) 덜레스 국제공항에서 특파원들과 만나 “지금은 미국은 미국대로 어떤 판단을 하려는 국면이고 또 우리도 거기에 적응해서 판단해야 하는 때이기 때문에 중요한 국면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