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6월24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립은행금융대학원(BFA)에서 녹색금융을 주제로 열린 금융 콘퍼런스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한동대학교> |
[타슈켄트(우즈베키스탄)=비즈니스포스트] “우리에게는 성공 사례도, 실패 사례도 있다.”
6월27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호텔 우즈베키스탄’에서 만난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한국 금융시장을 향한 우즈베키스탄의 관심이 ‘상당히’ 크다며 이렇게 말했다.
급속한 경제성장 이후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고, 이를 딛고 선진국 반열에 오른 한국의 경험을 우즈베키스탄이 배우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개발도상국 공적개발원조(ODA) 가운데 주요 사업 중 하나가 지식을 전달해주는 경제발전경험공유사업(KSP, Knowledge Sharing Program)인데 이런 사업이 활발해지면 국내 금융사들이 우즈베키스탄에서 경쟁력을 높이는 데 더욱 수월할 수 있다고도 강조했다.
현 전 부총리는 “우리는 금융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실패한 경험이 있는데, 그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한국 금융사의 이야기는 더 큰 설득력이 있다”며 “실패 경험이 없는 선진국보다 우리가 개도국에 금융을 알려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한국 금융시장을 알고 싶고, 배우고 싶어 하는 수요가 크다”며 “우즈베키스탄의 경제가 발전하면 금융시장도 같이 성장할 텐데, 그 안에서 한국 금융사의 역할이 분명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현 전 부총리는 이 같은 한국의 금융산업 경험을 알려주기 위해 6월23일 4박5일 일정으로 우즈베키스탄을 찾았다.
6월19일부터 6월26일까지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립은행금융대학원(BFA, Banking and Finance Academy)에서 한동대학교 주관으로 열린 ‘유네스코 유니트윈(UNITWIN) 서머 프로그램’ 중 ‘녹색금융(Green Finance)’ 콘퍼런스 기조연설을 맡아서다.
유니트윈(University Twinning and Networking)은 개도국의 대학교육 역량 강화 등을 돕는 유네스코의 국제협력 프로그램이다. 한동대학교는 2007년 국내 최초로 유니트윈 주관 대학으로 지정된 뒤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세계 여러 개도국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현 전 부총리가 한동대 유니트윈 프로그램으로 우즈베키스탄을 찾은 것은 2023년, 2024년에 이어 이번이 3번째다.
현 전 부총리는 우즈베키스탄의 경제발전 가능성을 높게 봤다. 실크로드 중심지로 상업 요충지 역할을 하는 지정학적 이점, 옛 소련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국 가운데 가장 많은 인구, 중위인구가 30세도 채 되지 않은 젊은 역동성 등 3가지를 높은 잠재력의 근거로 들었다.
현 전 부총리는 “이곳 대학 총장과 교수들도 젊은 인구를 바탕으로 한 우즈베키스탄의 잠재력을 굉장히 높게 보고 있다”며 “젊은이를 중심으로 인구가 많다는 것은 금융산업을 포함한 나라 산업 전체의 구매력이 상당히 크다는 얘기로, 이는 수요 확대와 경제성장의 바탕이 될 수 있다”고 바라봤다.
최근 3년 동안 매년 우즈베키스탄을 다니며 직접 변화를 느낀 사례도 알려줬다.
그는 “2년 전 우즈베키스탄에 처음 왔을 때는 호텔에서 와이파이가 종종 끊겼는데 이번에는 전날 서울과 화상회의를 매끄럽게 진행할 정도로 잘 됐다”며 “우즈베키스탄 인프라가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금융 콘퍼런스 주제도 점점 더 고도화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현 전 부총리는 2023년에는 우즈베키스탄 금융시장 전반의 성장방안, 지난해에는 은행과 금융의 주요 트렌드인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올해는 ESG 중에서도 기후금융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진행했다.
▲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앞줄 왼쪽에서 6번째)이 6월24일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국립은행금융대학원(BFA)에서 녹색금융을 주제로 열린 금융 콘퍼런스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한동대학교> |
그는 “키노트 주제는 혼자 정하지 않고 주최 측의 요청도 반영해 함께 정한다”며 “처음에는 어떻게 성장하느냐가 궁금했다면 지금은 ESG와 그보다 더 좁은 주제인 기후금융으로 관심이 옮겨가며, 수익만 아니라 환경을 함께 고려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기조연설에서는 기후 문제해결을 위한 민간금융의 역할을 강조했다. 우즈베키스탄은 화력발전이 주력인 나라로 이곳 역시 공기질 악화 등 기후 문제가 매년 심각해지고 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업의 녹색채권 발행 등 민간금융이 커져야 한다는 것이다.
현 전 부총리는 “기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결국 금융이 역할을 해야 한다”며 “개도국은 특히 정부가 기후 문제해결에 대규모 투자를 하기 어려운 만큼 민간금융이 빈 공간을 채워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한 선제조건으로는 ‘신뢰에 기반한 자본시장 발전’을 꼽았다.
현 전 부총리는 “이번 행사 기간 기조연설 말고 특강도 2개 진행했는데 그 중 하나가 자본시장 개혁에 대한 내용이었다”며 “한국의 밸류업을 예로 들어 한국도 여전히 자본시장 신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민간금융이 크기 위해서는 이처럼 신뢰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고 말했다.
이날 인터뷰는 현 전 부총리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오전, 우연한 만남으로 성사됐다.
현 전 부총리는 1950년생으로 올해 만 75세다. 금융 콘퍼런스와 특강 일정으로 피곤했을 법도 한데 흔쾌히 인터뷰 요청에 응해준 것은 물론, 인터뷰 내내 우즈베키스탄이 한국 금융사에게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했다.
현 전 부총리의 열정 안에는 한국이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발전하고 IMF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했다는 자부심과, 기획재정부(옛 재정경제부) 공무원으로 한국 금융산업 발전에 기여했다는 자긍심이 자연스럽게 녹아났다.
▲ 현오석 전 부총리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맡고 있던 2013년 2월18일, 박근혜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된 뒤 사무실로 출근하고 있다. <연합뉴스> |
현 전 부총리가 행정고시에 합격한 1973년, 한국은 ODA 수원국(원조를 받는 나라)이었다. 이후 1995년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차관을 모두 상환하며 사실상 원조 대상국에서 졸업했고 1999년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의 수원국에서 공식 제외됐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09년 11월, 한국은 IMF 외환위기를 완전히 극복한 뒤 회원국 전원 합의로 24번째 DAC 회원국 가입이 결정됐고, 2010년 1월 정식 회원국에 이름을 올리며 ODA 공여국(원조를 주는 나라)으로 공식 전환됐다.
현 전 부총리는 “우리도 과거 관치가 강했지만 그 부작용으로 외환위기라는 어려움을 겪었고, 이조차도 모두 극복해냈다”며 “우리만큼 성공한 나라 중에 외환위기를 겪어 다 망하고 다시 일어난 곳은 없다”고 말했다.
현 전 부총리는 서울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석사,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14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진출했고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국고국장, 국민경제자문회의 기획조정실장, 재정경제부 세무대학장,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 등을 거쳐 박근혜 정부 초대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일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국립외교원 석좌교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 국제자문단, GS ESG위원장을 지내는 등 학계와 민간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한국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이한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