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초격차’를 꿈꾸는 강소 스타트업이 있다. 바이오, 헬스케어, 모빌리티, 반도체, AI, 로봇까지 시대와 미래를 바꿀 혁신을 재정의하며, 누구도 쉽게 따라오지 못할 ‘딥테크’ 혁신을 만든다. 창간 12년, 기업의 전략과 CEO의 의사결정을 심층 취재해 온 비즈니스포스트가 서울 성수동 시대를 맞아 우리 산업의 미래를 이끌 [초격차 스타트업] 30곳을 발굴했다. 연중 기획으로 초격차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지속 가능한 기술적 혁신의 현재와 미래를 조명한다. |
[비즈니스포스트] 서울 마포구 창업허브에 자리한 EMX 사무실.
이성규 대표는 스타트업 창업자답지 않게 이미 수많은 대작을 거친 베테랑이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로 시작해 ‘안시성’, ‘판도라’, ‘무빙’까지. 150여 편의 시각특수효과(VFX) 프로젝트를 거치며 국내 콘텐츠 산업의 현장을 지켜본 그가, 지금은 단 10명의 팀과 함께 새로운 세계를 만들고 있다.
“기술이 아니라 감동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게 진짜 콘텐츠니까요.”
이 대표의 원래 전공은 경영학이었다. 하지만 컴퓨터 그래픽 기사를 읽고 가슴이 뛰었다. 한국인이 영화 ‘타이타닉’ CG에 참여했다는 소식은, 그의 인생을 궤도 밖으로 밀어냈다. 다시 입시를 준비해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과에 입학했다.
“가상을 현실처럼 재현하는 일이 이렇게 흥미진진할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죠.”
현장 경험은 거칠고 치열했다. 모델링에셋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십 명의 아티스트가 몇 달을 매달려야 했다. 거대한 외주 시스템, 수백 명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는 블록버스터 제작 환경은 그의 머릿속에 한 가지 의문을 남겼다.
“이 방식이 계속 갈 수 있을까?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나?”
그 물음이, 창업의 씨앗이 됐다.
EMX의 시작은 기존 대기업 계열사에서의 ‘답답함’이었다. 현장의 문제를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변화는 더뎠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파이프라인을 직접 짜기로 마음먹었다.
“창업은 리셋의 과정이었어요. 낡은 구조 위에 뭘 덧붙이는 게 아니라, 아예 새로운 판을 짜야 했죠.”
▲ 이성규 EMX 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시각특수효과 결과물을 살펴보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그는 인공지능(AI)과 디지털 트윈 기술을 결합해, 수십, 수백 명이 많은 작업시간이 걸리던 3차원 환경 에셋 공정을 단 몇 시간 안에 끝내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단순한 실험이 아니었다. 창업 직후,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기술 검증을 통과했고, 일본 소프트뱅크 리얼라이즈 이노베이션과도 양해각서를 맺고 협업을 논의 중이다. 대형 글로벌 OTT 콘텐츠용 VFX 계약도 체결하고 제작에 합류했다.
“감독님들이 정말 좋아하세요. 더위나 위험한 장소에서 배우가 고생하지 않아도, 실사와 구분 안 가는 배경을 만들 수 있거든요.”
기술은 완성됐다. 이제는 증명이 필요했다. 콘텐츠 업계라는 보수적인 환경 안에서, EMX의 솔루션은 점차 레퍼런스를 쌓아가고 있다. 경찰청의 사건 현장 재구성 프로젝트도 그 중 하나다.
하지만 스타트업이라는 이름이 주는 낭만은 없었다. 초기에는 투자자들의 의심도 컸다.
“당신들이 진짜 AI 기술이 있다고?”라는 질문에 그는 밤을 새워 기술 자료를 만들고, 실증 프로젝트에 뛰어들었다. 결국, 딥테크 팁스 선정이라는 값진 결과로 이어졌다.
이 대표의 목표는 더 넓다.
EMX는 인공지능(AI) 기반 디지털 트윈 콘텐츠 생성 스타트업이지만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는 콘텐츠를 기술로 만들어내려 한다.
자체 IP를 개발하고, 웹툰·웹소설을 기획하며 콘텐츠 생태계의 중심에 서려 한다. 회사의 기술로 만든 콘텐츠가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에 올라가는 상상을 현실로 만들고 있다.
“최첨단 하이테크 인공지능 기술을 저희가 완성하려고 노력하지만 결구 인간의 눈으로, 인간의 감성을 통해서 감동받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20년을 돌아온 길 위에서, 그는 여전히 배운다. 그리고 감동을 만드는 사람으로,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 조승리 기자
▲ EMX 직원이 시각특수효과 결과물을 시연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