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5-07-04 14:55:16
확대축소
공유하기
[비즈니스포스트] 더불어민주당이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키자마자 더 강한 상법 개정 추진에 나섰다.
민주당은 공청회를 열기로 국민의힘과 합의한 집중투표제에 이어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자사주 원칙적 소각’까지 상법에 반영되도록 입법 논의를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 더불어민주당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담은 더 강한 상법개정안 준비를 시작했다. 오기형 민주당 코스피5천 특별위원장이 3일 국회 소통관에서 상법개정안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오기형 페이스북 갈무리>
민주당 코스피5천 특별위원회는 4일 ‘자사주 원칙적 소각’을 상법에 담기 위한 논의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오기형 코스피5천 특위 위원장은 3일 오후 상법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상법 개정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이재명 대통령의 공약인 ‘자사주 원칙적 소각’ 문제도 관련 법안을 발의하고 이번 정기국회에서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오 위원장은 이어 “대규모 상장사에만 적용 예정인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공청회를 거치기로 했다”며 “주주 충실의무 도입과 관련해 형사처벌 확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보완해 달라는 요구가 있는데 고동진 국민의힘 의원이 발의한 법안을 포함해 재계 의견도 적극 논의하겠다”고 설명했다.
집중투표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 확대는 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에는 포함되지 못했다. 국민의힘과 합의 처리하는 과정에서 민주당이 '향후 논의'로 한발 물러섰기 때문이다.
이들 사안은 민주당이 지난해 상법 개정 카드를 들고 나왔을 때부터 많은 논의가 이뤄져 온 만큼 전문가들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용하는 절차를 밟아 빠르게 추진하면 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제 민주당의 시선은 ‘자사주 원칙적 소각’ 규정을 어떻게 추진할지로 향하고 있다.
자사주 소각은 기업이 발행했던 자기주식을 취득한 뒤 이를 시장에서 완전히 없애버리는 행위를 뜻한다. 시장에 유통되는 주식 수를 줄임으로써 1주의 가치를 상승시키고 주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도 상법 규정에 따라 기업이 이사회 결정을 거쳐 자사주를 소각할 수 있다. 그러나 기업의 재량에 맡겨져 있어 일부 기업들은 자사주를 매입한 뒤 소각하지 않고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하거나 부적절한 시기에 재매각해 주주 가치를 훼손한다는 비판이 제기돼 왔다.
이 때문에 상법에 기업이 자사주를 매입한 뒤 일정 기간 내 소각을 의무화하거나 특정 목적 외 자사주 취득 자체를 제한하는 등 주주 환원을 강화하는 내용을 상법에 담는 방안이 거론된다.
그러나 민주당이 입법화에 나설 경우 재계와 치열한 논쟁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자사주 소각 의무화의 규정 강도에 따라 기업의 교환사채(EB) 발행이 크게 제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환사채(EB)는 일정한 조건 아래 발행 기업이 보유한 다른 회사의 주식 또는 발행 기업의 주식(자사주)으로 교환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채권인데 기업이 신규 자금을 조달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
교환사채는 자사주를 기초자산, 즉 담보로 발행하는 채권이다. 따라서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된다면 기업은 자사주를 바탕으로 교환사채를 발행하기 어려워진다.
게다가 자사주 소각이 의무화된다면 자사주 취득의 목적이 주주 가치 제고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기업은 현재 자금 조달이나 경영권 방어 등 다양한 목적으로 자사주를 취득해 보유해 왔는데, 자사주 소각 의무화로 새로운 경영환경에 처하게 되는 셈이다.
실제 정치권에서 자사주 소각 의무화 정책이 본격화될 조짐이 보이자 상장사들이 교환사채 발행에 자사주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대신증권이 1일 발표한 '돈이되는 ESG 보고서'에 따르면 자사주 교환형 교환사채 발행 기업 수는 2022년 19건에서 2023년 26건, 2024년 31건으로 증가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자사주 교환형 교환사채 발행이 17건에 이르렀다.
기업들이 자사주 소각 의무화 규정이 생기기 전에 교환사채 발행을 통해 자사주를 단순 소각하지 않고 교환사채 발행이나 우호 세력에 넘기는 방식으로 자금 조달과 경영권 방어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 교환사채 발앻으로 논란이 일었던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태광산업의 교환사채 발행 사태가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태광산업은 보유한 자사주 전량(24.41%)을 담보로 3186억 원 규모의 교환사채를 발행한다고 공시했다가 주주 반발을 사자 2일 관련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태광산업은 교환사채 발행 이유로 사업구조 개편을 들었지만 시장에서는 ‘자사주 원칙적 소각’이 입법화되기 전 대주주의 지배력 확대를 꾀한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태광산업의 주가는 교환사채 발행 소식이 알려지자 급락했다가 중단 발표된 뒤 다시 상승하기도 했다.
다만 기업들의 문제적 행태를 바로잡는 것이라 할지라도 자사주 소각 의무화는 경영 자율성 침해 우려가 제기될 수 있다.
기업 관점에서는 자사주가 비상상황 시 유동성 확보나 전략적 투자를 위한 중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 이를 강제로 소각하게 할 경우 기업의 유연한 대응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민주당은 이 대통령 취임 이후 코스피가 상승하고 있는 데다 상법 개정 이슈 자체가 개미투자자들의 지지를 받는 만큼 자사주 소각을 밀어붙일 공산이 크다.
소액주주들은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우리 기업들이 부족하다고 지적돼 온 주주환원 정책 개선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민주당은 ‘기업의 자율성’과 ‘주주 가치 극대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균형점을 찾는 상법 개정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민주당 코스피5천 특별위원회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 나눈 통화에서 “이번 상법 개정도 재계와 투자자 의견을 수렴한 다음에 대안을 반영한 법안을 통과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하지 않았나”며 “주총 승인을 받아 자사주 소각을 유예할 수 있는 예외조항 등 회사의 자율성까지 고려한 폭넓은 의견을 수렴하며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