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란이 자국 핵시설을 대상으로 한 미국의 폭격에 대응해 카타르 미군기지에 미사일 공격을 감행하면서도 사전에 통보해 피해를 최소화하는 신중한 행보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에 화답해 이스라엘과 이란의 24시간 휴전을 제안하며 외교적 협상 분위기가 조성됐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이란에 24시간 휴전을 제안하며 외교적 협상 분위기가 조성됐다.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왼쪽)과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의 모습. <연합뉴스> |
하지만 당장 휴전과 관련해서 이스라엘과 이란이 서로를 믿지 못하는 태도를 보이는 데다 이란의 우라늄 농축 중단을 둔 핵협상을 놓고도 갈 길이 멀다는 분석이 많아 국제 유가가 안정을 찾기는 당분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23일(현지시각) 뉴욕상업거래소에서 8월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7.22%(5.33달러) 하락한 배럴당 68.51달러에 거래를 마감했다.
이란이 카타르 미군기지에 공격을 했음에도 사전 통보를 바탕으로 피해를 최소화해 중동 정세 불안감이 완화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3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한 뒤 국제유가는 ‘널뛰기’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공격이 있을 때 급등했다가 외교협상 움직임 나오면 하락하는 양상을 반복했다.
주말 동안 미국의 군사 개입으로 중동 지역 갈등이 고조되자 브렌트유는 한때 5% 이상 상승해 배럴당 81달러를 넘기도 했다.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도 80달러 대에 육박하며 1월 이후 최고가를 기록했다.
전쟁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지만 이란의 대응이 제한적으로 나타나 세계 경제는 최악의 파국을 맞는 상황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확전을 원하지 않는 것으로 읽힌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과 이스라엘에 12시간씩 24시간 휴전 제안하고 이를 고정화하려는 의지를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지금부터 6시간 뒤에 이스라엘과 이란이 각각 12시간 동안 휴전을 이루기로 합의했다”며 “이란이 먼저 공격을 중단하고 12시간이 지나면 이스라엘이 다시 12시간 동안 공격을 중단한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대선 공약이 이란을 둘러싼 군사적 개입으로 흔들리면서 자국 지지층이 반발한 부분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원유 수급이 자급자족 수준에 이르렀지만 상업원유 및 전략비축 재고 수준은 낮게 유지되고 있어 이란발 원유 공급 충격이 발생할 경우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가 동시에 나타날 우려가 높은 점도 트럼프 대통령에겐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다만 이스라엘과 이란이 휴전과 핵 협정을 놓고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유가 안정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 이스라엘과 이란이 휴전과 핵 협정을 놓고 힘겨루기에 들어간 것으로 파악되는 만큼 유가 안정에는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의 모습. <연합뉴스> |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미국이 타격한 이란의 핵 시설에서 방사능 수치가 증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중동 매체인 알자지라는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 이란 국회의장의 자문위원인 마흐디 모하마디가 이란이 이스라엘의 공격을 예상해 포르도에서 핵 시설을 이전했다고 밝힌 점을 보도했다.
미국의 공습에도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무기 개발을 이어갈 가능성을 현재로선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이란은 60% 농축우라늄 408kg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핵탄두 9~10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이란의 반관영 매체인 타스님통신을 비롯한 현지 매체에 따르면 이란 의회는 23일(현지시각)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협력을 중단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미국이 확실한 안전 보장을 하지 않는 이상 자위권 확보 차원에서 핵 개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트럼프 대통령이 1기 집권 시절 기존 핵문제 합의를 파기했다는 점도 이란이 휴전과 핵 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이란은 오바마 대통령 시절인 2015년 7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등 6개국과 핵 합의를 체결했다. 이란은 핵 개발을 포기하고 6개국은 이란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해제하는 내용을 포함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첫 번째 당선 이후 이를 파기했다.
핵 합의 이전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휴전이 이뤄지기까지도 넘어야 할 산이 많은 것으로 분석된다.
CNN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휴전 선언 뒤에도 여전히 이란의 방공망이 활성화 돼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스라엘도 여전히 이란을 불신하는 것으로 읽힌다.
이스라엘 매체 타임즈오브이스라엘에 따르면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이스라엘과 이란이 휴전에 동의했다고 발표한 직후까지도 이스라엘군(IDF)은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 일부 지역에 대해 자국 거주민을 대상으로 대피 경보를 발령한 것으로 전해졌다.
중동 불안이 일시적으로 봉합됐지만 지정학적 리스크가 온전히 사라졌다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는 것으로 볼 수 있어 국제 유가를 둘러싼 불안감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권형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날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이스라엘은 이란의 핵무기 능력을 파괴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공습을 재개하면 다시 보복에 나설 것"이라고 바라봤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불확실성은 여전히 크다"며 “유가 같은 경우에도 60달러로 갈지 100달러로 갈지 모르게 되면 과연 기업의 결정을 어떻게 해야 될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중동의 군사적 긴장이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경우 유가 강세는 지속될 수 있다"며 "지역 상황 변동에 따른 유가 변동성 확대가 당분간 불가피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경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