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2025-06-13 14: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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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석훈 에이블리 대표이사의 초기 인플루언스 위주 셀러 모집 전략이 높은 성장률의 핵심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에이블리>
[비즈니스포스트] 수많은 스타트업이 호기롭게 진입했다가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시장. 여성 패션 플랫폼은 ‘어렵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전장(戰場)이다. 플랫폼 비교는 기본, 하루가 멀다 하고 바뀌는 트렌드, 여기에 끝없는 가격 경쟁까지. 구조 자체가 사업자에게 불리하게 짜여 있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그럼에도 에이블리는 이 판을 정면으로 돌파했다. 종합몰도 아닌 단일 패션몰임에도 월간활성이용자수(MAU) 900만 명, 연간 거래액 2조 원을 돌파하며 업계 최상위권에 올라섰다. 그 배경에는 강석훈 에이블리 대표이사가 직접 설계한 ‘셀러를 데려온’ 게 아니라 ‘셀러를 만들어낸’ 독특한 플랫폼 생태계 전략이 자리하고 있다.
1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강석훈 대표가 창업 초기 직접 설계한 셀러 모집 전략이 오늘날 에이블리를 패션 플랫폼 최상위권으로 끌어올린 핵심 동력으로 평가받고 있다.
강석훈 대표는 에이블리 창업 초기 전통적 유통업체나 브랜드가 아닌 수만~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에게 먼저 손을 내밀었다. 인플루언서는 상품을 고르고 착용 사진만 올리면 됐고, 상품 등록부터 고객응대, 출고까지의 전 과정을 에이블리가 도맡았다. 콘텐츠에 대한 정산은 매출의 10% 수준으로 책정됐다.
당시만 해도 결제 과정이 지금보다 훨씬 번거로웠지만, 인플루언서의 팬덤은 그 불편함을 감수했다. 단순히 착용샷 하나만 올려도 팬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고 에이블리는 이 흐름을 정교하게 수익 구조로 엮어냈다.
실제 에이블리는 단순한 쇼핑몰이라기보다 ‘코디 구경’이 먼저인 콘텐츠 지향적 플랫폼이다. 인플루언서 기반 셀러 시스템 덕분에 제품을 바로 사기보단 스타일링을 먼저 살펴보는 경향이 짙다.
이로 인해 체류 시간이 길어지고 시간이 흐른 뒤 같은 착장을 따라 사는 ‘지연 소비’도 적지 않다. 강석훈 대표는 셀럽 마켓이 개인 사업에 머물던 시기에 이를 시스템으로 끌어올렸다. 인플루언서에게는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수익 모델을, 에이블리에게는 빠른 성장의 발판을 제공한 전략이다.
실제 에이블리에 따르면 강석훈 대표는 이커머스 시장의 핵심 경쟁력을 ‘가격’과 ‘콘텐츠’ 두 축으로 판단했다. 특히 패션 분야는 가격보다 콘텐츠 경쟁의 중요성이 두드러진다고 강조했다. 생필품처럼 100원, 200원 차이를 따지는 시장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똑같은 옷이라도 누가, 어떻게 스타일링하느냐에 따라 매출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설명이다.
강 대표가 콘텐츠에 주목하는 이유는 창업 이력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2010년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왓차’를 공동창업한 인물로 이커머스 업계에서 흔치 않은 ‘콘텐츠 출신 창업자’로 불린다. 패션 플랫폼에서도 콘텐츠의 역할과 파급력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 있다는 평가다.
▲ 에이블리가 매년 매출, 거래액, 월간활성이용자수(MAU) 모두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에이블리>
에이블리는 2019년부터 일반 셀러 입점을 본격화했다. 당시에는 월 4만9천 원만 내면 매출에 따른 수수료를 받지 않는 파격 정책을 내세워 셀러를 대거 끌어들였다. 수익보다 규모 확대에 초점을 맞춘 전략이었지만, 플랫폼은 오랜 기간 적자를 감수해야 했다.
전환점은 2022년 12월이었다. 에이블리는 판매 수수료 3%를 도입하며 수익 구조 개편에 나섰다. 곧이어 플랫폼 내 광고 노출 경쟁도 본격화됐다. 입점 셀러는 물론 외부 기업 및 브랜드까지 참여한 광고 집행은 실적 반등의 주요 동력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최근 들어 수수료와 광고비 부담이 커지면서 셀러들의 체감 비용이 크게 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에이블리 셀러들은 판매 수수료 3%에 결제 수수료 약 4%까지 더해 실질적으로 매출의 7% 안팎을 부담하고 있다. 여기에 광고 노출 경쟁까지 심화되면서 광고비 지출 압박도 커지고 있다. 입점 셀러가 늘어날수록 자연 노출 기회는 줄어들고, 광고 없이 의미 있는 매출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불만도 적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에이블리는 ‘셀러를 데려온’ 게 아니라 ‘셀러를 만들어낸’ 플랫폼”이라며 “이러한 구조가 원활하게 이어지려면 셀러에 대한 지속적인 동기 부여와 수익 분배 구조 개선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강석훈 대표의 셀러 기반 전략은 업계에서 ‘유저와 셀러가 함께 성장하는 생태계 모델’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셀러를 무(無)에서 유(有)로 만들어내고, 콘텐츠를 자연스럽게 판매로 이어지게 한 구조 설계는 기존 패션 플랫폼의 공식을 뒤흔든 시도로 평가된다. 현재 에이블리는 인플루언서와 일반 셀러가 공존하는 혼합형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에이블리의 매출은 2021년 935억 원, 2022년 1785억 원, 2023년 2594억 원, 2024년 3343억 원으로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거래액 역시 2021년 7천억 원, 2022년 1조2천억 원, 2023년 1조5천억 원, 2024년 2조5천억 원으로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영업이익 흐름도 개선세를 보이고 있다. 에이블리는 2021년 695억 원, 2022년 744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를 이어갔으나, 2023년 33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며 첫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다만 2024년 다시 154억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남성 패션 플랫폼 ‘4910’, 핀테크 등 신사업, 일본 패션 플랫폼 ‘아무드’에 대한 투자 확대가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에이블리 관계자는 “플랫폼 사업은 초기에 수익을 내기 어려운 구조라 에이블리 역시 수년간 적자를 감수해왔다”며 “다만 그 기간 셀러 생태계와 기술 인프라 등 전반적인 기반을 탄탄히 다진 만큼 이제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며 안정적 흑자 구조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예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