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연소’ ‘첫 검찰 출신’ ‘윤석열 사단 막내’ 등 많은 수식어로 주목받았던 이 원장은 마지막까지 금감원의 역할을 키워야 한다는 목소리를 주저하지 않았다.
이 원장은 5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 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여러모로 부족한 제가 금융감독원장이라는 막중한 자리를 맡아 임기를 마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여러분들 덕분”이라고 소회를 밝히면서 동시에 금융개혁 과제와 금감원 업무범위 확장을 이야기했다.
이 원장은 “금융개혁은 생산성 확보를 위한 경제구조 개선의 시발점”이라며 “당국과 금융사, 기업, 투자자 등 모든 참여자들이 지속적 금융개혁을 위해 합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금융시장 현안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금감원의 업무방식 혁신과 범위 확장을 강조했다.
이 원장은 “경제금융 사안 초기 대응이 부적절하면 결국 시장안정과 검사·제재 등을 담당하는 금감원에 큰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라며 “기관 사이 업무범위가 불명확하더라도 금감원이 금융 전문가 조직으로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임기 3년 동안 조직 내부 혁신과 금융시장 대응 모두에서 주도적 역할을 강조해온 이 원장의 철학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 원장은 현대차그룹과 한화그룹 비자금 사건, 삼성그룹 승계 문제를 수사하며 ‘재계 저승사자’로 불렸던 특수부 검사 출신이다. 1972년생으로 역대 금감원장 가운데 최연소이기도 했다.
이에 윤석열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2022년 6월 15대 금감원장에 오를 때부터 ‘실세’ 원장으로 강한 추진력을 보일 것이란 예상이 나왔다.
이 원장은 실제로도 2022년 레고랜드 사태와 흥국생명 해외 신종자본증권 조기상환권(콜옵션) 미행사 사태, 태영건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충격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면서 금감원의 존재감을 키웠다.
이어진 홍콩 H지수 주가연계증권(ELS) 대규모 손실사태, 손태승 전 우리금융 회장 친인척 부당대출 등 금융사고, 계엄사태와 탄핵정국, 홈플러스 회생신청과 MBK파트너스 논란 속에서 금융권 내부통제 등 지배구조 개편, 밸류업 등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이 원장은 이날 퇴임식에서 “재임 기간 부딪힌 복합적 난관이 금감원 본연의 역할에 더욱 집중하며 실력을 발휘할 기회가 된 측면도 있었다”고 자평하기도 했다.
하지만 거침없는 리더십으로 금감원의 존재감을 키운 이면에는 과도한 개입에 따른 월권, 관치금융 ‘꼬리표’도 따라붙었다. 상급기관인 금융위원회와 공공연한 의견 충돌은 조직 사이 알력 다툼으로 비춰지기도 했다.
▲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금감원에서 퇴임식을 마치고 직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원장은 우리금융지주, 신한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등 주요 금융지주 회장 연임 등 인사를 두고 공식석상에서 ‘쓴소리’를 내놓으면서 관치금융 논란을 일으켰다.
가계부채, 공매도 재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등 금융정책 엇박자로 소비자 피해 등 시장 혼란을 초래한다는 비판도 계속됐다.
이 원장은 상법개정안 추진 등을 두고도 금융위원장부터 정책당국들과 반대 견해를 표명하면서 불협화음을 내기도 했다. 정부와 당국이 상법개정안 재의와 자본시장법 개정안 등 대안에 공식적으로 힘을 실을 때 ‘직을 걸고’ 상법개정안 거부권 행사를 반대한다며 맞섰다.
취임 초부터 간담회와 백브리핑, 방송출연 등을 포함 언론과 시장을 대상으로 한 적극적 소통 행보가 때때로 불필요한 마찰과 잡음으로 이어졌던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금감원 내부 조직쇄신과 운영을 두고도 평가가 엇갈린다.
이 원장은 2022년 6월 금감원장에 취임한 뒤 해마다 연말 정기인사에서 부서장급의 70~80%변경·교체하는 대대적 세대교체를 단행했다. 지난해 마지막 인사에서도 부서장 1명을 제외하고 모두를 교체했다.
성과주의, 능력주의를 앞세운 과감한 물갈이 인사로 조직쇄신에 힘을 실었지만 업무강도와 처우 등 문제로 인력 이탈이 늘어나기도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원장은 이날 퇴임식에서 “금감원을 재편하는 과정에서 너무 이른 시기에 양보를 강요 받게 된 선배들, 더 빨리 더 높이를 요구하는 원장의 욕심을 묵묵히 감당해준 임직원에게 감사와 사과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 원장은 향후 거취를 놓고 기회가 된다면 해외 대학이나 연구기관 등에서 연구활동을 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1972년생으로 서울 경문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다.
공인회계사 시험에 합격하고 42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32기로 수료한 뒤 군산지청 검사, 법무부 검사과 검사, 춘천지검 검사,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4부장,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장을 지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검사시절 함께 현대자동차 비자금 사건과 론스타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등을 수사해 ‘윤석열 사단 막내’로 불렸다.
2022년 6월7일 역대 최연소이자 첫 검찰 출신 금융감독원장으로 취임했다.
역대 15명의 금감원장 가운데 윤증현 전 원장, 김종찬 전 원장, 윤석헌 전 원장에 이어 4번째로 임기를 완주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