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욕 제이콥 재비츠 컨벤션센터에서 4월16일 열린 국제 오토쇼에서 관람객들이 현대차의 2026년형 팰리세이드 하이브리드 차량을 촬영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
[비즈니스포스트] 포드에 이어 GM까지 미국 시장에서 전기차 전환 속도를 늦추면서 현지 생산 거점을 구축한 현대자동차가 기회를 잡을 상황을 맞이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미국 시장 중심이 내연기관으로 옮겨가면 현대차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시선도 나온다. 현대차는 미국에서 하이브리드차(PHEV) 생산으로 전기차 수요 위축에도 대응하고 있다.
28일(현지시각) 로이터에 따르면 GM은 뉴욕주 토너완다 지역 공장에 8억8800만 달러(약 1조2145억 원)를 투자해 SUV와 트럭용 8기통 엔진 개발에 나선다.
GM은 당초 토너완다 공장에 3억 달러(약 4140억 원)를 들여 전기차 구동장치 생산 라인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 계획을 철회하고 엔진 개발에 자금을 투입하도록 방향을 틀었다.
로이터는 “GM의 이번 조치는 예상보다 부진한 전기차 수요에 대응하는 또 다른 사례”라고 바라봤다.
GM이 전동화 전환에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GM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포드 또한 올해 4월 차세대 전기차 아키텍처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했다. 신규 3열 전기 SUV 차량을 개발하겠다고 하던 계획도 지난해 8월 철회했다.
론 라울로 포드 부회장은 28일 증권사 번스타인 콘퍼런스에서 “수요 둔화로 전기차 전략을 수정해 나가고 있다”라고 말했다고 인베스팅닷컴이 보도했다.
이는 최근 미국 전기차 생산 증대를 노리는 현대차를 돋보이게 만들 수 있는 기회로 여겨진다.
현대차는 올해 3월24일 2028년까지 4년 동안 미국에 210억 달러(약 29조 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조지아주 전기차 전용공장(HMGMA)에 투입해 생산 능력을 연간 30만 대에서 50만 대로 확대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GM과 포드가 전기차 생산을 줄여 생기는 빈자리를 현대차가 채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현대차는 3월26일 HMGMA 준공식을 마치고 본격 가동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내년부터 하이브리드차까지 함께 제조한다. 생산 모델도 7종에서 14종으로 늘린다.
미국 고객이 전기차 말고 하이브리드차와 같은 대체 상품을 찾을 때 대응할 여력이 있는 셈이다.
조사업체 워즈인텔리전스(Wards Intelligence)는 “지난해 미국 하이브리드차 판매는 재작년 대비 37% 급증한 161만 대”라며 전기차 판매량(156만 대)를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포드와 GM을 비롯한 미국 완성차 기업은 전임 바이든 정부의 친환경 제조업 지원책에 힘입어 2030년대까지 전기차로 완전 전환한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그러나 예상치를 밑도는 수요로 다른 지역에 견줘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둔화함에 따라 투자에 고심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 미국 뉴욕주 토너완다 지역에 위치한 GM의 엔진 공장. < GM > |
조사업체 로모션에 따르면 올해 4월 북미 지역에서 판매된 전기차는 100만 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5.6% 감소했다. 반면 유럽과 중국은 각각 35%와 32% 증가했다.
트럼프 정부 들어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폐지와 관세 인상으로 미국 전기차 시장이 위축된 결과로 풀이된다.
차량당 최대 7500달러에 이르던 세액공제가 사라지고 배터리 주요 소재 비용이 오르면 전기차 수요 뒷걸음질은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포드와 GM이 내연기관에 당분간 집중하고 있는 현대차와 엇갈린 선택을 내린 셈이다.
다만 현대차가 전기차 흥행으로 미국에서 브랜드 이미지 개선 효과를 누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 축소와 경쟁사의 움직임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공산도 없지 않다는 관측이 일각에서 나온다.
현대차는 전기차 도입 전 미국에서 이른바 ‘가성비’ 브랜드로 통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에서 품질을 새로 인정 받으며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전 세계 1위 전기차 업체 테슬라에 비견될 정도다.
ABC뉴스는 25일자 보도를 통해 아이오닉5를 비롯한 현대차 전기차가 ‘미국 점유율 1위’인 테슬라의 일부 차량을 대체할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이런 상황에서 현지 완성차 업체의 투자로 내연기관 시장이 다시 활성화하고 전기차 시장이 계속 위축된다면 그동안 공들여 쌓아온 강점이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더구나 미국 완성차 기업이 트럼프 정부를 설득해 자신에게 유리한 정책 환경을 조성할 가능성도 고개를 든다.
메리 바라 GM CEO는 28일 “미국 자동차 기업은 해외 정부로부터 혜택을 받는 외국 기업과 경쟁에 불리하다”며 “트럼프 관세는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했다”라고 말했다고 월스트리트저널이 보도했다.
현대차와 경쟁하는 GM이 트럼프 정부를 설득해 내연기관차 시장 촉진을 위한 정책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뜻이다.
종합하면 GM과 포드가 전기차 전환을 늦추는 가운데 현대차가 이를 기회로 포착해 시장 점유율을 늘릴 가능성이 엿보인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의 위축도 예상되고 있어 하이브리드 차량 라인업 강화 등 유연한 대응 전략이 필요해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내 4월 전기차 판매는 지난해보다 5% 감소한 반면 전체 자동차 시장은 10% 성장했다”며 “현대차와 기아를 비롯한 대부분 브랜드가 전기차 판매 감소세를 나타냈다”라고 짚었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