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뒤 조기대선 국면에서 경제정책 수장인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이 사퇴하면서 금융시장에 새로운 불확실성을 더하게 됐다.
행정과 경제 양축의 정부 리더십이 동시에 흔들리면서 미국과 관세협상 등 통상부분 대응은 물론 추가경정예산 집행, 기업 지원과 자본시장 제도 개편 등 시급한 경제 현안 추진에 차질을 빚을 가능성이 커졌다.
▲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가 1일 국회에 탄핵소추안이 상정되자 사퇴하면서 한국 경제정책 리더십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합뉴스>
2일 금융권에서는 전날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에 이어 최상목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의 사퇴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6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적 갈등이 심화되는 가운데 경제정책 리더십 부재가 금융시장 전반의 불안과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즉시 김범석 1차관의 직무대행 체제에 돌입해 공백 메우기에 나섰지만 최상목 전 총리를 중심으로 했던 ‘F4’의 컨트롤타워 역할도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국은 지난해 12월 계엄 사태 이후 환율이 급등하고 증시가 급락하는 등 금융·외환시장 불안이 높아져 있는 상태다.
기재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경제금융 4대 기관장으로 구성된 F4의 대외 메시지와 정책 대응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특히 대선을 한 달여 앞두고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체제가 반복되는 초유의 사태로 혼란이 가중된 상황인 만큼 경제정책을 힘 있게 이끌고 갈 안정적 리더십은 더욱 필수적이다.
당장 최 전 부총리가 핵심 축으로 이끌어온 미국과 관세협상이 있다.
최 전 총리는 4월24일 안덕근 산업부 장관과 함께 미국 워싱턴DC에서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 대표와 만나 ‘한미 재무·통상 2+2 협의’를 진행했다.
이에 따라 이번 주부터 미국과 본격적 상호관세 협상을 위한 실무협의에 들어갔다. 최 전 부총리도 1일 “미국 정부와 2+2 통상협의를 바탕으로 7월 상호관세 유예기간 안에 합의안을 마련하는 데 만전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경제정책 수장이 야당 주도의 탄핵안 추진으로 사퇴한 것이다. 협상의 연속성은 물론 한국 정치, 경제 상황에 관한 신뢰 훼손 등 여파를 배제하기 어렵다.
경기침체 대응을 위한 핵심 정책인 추경 집행에 관한 불확실성도 커졌다.
여야는 1일 산불 등 재해·재난 대응, 내수부진 극복, 첨단전략산업 지원 등을 위한 13조8천억 원 규모 추경안에 합의했다.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12조2천억 원보다 예산을 더 늘렸다.
하지만 재정정책 편성과 집행을 주도하는 기재부가 직무대행 체제를 맞게 되면서 추경 조율과 자금 집행 등이 지연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상공인, 자영업자를 비롯한 실물경제 시장 위축을 불러올 수 있는 부분이다.
▲ 왼쪽부터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범석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직무대행,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에 앞서 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이밖에도 정치적 갈등으로 환율 변동성이 다시 확대되고 대외 신인도에 타격을 입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기업의 경제활동, 자본시장 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업들은 안 그래도 정권 교체기 정책 불확실성에 대응해 투자를 비롯한 주요한 의사결정들을 미루는 경향이 있다. 지금도 주요 금융지주를 비롯해 각 산업군 기업들은 환율과 관세 상황 등을 예의주시하면서 비상대응체제를 가동하고 있는데 ‘경계모드’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한국 경제는 내수 부진 장기화와 관세 타격에 따른 수출 침체 등으로 저성장이 예상되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일 2025년 한국 경제전망 수정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2025년 국내총생산(GDP) 성장률 전망치를 0.7%로 하향조정했다. 2024년 12월 전망치(1.7%)와 비교해 1%포인트 낮춘 수치다.
JP모건(0.5%) 씨티그룹(0.6%) 등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올해 한국 경제가 0%대 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 1분기 한국 경제는 내수와 건설·설비 투자 부진 등 영향으로 –0.2% 성장률을 보이며 역성장했다. 재정·금융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이 시급한 상황이다.
김범석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직무대행은 이날 오전 기재부 확대간부회의에서 미국과 통상협상 관련 사항, 추경 집행 등을 주요 현안으로 꼽고 신속한 대응을 강조했다.
김 직무대행은 이날 확대간부회의에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김병환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함께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회의)’도 주재했다.
F4회의에 참석한 경제금융 기관 수장들은 “관세 충격으로 경제·금융시장 불확실성이 크고 새 정부 출범이 한 달여 남은 상황에서 최상목 부총리가 탄핵 소추 추진으로 불가피하게 사임하게 된 것을 안타깝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전 부총리는 전날 밤 10시30분경 더불어민주당 주도의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자 사의를 표명했다. 한덕수 전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이를 수리하면서 김범석 기획재정부 1차관이 기획재정부 장관 겸 경제부총리 직무대행에 올랐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