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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문명을 가르친다는 것

반유화 yoowha.bhan@gmail.com 2025-04-02 08: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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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나의 마음] 문명을 가르친다는 것
▲ 부모는 문명을 처음 가르치는 존재이지만 아이는 결국 자기만의 문명을 만들어갈 것이다. <게티 이미지뱅크>
[비즈니스포스트] 두 돌이 아직 한참 안 된 아기를 키우다 보면, 지금의 내가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하는 행동과 말, 알고 있는 지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지를 관찰할 수 있게 된다.

무엇 하나도 그냥 되는 것이 없다. 아이가 이유식을 시작할 무렵, 아이용 숟가락을 사려고 검색하다가 문득 가슴이 서늘해졌다. 아이에게 숟가락질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하는 최전선의 사람이 바로 나와 배우자구나. 우리가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는 결코 이것을 익히지 못하겠구나. 

숟가락질은 너무나도 분명한 문명의 영역이었다. 사실 애써서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는 사회적 미소를 지을 줄 알게 되고, 네 발로 기고, 일어서고, 걷게 된다. (나의 아이는 배밀이를 생략했다.) 이것은 자연의 영역이다.

그러나 문명은 인위적이다. 숟가락을 어떻게 쥐고 음식을 어떻게 뜨는지는 ‘알려주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 

아이는 처음엔 너무나 많은 양의 음식을 떠서 입 안에 넣은 뒤 어쩔 줄 몰라하다가 뱉기도 하고 어떻게든 삼키려 하기도 했다.

그 사실 역시 놀라웠다. 음식을 ‘적당히’ 뜬다는 것조차 알려주어야 하는 것이었구나! 아이는 아이대로 신비롭고, 나라는 사람은 나대로 새삼스레 대단했다. 능숙하게 숟가락을 쥐고 적당한 양의 음식을 뜨는 나는 정말 대단한 존재였다. (젓가락질이 서툰 것은 비밀이다.) 

컵으로 물을 마시기까지도 숱한 시행착오가 있었다. 여전히 턱받이를 하지 않으면 옷은 어김없이 젖지만 그래도 이제는 제법 그럴 듯하게 마신다.

이렇게 하나하나, 옷을 입고 벗는 것에서부터 글씨를 쓰는 일까지, 앞으로도 무엇 하나 저절로 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나는 문명을 가르쳐야 한다. 가르치지 않으면 아이는 영영 모를 것이다. 

이 새삼스럽고도 생생한 사실은, 아이를 낳고 처음 바라볼 때 느꼈던 웅장한 책임감과는 또 다른 종류의 책임감이자 긴장이었다. 

그래도 숟가락질 같은, 문명의 기술적인 부분은 그나마 낫다. 나머지는? 아이는 나를 바라본다. 내가 하는 말을 따라 하려 하고, 내 표정을 흉내 내고, 내가 하는 행동을 유심히 살핀다. 아이는 내가 보여주는 세계를 세상이라고 믿으며 살아간다. 나와 배우자는 아이에게 프로토타입(prototype)이다.

심리학에는 ‘프로토타입 이론’이 있다. 사람들이 어떤 범주(category)를 이해할 때, 그 범주의 가장 전형적인 예(프로토타입)를 중심으로 개념을 형성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새’라고 하면 참새를 떠올리는 식이다. 그래서 “참새”는 “짹짹”이다. 실제로 아이에게 각종 사물을 알려주는 영유아용 책속의 사물들은 무척 전형적인 모습을 띠고 있다. 사과는 흠없이 깨끗하고 빨갛고 동그랗다. 그런 전형적인 사과를 보며 아이는 ‘아, 이게 사과구나’ 하고 인식한다. 

그렇다면 내가 무심코 하는 말, 미간을 찌푸리는 표정, 서두르는 걸음걸이마저 아이에게는 하나의 전형, 곧 ‘그런 것이 세상이다’라는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프로토타입이라는 사실은 아이에게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다는 의미인 동시에 내가 가진 수많은 결함과 편견 역시 아이에게 전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왕관의 무게는 무거웠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는 초록빛이 돌고, 한쪽은 약간 찌그러져 있었으며, 거뭇한 점들이 찍혀 있는 식탁 위 사과를 보더니 책 속의 전형적인 사과를 가리켰다. 그리고 또 어느 날엔가는 나무 위에 앉아있는 창밖의 까치를 보며 책 속의 참새를 가리켰다. 그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아이는 프로토타입으로 시작하지만 거기에 갇히지만은 않고 있었다. 

나 역시 아이에게 대단한 존재지만 또 그렇게까지 대단한 존재는 아니리라. 나는 아이에게 절대로 모든 것일 수는 없다. 왕관은 무겁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만큼 무거운 건 아닐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아이의 프로토타입이 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되, 내가 아이 세상의 모든 것이라 여기는 오만함 역시 내려놓을 필요가 있었다. 

문명을 처음 가르치는 존재는 나지만, 아이는 결국 나라는 프로토타입을 딛고 점차 자기만의 문명을 만들어갈 것이며, 세상은 하나의 사과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날을 위해 오늘도 나는 아이가 바닥에 던진 숟가락을 주워 다시 손에 살포시 쥐어준다. 천천히 하나씩, 문명을 배워나가자!  반유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화여자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고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여성학협동과정 석사를 수료했다. 광화문에서 진료하면서, 개인이 스스로를 잘 이해하고 자기 자신과 친해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책 '여자들을 위한 심리학', '언니의 상담실', '출근길 심리학'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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