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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틀째 텅 빈 발란 본사, 정산지연에 기업회생신청 의혹 '제2의 티메프 사태' 되나

김예원 기자 ywkim@businesspost.co.kr 2025-03-28 14:1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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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이틀째 텅 빈 발란 본사, 정산지연에 기업회생신청 의혹 '제2의 티메프 사태' 되나
▲ 텅 비어있는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발란 본사 건물 로비.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서울 강남구 발란 본사. ‘전 직원 재택근무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적막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몇몇 기자들만이 발길을 떼지 못한 채 로비 주변을 서성이며 눈치를 살폈다.

안내데스크에 문의하자 돌아온 답변은 더욱 막막했다.

“방문자 명단에 이름은 적어주세요. 관계자들이 출근하면 연락을 드린다고는 하는데 언제 출근할지는 저희도 몰라요. 회신이 올지 안 올지도 알 수 없습니다.”

돌려 말했지만 핵심은 하나였다. “기약 없습니다.”

28일 유통업계에서는 명품 플랫폼 발란의 정산 미지급 사태가 ‘제2의 티메프 사태’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발란이 판매자 정산 지연에 이어 기업회생절차 정황까지 불거지면서 업계 전반에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발란은 24일 입점 판매자들에게 “재무 검증 과정에서 과거 거래 및 정산 내역에 확인할 사항이 발생했다”며 정산 지연을 통보했다. 이날부터 실제로 대금을 받지 못했다는 피해 사례가 줄줄이 올라오자 발란 측은 “정산 시스템 오류일 뿐 유동성 문제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발란은 28일까지 정산 금액과 지급 일정을 안내하겠다고 밝혔지만 당일 발표된 공지에는 사과문만 담겼을 뿐 정산이 언제 이뤄질지에 대한 구체적인 일정은 빠졌다. 

최형록 발란 대표는 공지문을 통해 “정산 지연으로 심려를 끼친 점 진심으로 사죄드린다”며 “창업자이자 대표로서 현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으며 책임지고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산 지연 공지가 발송된 다음 날인 25일, 화가 난 판매자 수십 명이 발란 사무실을 찾아 항의했고 결국 경찰이 출동하는 소동까지 벌어졌다. 발란은 직원들의 신변 안전을 이유로 전 직원을 재택근무로 전환한 상태다.

발란 입점 판매자 커뮤니티의 한 판매자는 “최근 정산 지연 사태 이후 발란 본사를 직접 찾아가 면담을 진행했다”며 “최수연 발란 최고전략책임자(CSO)와 대화를 나눴지만 대표와 연락이 닿지 않아 정확한 상황을 알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할 뿐 정산 일정이나 확실한 답변은 전혀 듣지 못했다”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수연 CSO는 최형록 발란 대표의 부인이다. 이에 판매자들 사이에선 대표가 책임을 회피하고 부인을 ‘방패막이’로 내세운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현장] 이틀째 텅 빈 발란 본사, 정산지연에 기업회생신청 의혹 '제2의 티메프 사태' 되나
▲ 최형록 발란 대표는 이날 사과문을 공지하고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발란>

설상가상으로 발란이 이미 기업회생절차에 돌입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25일 발란과 면담을 진행한 한 판매자는 회사 컴퓨터 화면에서 ‘회생 관련 제출 자료’, ‘정산 내역 재검토 공지’ 등의 파일을 목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당 화면을 찍은 사진을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리며 “이미 회생절차에 들어간 것으로 보이고 변론 기일도 4월로 명시돼 있다”고 전했다.

아직까지 발란이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를 공식 신청한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드러난 정황들을 고려할 때 회생 신청을 준비하고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일부 판매자들은 발란이 이미 기업회생을 내부적으로 결정해 놓고 그에 앞서 자금 확보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명품 온라인 커뮤니티의 한 발란 입점 판매자는 “과거 발란은 입점 조건이 매우 엄격했는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발란 쪽에서 먼저 입점 제안을 해오며 판매자 수를 빠르게 늘리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며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혹시 이런 상황을 미리 염두에 두고 최대한 자금을 끌어모으려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정황은 투자자에게도 공유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최근 발란에 150억 원 규모 투자를 결정한 실리콘투 역시 해당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채 투자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투는 우선 75억 원을 선투자하고 나머지는 일정 조건 충족 시 추가로 투자하는 조건부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열린 실리콘투 주주총회에서 회사 측은 “K-뷰티와 이탈리아 명품의 유통 구조가 상당히 닮아 있어 시너지를 기대하고 발란에 투자했다”며 “이번 사태는 최근에서야 파악하기 시작한 만큼 내부적으로도 상황 정리가 끝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발란이 아직 에스크로 제도를 도입하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입점 판매자들의 불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에스크로는 제3자가 결제대금을 예치·관리해 거래 안전성을 확보하는 방식이다.
 
[현장] 이틀째 텅 빈 발란 본사, 정산지연에 기업회생신청 의혹 '제2의 티메프 사태' 되나
▲ 서울시 강남구에 위치한 발란 본사 로비에는 직원들이 모두 재택 근무에 들어갔다는 공지판이 세워져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발란은 지난해부터 외부 결제대행사(PG) ‘하이픈코퍼레이션’을 통해 판매자들에게 정산을 대행해왔다. 하지만 하이픈코퍼레이션은 “우리는 정산 인프라만 제공할 뿐 정산 자금 자체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 

결국 정산대금은 발란이 직접 관리하고, 결제대행사는 단순히 ‘송금 창구’ 역할만 한 셈이다. 전자금융거래법의 핵심 취지는 정산대금의 안전한 보호에 있는데 발란이 이를 직접 관리했다면 명백한 법 위반 소지가 있다.

발란 판매자 커뮤니티에서 한 판매자는 발란이 지난해 티메프 사태가 터졌을 당시 보내온 메시지를 공개하기도 했다. 메시지에는 “발란은 충분한 자금을 보유하고 있으며 파트너 정산 자금은 사내 별도 계좌를 통해 안전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해당 판매자는 “티메프(티몬 위메프) 사태가 터졌을 때 발란에서도 판매를 중단했어야 했다”며 “이제는 쿠팡이나 네이버처럼 재무구조가 탄탄한 플랫폼만 믿고 입점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발란 사태가 사실상 예견된 수순이었다고 지적한다.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발란은 ‘계속기업으로서 존속 가능성에 불확실성이 존재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회계법인이 회사의 생존 여부 자체에 물음표를 던진 셈이다. 과거 위메프와 티몬도 같은 평가를 받은 뒤 정산금 미지급 사태를 겪었고 결국 파산 위기까지 내몰렸다. 판매자들이 불안해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로 발란의 재무 상황은 너덜너덜할 정도로 심각하다. 지난해 말 기준 재무제표상 자본총계는 –77억 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에 빠져 있다. 적자 규모도 심상치 않다. 발란은 2021년 186억 원, 2022년 374억 원, 2023년 100억 원 등 3년 연속으로 100억 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냈다. 

입점사들은 24일 기준 발란의 미정산 금액이 약 13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발란의 월평균 거래액은 약 300억 원 수준이며 전체 입점사 수는 1300여 곳에 이른다.

발란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기존 일정과 달라진 점이 없다”며 “오늘 예정대로 판매자들에게 공지사항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김예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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