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겸손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연임 도전에 나서고 있다. <그래픽 씨저널> |
[씨저널] 겸손의 중요성을 누구보다도 잘 보여주는 경영인이 금융업계에 있다.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이다.
함 회장은 하나은행장을 맡았던 시절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시골 촌놈이 어쩌다 보니 은행장이 됐다’는 뜻을 담아 스스로를 '어행'이라 얘기할 만큼 겸손하다.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을 통합한 거대은행을 이끌게 된 상황에서도 겸손한 태도를 우선시했던 함 회장은 4대 금융지주 회장 연임이라는 역대급 ‘고졸 신화’의 완성을 앞두고 있다.
하나금융지주에는 '장수 회장 DNA'가 있는데 함 회장에게 이 DNA가 작동하게 될까?
◆ '시골 촌놈'의 남다른 서번트 리더십
2015년 9월1일 서울 중구 을지로 KEB하나은행 본점에서 열린 통합은행의 출범과 통합은행장의 취임을 축하하는 기념식에서 있었던 일이다.
새롭게 취임한 통합은행장의 취임사를 앞두고 김근용 외환은행 노조위원장과 김창근 하나은행 노조위원장이 취임을 축하하기 위해 꽃다발을 들고 무대 위로 올라오자 당시
함영주 은행장은 두 팔을 넓게 벌려 이들을 꼭 끌어안았다.
두 노조위원장은 갑작스러운 포옹에 잠시 당황한 기색을 보였으나 곧 깊게 끌어안으며 포옹을 나눴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 통합 과정에서 있었던 갈등을 봉합하듯 이들의 포옹은 짧게 끝나지 않았다.
강한 스킨십으로 통합 의지를 드러냈던 함 행장은 이후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통합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그리고 지금은 하나금융지주 회장으로 연임을 앞두고 있다.
통합 이전만 하더라도 업계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화학적 결합에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두 은행이 통합 자체는 이뤘으나 외환은행과 하나은행 사이에는 앙금이 쌓일 만한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하나금융지주가 외환은행 노동조합과의 약속을 지키지 않은 일이었다. 애초 하나금융지주는 2012년 노사합의서를 통해 5년간의 독립경영을 보장하기로 했지만 2년 뒤 조기 통합을 추진했다.
외환은행 노동조합은 이러한 하나금융지주의 움직임에 크게 반발했다.
조기 통합 안건이 외환은행 이사회를 통과한 2014년 7월에는 즉각적으로 성명서를 통해 “이사회가 경영진의 합의위반 및 은행경영 포기 선언을 바로잡지 않고 오히려 합병 추진을 결의한 것은 경영진 견제라는 이사회의 역할을 포기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5년 1월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통합절차 중지 가처분 신청을 내기도 했다.
조기 통합을 놓고 하나금융지주와 외환은행 노동조합의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던 상황에서 함 회장은 김병호 당시 하나은행장, 김한조 당시 외환은행장 등 쟁쟁한 후보들을 꺾고 은행장으로 내정됐다.
함 회장은 겸손하고 포용력 있는 덕장이라는 점이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함 회장은 고객뿐만 아니라 부하직원들에게까지 고개를 숙이는 서번트 리더십으로 하나은행 내부에서는 적이 없을 정도로 직원들의 신뢰가 두터웠다. 본인을 ‘시골 촌놈’으로 부를 정도로 겸손한 태도도 갖췄다.
함 회장은 은행장 내정 직후 외환은행 노동조합을 마주하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하며 외환은행 노동조합 달래기에 들어갔다. 통합 이후에도 김지성 전 외환은행 노조위원장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며 이들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힘썼다.
KEB하나은행 출범식 뒤에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이와 관련해 “나도 피합병은행인 서울은행 출신”이라며 “가장 빨리 화학적 결합을 이루는 게 뭘까 고민한 끝에 전 외환노조 위원장이자 노조 협상 대표 중 한 명이었던 김지성씨를 파트너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식인들은 겸손과 자신감이라는 서로 어울리지 않는 단어들이야말로 깊은 상관관계가 있다며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소설 ‘홍당무’로 유명한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는 겸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겸손해져라. 그것은 다른 사람에게 가장 불쾌감을 주지 않는 종류의 자신감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독일의 저명한 언론인 마티아스 뇔케 또한 저서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에서 겸손이야말로 자신감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고 배려 깊은 태도라고 봤다.
◆ 실적으로 입증한 덕장 리더십, 하나금융지주 역대 최고 실적 달성
하나은행 대전지역본부장 시절 함 회장은 다른 지역 영업점을 방문할 때 기차를 애용했다.
본부장에게 주어진 회사 차량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인이 탈 자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전의 유명 제과점인 성심당에서 후배들에게 줄 빵을 수백 개 사서 차에 실어 보내느라 기차를 타야 했다는 것이다.
함 회장의 덕장 리더십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강한 친화력을 바탕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KEB하나은행(외환은행+하나은행)의 초대 은행장으로 선임된 함 회장은 완전히 색깔이 다른 두 은행의 화학적 결합을 이끌며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고 예상됐던 통합 과정을 신속히 마무리하는 성과를 거뒀다.
함 회장은 은행장 취임 이후 교차 인사 등을 통해 두 은행 출신의 인적 교류에 힘썼다. 그 결과 취임 1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인 2016년 6월에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전산 통합이 완료됐다. 2017년 1월에는 통합 노동조합이 출범했으며 2019년 1월에는 어느 은행 출신이라도 같은 인사·급여·복지 제도의 적용을 받게 됐다.
KEB하나은행의 통합 인사·급여·복지 제도는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기존 제도 가운데 비교우위에 있는 제도의 장점을 승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성원이 민감할 수밖에 없는 급여 문제에서도 줄어드는 사람이 없도록 현재 수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조정했다.
함 회장의 덕장 리더십 아래 진행된 KEB하나은행 통합은 그대로 좋은 실적으로 이어졌다.
함 회장이 통합은행장으로 취임한 2015년 하나은행과 옛 외환은행의 순이익 합계는 9699억 원으로 4대 시중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1조 원을 넘지 못했다. 그러나 2016년 1조3727억 원으로 증가한 뒤 2017년에는 2조1035억 원을 기록하며 2년 동안 2배가 넘게 늘었다.
함 회장은 하나금융지주 회장이 된 후로도 호실적 행진이 이어지고 있다. 취임 첫해인 2022년 3조5706억 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2024년에는 이를 다시 한번 갈아치웠다. 하나금융지주는 2024년 기준으로 3조7388억 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이는 2023년과 비교하면 9.3%가 증가한 것으로 하나금융지주 역대 최고 실적이었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하나은행이 2022년부터 2023년까지 2년 연속으로 순이익 1위를 차지하며 리딩뱅크 자리를 차지한 것도 함 회장의 성과로 꼽힌다.
함 회장은 이러한 실적에 힘입어 연임에도 사실상 성공했다.
하나금융지주는 1월27일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열고
함영주 대표이사 회장을 차기 회장 최종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
2025년 3월 열리는 정기주주총회와 이사회를 거치면 하나금융그룹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최종 선임된다. 임기는 3년이다.
▲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오른쪽)이 2024년 11월11일 서울 중구 하나금융그룹 명동사옥에서 열린 '2024 모두하나데이' 행사에서 김장 봉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함영주의 아킬레스건, 채용비리 사법 리스크
함영주 회장에게 ‘채용비리 의혹’ 사법 리스크는 아킬레스건으로 남아있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항소1부는 2023년 11월23일 업무방해와 남녀고용평등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함 회장에게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 원을 선고했다.
함 회장은 KEB하나은행 은행장을 지내던 2015년 진행된 신입사원 공채에서 국민은행 고위관계자로부터 인사 청탁을 받아 인사부에 잘 봐줄 것을 지시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2015~2016년 공채를 앞두고 인사부에 남녀 비율을 4대 1로 해 남자를 많이 뽑도록 지시했다는 혐의로도 기소됐다.
함 회장이 상고를 하면서 직원 채용 관련 업무방해 혐의는 대법원 선고를 앞두고 있다. 가장 최근 심리 진행 현황을 살펴보면 2024년 12월16일로 ‘법리·쟁점에 관한 종합적 검토중’이다.
대법원이 언제 선고를 내릴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이 사건이 2023년에 접수된 것을 고려하면 함 회장의 재임 임기 중간에 판결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만약 대법원이 2심 수준의 형량을 내리게 된다면 함 회장은 즉각 회장 직함을 내려놓고 물러나야 한다.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은 사람은 금융회사 임원이 될 수 없다.
◆ 하나금융지주에 흐르는 장수 회장 DNA
하나금융지주 최고경영자들은 장수한 것으로 유명하다.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은 하나은행장을 지내던 시절을 포함하면 16년을 하나금융의 최고경영자로 보냈다.
김정태 전 하나금융지주 회장 역시 회장만 10년을 재임했다.
김 전 회장이 3연임을 시도했을 때는 후계자 사법 리스크 때문에 만 70세 나이 제한을 풀어버리는 것이 아니냔 말도 나왔다. 다만 후계자로 거론되던
함영주 회장의 사법 리스크가 일단락하자 만 70세에 바로 물러났다.
회장들의 연령 제한 규정을 두고 금융업계에서 여러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금융지주의 등기이사 연령 만 70세 제한이 금융지주의 이사회가 정관을 고치기만 하면 해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함 회장이 하나금융지주의 정관을 고칠 것으로 보는 시선은 많지 않다.
함 회장은 여전히 사법 리스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법원이 2심 판결을 그대로 인정하면 함 회장은 정관 개정과 상관없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된다.
탄핵 정국 혼란 속에서 70세가 되면 자동으로 회장 자리에서 물러나야 하는 규정이 수정되기는 했으나 연령 제한 자체를 없애는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금융당국을 비롯해 정치권도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에 긍정적인 시선을 보내지는 않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직접 징계에 더해 2016년 국정농단 사태 연루 의혹, 채용비리 관련 사법 리스크, 사모펀드 불완전판매 등을 이유로 4대 금융지주 회장의 장기 집권을 막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전 의원은 2022년 1월 금융지주사 회장 임기를 최장 6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이 법안은 정무위원회 심사를 넘기지 못하고 제21대 국회의 임기가 끝난 2024년 5월29일 폐기됐다. 김홍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