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대형 건설사들이 올해 서울 강남과 송파 등 주요 도시정비사업 수주전에서도 몸을 사리고 있다.
지난해 서울에서 10대 건설사가 참여한 도시정비 경쟁입찰이 단 두 건에 그쳤는데 이런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려워진 업황에 핵심 가운데서도 핵심 사업지를 중심으로 주요 건설사들이 ‘선별수주’ 기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 주요 건설사가 올해 서울 강남과 송파 등 주요 재건축 사업지에서도 몸을 사리고 있다. 사진은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 <연합뉴스>
9일 도시정비업계에 따르면 최근 재건축 사업 시공사 선정에서 경쟁입찰이 성사되지 않는 사례가 잇달아 나타나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이 관심을 보이다 입찰하지 않은 서울 송파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 사업이 대표적이다.
해당 사업지는 잠실 국제교류복합지구 턱밑에 있어 입지 가치가 높은 것으로 여겨졌다. 총 공사비도 1조7천억 원 가량이어서 건설업계의 관심을 받았고 삼성물산과 GS건설이 수주 의지를 내보였다.
잠실우성 재건축조합이 재공고를 낼 가능성이 있는 만큼 삼성물산이 다시 발을 들일 공산도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단독 입찰한 GS건설의 수의계약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물산의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 입찰 불참은 건설업계에서는 예상치 못했던 일로 여겨졌다.
올해 삼성물산이 서울을 중심으로 공격적 수주 전략을 취한 데다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과 관련해 영상제작과 옥외광고판 게시 등 다방면으로 수주 의지를 내보였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물산은 건설업황이 악화된 가운데 업계 기조으로 자리잡은 선별수주 전략에 따라 GS건설이 오래도록 공을 들인 점을 고려해 잠실우성 1·2·3차 재건축에서 출혈경쟁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
올해 주요 도시정비사업지에서 경쟁입찰 벌어지지 않은 곳은 잠실우성뿐만이 아니다.
지난 1월 현대건설과 삼성물산이 맞붙은 한남4구역과 2월 포스코이앤씨와 두산건설이 대결한 경기 성남 은행주공을 제외하면 주요 건설사들은 모두 경쟁 없이 수의계약 방식으로 시공권을 따냈다.
서울 핵심지역에서도 흐름은 비슷했다. 송파 대림가락과 한양3차, 서초 신반포4차, 신용산역북측 등 2회 이상 경쟁입찰 유찰 끝에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결정했다.
대형 건설사는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지방에서는 미분양 위험을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에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서도 공사비 급등에 선별수주 기조를 유지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 건설공사비 지수 흐름. <통계청 자료 갈무리>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자료를 보면 1월 공사비지수는 130.99포인트로 집계돼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지난해 9월(130.45)을 넘어섰다. 공사비지수가 2020년(100포인트)을 기준으로 계산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5년 사이 공사비가 30% 가량 상승한 셈이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올해도 선별 수주 기조를 이어간다는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며 “부동산 경기가 침체돼 있는 가운데 공사비가 급등해 불확실성이 큰 만큼 공격적으로 수주전에 나서기는 부담이 크다”고 설명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결국 도시정비시장의 주도권이 재건축 조합에서 시공사로 옮겨갔다는 시각도 나온다.
공사비 급등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가 된 만큼 조합들이 경쟁에 미온적 태도를 보이는 건설사를 끌어들이는 것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서울에서도 특히 3.3㎡당 공사비가 1천만 원에 이르는 사업장조차도 건설사의 큰 호응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서초 삼호가든5차아파트 조합은 지난해 시공사 선정이 유찰되자 3.3㎡당 공사비를 990만 원까지 높여 재입찰을 진행하고 있다. 다만 포스코이앤씨만이 입찰 의향서를 내 3월말 임시총회를 열고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업계에선 올해 서울에서 여러 정비사업이 예고돼 있어 현실적으로 모든 사업에 공격적으로 나서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또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올해 많은 사업 공고가 예정돼 있는데 아무리 규모가 큰 건설사라고 해도 모든 사업을 따낼 수는 없다”며 “수주경쟁 자체가 금액과 인력을 필요로 하는 ‘비용’인 만큼 건설사 관점에서는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고 바라봤다.
다만 업계에서는 연초 한남4구역 수주전처럼 경쟁에 몸을 사리는 시장 분위기를 뒤집을 사업지는 아직 남아 있다고 바라보고 있다.
당장 오는 12일이 입찰 마감인 개포주공 6·7단지 재건축(공사비 1조5천억 원 가량)과 공사비가 2조4천억 원에 이르는 압구정2구역(6월중) 등은 서울 강남에서도 핵심지로 손꼽히는 만큼 삼성물산과 현대건설 등 주요 건설사가 놓치기는 아쉬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