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뉴욕주 뉴욕시에 위치한 씨티은행 본부.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글로벌 은행들이 최근 차기 미국 정부를 주도할 공화당의 압박으로 탈화석연료를 목적으로 하는 기후대응 협의체에서 연이어 탈퇴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공화당은 화석연료 산업 육성을 핵심 정책으로 삼고 있는데 금융권이 탈화석연료 정책을 위한 기후대응 협의체를 유지하면 자본 확보가 힘들어질 수 있는 점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5일 파이낸셜타임스와 로이터 등 주요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글로벌 은행들이 정치적 압박에 따라 기후대응 협의체에서 연이어 탈퇴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그룹은 2024년 12월31일 ‘넷제로은행연합’에서 탈퇴한다고 발표했다.
넷제로은행연합은 유엔(UN)이 주관하는 협의체로 금융권의 탈화석연료 정책을 추진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설립됐다.
특히 씨티그룹은 2021년 넷제로은행연합 창설 초기 회원으로 창설 과정에서 매우 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씨티그룹은 공식성명을 통해 “우리는 연합에서 탈퇴한 뒤에도 기후목표에 전념할 것이며 세계 각국의 기후 대응을 지원하기 위해 신흥 시장에 자본을 제공하는 노력에 다시 집중할 것”이라며 “우리는 앞으로도 우리 고객들과 협력해 저탄소 경제로 전환하고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위해 일하겠다”고 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도 로이터에 보낸 공식서한을 통해 “우리는 연합에서 탈퇴한 뒤에도 고객들과 협력해 기후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두 은행의 탈퇴에 앞서 지난해 12월 골드만삭스와 웰스파고 등 대형 은행들도 넷제로행동연합에서 잇달아 탈퇴했다.
탈퇴 릴레이를 이어간 은행들은 모두 정확한 탈퇴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외신들은 미국 공화당을 주축으로 한 정치권의 압박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을 필두로 한 공화당은 화석연료 산업 지원을 주요 정책 아젠다로 삼고 있는데 대형 은행들의 탈화석연료 정책이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웰스파고 본부. <연합뉴스> |
이에 공화당은 여러 차례 넷제로은행연합에 가입한 은행들을 두고 반독점법 및 공정경쟁에 위배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화석연료 산업에 종사하는 기업들이 자본 유치에 불이익을 받는다는 점을 주된 이유로 들었다.
공화당이 주도하고 있는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지난달 공식성명을 통해 “(주요 은행들을 대상으로) 담합과 반경쟁적 행위에 참여한 결정적 증거들을 찾을 수 있었다”며 “이들 은행들은 ‘기후 카르텔’을 형성했다”고 지적했다.
또 미국 하원과 별개로 공화당 당색이 강한 텍사스주, 오클라호마주 등 11개 주 정부들은 주요 은행과 금융기업들을 대상으로 감사와 소송 등을 포함한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대표적으로 텍사스주는 지난달 블랙록펀드, 뱅가드그룹, 스테이트스트리트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에 집중하는 금융기업들을 연방법원에 제소했다.
켄 팩스턴 텍사스주 법무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웰스파고의 넷제로행동연합 탈퇴는 우리 조사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며 “다른 금융기관들도 지금이라도 웰스파고의 선례를 따라 우리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에 적대적인 ESG 정책을 끝낼 것을 촉구한다”고 말했다.
넷제로행동연합 측은 뱅크오브아메리카와 씨티그룹 탈퇴를 두고 이렇다 할 공식성명을 발표하지는 않았다. 다만 웰스파고 탈퇴 당시에는 개별 회원들의 이탈과 별개로 기후대응을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갈 것이라고 입장을 내놨다.
넷제로행동연합 대변인은 블룸버그를 통해 “(웰스파고의 이탈은) 개별 은행들이 처한 상황에 따른 것”이라며 “2021년 연합 창설 이후 지금까지 은행 5곳이 탈퇴했지만 100개가 넘는 은행들이 가입했고 우리는 넷제로 목표 달성을 위해 매우 큰 진전을 이뤘다”고 강조했다.
연이은 글로벌 은행들의 넷제로은행연합 이탈 소식은 다른 기후 금융 협의체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글래스고 넷제로 금융 협의체(GFANZ)’는 가입한 은행들이 파리협정에 부합하는 기후목표를 의무적으로 수립해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발표했다.
파리협정은 세계 각국이 글로벌 기온상승을 산업화 이전 시대와 비교해 1.5도 아래로 억제하기로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은 조약이다.
GFANZ는 파리협정을 근거로 하는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을 통해 결성됐던 만큼 파리협정 준수 여부를 까다롭게 평가했는데 이번에 이를 포기한 것이다.
이를 놓고 블룸버그는 주요 은행들의 넷제로행동연합 이탈 소식과 2022년 뱅가드그룹의 GFANZ 탈퇴가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GFANZ 관계자는 블룸버그를 통해 "GFANZ는 앞으로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장벽을 낮추고 필요한 자본을 조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든 금융기관들에 문을 열어줄 것"이라며 "민간금융 없이는 글로벌 에너지 전환을 달성할 수 없기에 2025년부터 GFANZ는 민간 자본 유치를 위한 노력을 두 배로 강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영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