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불러온 대격변으로, 2024년 삼성·SK·현대차·LG 등 4대 그룹은 AI를 사업에 접목하기 위해 분주한 한 해를 보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2024년 재계를 달군 키워드는 단연 '인공지능'(AI)이었다. AI가 불러온 산업 지형 대격변에 얼마나 잘 대응했는지가 그룹의 미래 명운을 가르는 변수가 됐다는 분석이다.
삼성과 SK그룹은 올해 AI 반도체에서 정면 대결을 펼쳤는데, 오랫동안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준비해왔던 SK그룹이 판정승을 거둔 것으로 평가된다.
LG그룹은 AI를 가전과 TV 등 제품에 접목하는 것과 동시에 제조 공정에도 AI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고, 현대차는 AI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24일 재계 취재를 종합하면 2024년 미국-중국 무역 갈등과 세계 경제침체, 내수 불안 속에서 국내 기업들은 쉽지 않은 한 해를 보냈다.
특히 최근에는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운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과 함께 비상계엄 사태 등으로 국내외 정치 환경이 불안해지면서 재계에 불안감이 급속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어려운 환경에서도 주요 기업들이 공통적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은 분야가 있는데, 바로 ‘AI’다.
먼 미래 이야기로만 생각했던 AI가 실제 산업에 적용될 수 있음이 확인되면서, 국내 기업들도 제품이나 제조 공정 등에 AI를 적극 도입하기 시작했다.
미국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AI 시장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AI를 어떻게 준비했느냐에 따라 기업들의 ‘승패’도 갈렸다.
대표적으로 삼성그룹과 SK그룹이 올해 AI로 희비가 엇갈렸다.
SK하이닉스가 AI 핵심 반도체인 HBM에서 경쟁우위를 점한 반면, 메모리 1등을 자랑하던 삼성전자는 확연히 뒤처진 모습을 보인 것이다.
SK하이닉스의 2024년 3분기 누적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15조3845억 원으로,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 영업이익 12조2200억 원보다 3조 원 이상 많았다. 이는 SK하이닉스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SK텔레콤과 SK C&C 등 다른 계열사들도 데이터센터 등 기업간거래(B2B) AI 사업을 강화하는 등 SK그룹 전체가 AI 경쟁력 확보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SK그룹은 2028년까지 5년 동안 총 103조 원을 투자하는데, 이 가운데 80%가 AI에 배정됐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올해 11월2일 열린 ‘2024 최고경영자(CEO) 세미나’에서 “차세대 챗GPT 등장에 따른 AI 시장 대확장이 2027년을 전후해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 시기를 놓치지 않고 SK가 성장 기회를 잡으려면 현재 진행 중인 '운영개선'(O/I)을 서둘러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삼성도 AI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HBM 시장 진입에 늦은 책임을 물어 경계현 DS부문장 사장을 조기에 경질하고, 전영현 부회장을 반도체 수장으로 앉혔다. 또 연말 인사를 통해 메모리사업부장도 전 부회장이 겸임토록 조치하며 변화 의지를 분명하게 드러냈다.
전 부회장은 올해 7월 HBM 개발팀을 신설해 직접 HBM 개발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또 삼성전자 디바이스경험(DX)부문은 ‘갤럭시 AI’와 ‘AI 가전’을 중심으로 AI가 불러온 변화에 발 빠르게 대응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갤럭시 AI는 경량화한 AI 모델로 통역, 번역, 텍스트 변환, 검색 기능 향상 등 실용적인 기능을 제공해 소비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LG 씽큐에 다양한 거대언어모델(LLM)을 결합한 LG AI 에이전트 퓨론 개념 이미지. < LG전자 > |
LG그룹도 AI 가전을 앞세워 스마트홈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LG전자는 올해 9월 AI가 사물인터넷(IoT) 기기를 제어하고 서비스까지 연결하는 환경을 구축하는 ‘LG AI 에이전트 퓨론’을 개발했다. 퓨론은 고객의 상황과 맥락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파악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기와 서비스를 조율해 고객 맞춤 솔루션을 제공하는 LG AI 홈의 ‘두뇌’ 역할을 맡는다.
LG디스플레이, LG이노텍 등 부품업체들은 제조 공정에 AI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LG디스플레이는 올레드(OLED) 제조에 AI를 도입해 연간 2천억 원의 비용을 절감할 것으로 예상되며, LG이노텍은 ‘원자재 입고 검사’에 업계 최초로 AI를 동원해 1분 만에 불량 영역을 찾아내고 있다.
현대자동차 그룹도 AI를 중심으로 한 모빌리티 사업 확장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현대모비스는 2024년 1분기부터 자율주행 3단계용 ‘고성능 전방레이더’ 개발에 착수했는데, 이는 ‘고속도로 자율주행 기능(HDP)’ 탑재 신차 개발을 위한 준비 단계로 분석된다. 현대차그룹의 연내 HDP 상용화는 무산됐지만, 이르면 2026년에는 도입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율주행 경쟁력 강화를 위한 협력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는 올해 10월 구글 자회사 웨이모와 6세대 완전 자율주행 기술인 '웨이모 드라이버'를 전기차 아이오닉5에 적용하기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현대차는 2025년 말부터 웨이모 드라이버가 탑재된 아이오닉5의 초기 도로 주행 테스트를 진행한다.
테슬라 등 자율주행 선두그룹과 기술격차를 좁히기 위해 협력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한 것이다.
AI가 산업 전반과 각 기업에 미칠 영향은 2025년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AI를 기존 사업에 어떻게 접목하고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미래는 완전히 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컨설팅 업체 삼일PwC는 지난 1일 ‘한국 산업의 돌파구를 찾아서: 2025년 산업전망’이란 보고서를 통해 “디바이스에 쉽게 탑재 가능한 특성과 수요자 중심의 AI 시장 변화 힘입어 AI는 전 분야로 적용이 확대될 것”이라며 “기술 고도화와 사용자 친화 중심의 서비스가 발전함에 따라 2033년까지 글로벌 AI 시장 연평균 성장률(CAGR)은 19.1%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