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허은철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이 면역글로불린 ‘알리글로’의 미국 공급 확대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 면역글로불린 시장에서 공급 부족 현상이 이어지고 있어 빠르게 공급을 늘려 조기 안착의 포석을 깔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 12일 제약업계에 따르면 허은철 녹십자 대표이사 사장(사진)이 알리글로에 대한 수직계열화를 서두르면서 실적 개선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이라는 시선이 나온다. |
12일 비즈니스포스트 취재를 종합하면 녹십자가 미국에서 혈액원을 인수한 것을 놓고 기존보다 2년가량 빠른 움직임이라는 해석이 나오고 있다.
녹십자는 앞서 미국 뉴저지에 있는 ABO홀딩스 지분 전량을 138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ABO홀딩스는 미국 뉴저지 등 3개 지역에서 6개의 혈액원을 운영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미국 텍사스주에 2곳의 혈액원을 추가로 건설하고 있어 2026년에는 8곳으로 확대된다.
허 사장으로서는 미국에 진출한 지 5개월 만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
녹십자가 이번에 1천억 원이 넘는 투자를 단행했는데 이는 2023년 연결기준 자기자본의 9%로 적지 않은 수준이다.
물론 녹십자는 알리글로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서 품목허가를 받은 이후 미국 진출을 할 때 안정적 혈액 공급을 위해 혈액원 인수를 계획한 바 있다.
하지만 기존 알려진 계획에 따르면 혈액원 인수 시기는 2027년이었지만 올해 말로 당기면서 허 사장이 미국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배경으로는 미국에서 면역글로불린 제제의 공급부족 상황이 꼽힌다.
미국 면역글로불린 제제 시장은 다케다, 그리폴스, CSL, 옥타파파마 등 4개 회사의 과점으로 구성됐다.
면역글로불린 제제와 관련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까다롭게 심사하면서 미국에서 허가를 받은 곳도 6곳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미국에서는 면역글로불린 제제에서 불순물 문제로 제품이 회수되는 경우가 많아 만성적 공급 불안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뿐 아니라 미국은 세계 최대 면역글로불린 시장이다.
시장조사기관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미국 정맥주사용 면역글로불린 제제 시장은 2024년 66억5천만 달러(9조2천억 원)에서 연평균 7.7%씩 증가해 2030년 103억9천만 달러(14조4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됐다.
공급자가 많지 않은 상황인 만큼 허 사장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지인 셈이다.
알리글로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 충분한 혈액을 확보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면역글로불린 제제의 핵심 원료인 글로불린단백은 혈액 1ℓ당 25g 밖에 나오지 않아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대규모의 혈액이 필요하다.
▲ 미국 면역글로불린 제제 시장은 만성적 공급 부족 시장으로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사진은 녹십자가 미국에서 판매하고 있는 알리글로 제품 모습. <녹십자> |
더구나 면역글로불린 제제가 면역력을 강화하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보니 허가를 받은 적응증 이외에서도 처방이 이뤄지다보니 공급 부족이 더욱 심각해질 수밖에 없다.
실제 미국에서는 면역글로불린 제품들이 150개 이상의 적응증에 오프라벨로 처방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알리글로는 선천적 면역결핍증인 면역글로불린 결핍증 치료를 위한 면역글로불린 제제로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2023년 12월 1차 면역결핍증을 앓는 17세 이상의 성인을 대상으로 허가를 받았다.
허 사장으로서는 면역글로불린 제제의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만큼 녹십자 실적 개선 속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녹십자는 2023년 연간 실적 기준으로 국내 5대 제약사(유한양행·녹십자·종근당·대웅제약·한미약품) 가운데 유일하게 실적 감소를 겪었다.
하지만 올해 하반기부터 미국에서 알리글로 판매가 시작되면서 실적을 회복하고 있는 상태다.
알리글로는 2023년 12월 미국 식품의약국으로부터 품목허가를 받은 이후 이듬해 7월 미국에서 판매가 시작됐다.
녹십자는 2024년 3분기 미국에서 알리글로로 매출 160억 원을 낸 것으로 추산됐다.
같은 기간 녹십자는 연결기준으로 매출 4649억 원, 영업이익 396억 원을 거뒀다. 2023년 3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5.8%, 영업이익은 20.7% 증가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분기 기준으로 1년 전과 비교해 올해 3분기에 처음 증가로 돌아섰다.
4분기에는 더욱 가파르게 실적을 회복할 것으로 전망된다.
알리글로 판매가 본격화되면서 올해 4분기에는 알리글로만 476억 원을 낼 것으로 전망된다. 1개 분기만에 매출이 3배에 가깝게 늘어나는 것이다.
전체 실적도 매출 4659억 원, 영업이익 100억 원을 낼 것으로 전망됐다. 2023년 4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15.06% 늘어나고 영업이익은 흑자전환하는 것이다.
허 사장으로서는 내년 역대급 실적이 기대되는 이유다.
금융정보회사 FN가이드에 따르면 녹십자는 2025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8904억 원, 영업이익 964억 원을 낼 것으로 예상됐다. 2024년 예상치와 비교하면 매출은 10.84%, 영업이익은 72.41% 늘어나는 것이다.
녹십자가 2022년 세운 역대 최대 매출인 1조7113억 원을 웃도는 수준이다.
혈액원을 인수한 직후 나온 증권사 리포트들은 내년 매출 눈높이를 더욱 높인 상태다.
DS투자증권은 녹십자가 2025년 연결기준으로 매출 1조8913억 원으로 예상했다. 증권사 평균치와 비교해 소폭 늘어난 수준이다.
이달미 BNK투자증권 연구원도 이날 리포트를 내고 “녹십자가 이번에 미국에서 혈액원을 인수하면서 혈액제제 수직계열화를 이뤘다”며 “미국은 혈액제제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시장으로 알리글로가 장기적으로 매출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장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