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충희 기자 choongbiz@businesspost.co.kr2024-12-0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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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더불어민주당이 쌀 초과생산분을 정부가 자동 매입하는 내용의 양곡관리법(양곡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를 단독으로 밀어붙이자 정부 여당이 반발하며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예고했다.
민주당은 식량안보를 위해서라도 국내 수요를 초과하는 쌀 생산 규모를 유지해야 한다고 본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서는 시장원리에 맞게 줄여가는 것이 순리라고 보고 있어 여야가 팽팽히 격돌하는 모양새다.
▲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이 2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농림축산식품부 소관 4개 쟁점 법률안 본회의 의결에 대한 정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3일로 예정된 국무회의를 거쳐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를 거쳐 대통령에게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건의했는데 받아들여질 공산이 크다.
정부와 여당은 쌀 생산량과 가격을 시장원리에 맡겨 경쟁력 없는 쌀농가는 도태시키되 이들 농가들이 콩이나 밀, 보리, 옥수수 등 다른 부족한 곡물을 생산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보고 있다.
송미령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은 지난달 28일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한 직후 한 기자회견에서 "양곡법 개정안은 구조적 쌀 공급과잉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의 다각적인 조치를 무력화해 쌀값의 회복과 유지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우려하며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을 건의하겠다는 뜻을 피력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21대 국회 임기인 2023년 4월에도 같은 내용의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한 적이 있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는 △시장의 수급조절 기능 마비 △쌀 수매에 연간 1조원 이상의 재정 부담 △해외 수입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밀 콩 등 다른 작물 생산 저해 등을 이유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에 재의요구권을 건의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정부와 여당의 시각은 쌀이 남아돌기 때문에 억제해야 한다는 인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2022년 기준 한국의 쌀 자급률은 104.8%로 소비량을 초과하는 생산분이 문제가 되고 있다. 2023년 정부가 쌀 초과생산분을 매입하고 보관하는 데 지출한 비용은 2조2천억 원에 이른다.
국내에서 재배되는 품종도 주로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소비되는 '자포니카' 품종이라 수출을 하기도 쉽지 않아 골칫덩이라는 인식이 많아진 상태다.
가격이 지나치게 낮게 형성되면 쌀농가들의 생계가 위협받기 때문에 농촌경제 안정화를 위해 여야 모두 해결책 찾기에 나선 상태다.
정부와 여당은 이같은 문제해결을 위해 과거 일본정부가 쌀 보조금을 단계적으로 폐지해 쌀 생산량을 현실화 한 것을 참고했다.
일본은 1971년부터 이같은 내용의 생산조정제를 시작해 1970년 1268만 톤에 이르렀던 쌀 생산량을 2023년 661만 톤까지 줄였다.
이처럼 정부와 여당이 시장원리에 따른 해결을 추구하는 것과 비교해 민주당은 정부의 직접개입을 통한 정책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쌀을 단순한 시장재화로 봐서는 안되며 식량안보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27일 최고위원회 모두발언에서 "농업은 식량안보가 걸린 전략산업이고 다른 나라들도 안보산업, 전략산업으로서 농업을 지원하고 있다"며 "정부가 함부로 농정을 했다가 식량위기가 발생하면 어떻게 대응하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국제사회에선 최근 몇년 동안 식량안보가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7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유럽 최대 곡창인 우크라이나 식량수출이 멈추면서 곡물가격이 급등했고 2021년 대비 식용 곡물의 수입단가는 18.5~39.5%, 사료용 곡물은 17.8~31.3% 상승했다.
곡물가격이 급등하면서 식량 자급률이 낮은 중동과 아프리카, 일부 남미 국가 국민들에선 시위와 폭동, 쿠데타 등 정치적 혼란이 발생하기도 했다.
2023년에는 주요 쌀 수출국인 인도가 갑작스럽게 쌀 수출을 금지하면서 쌀(인디카 품종) 국제 가격이 급등하기도 했다.
과거 한국도 쌀 부족을 겪은 적이 있다. 1980년 미국 세인트헬레나 화산폭발로 동북아시아 전체가 3년의 냉해 피해를 입으면서 쌀 가격이 급등했다.
국내에서 쌀 사재기가 만연했으며 국제 곡물메이저 기업들도 쌀 가격 급등을 부추겨 1981년에는 당시 톤당 200달러였던 쌀 가격이 일시적으로 600달러까지 치솟기도 했다.
전두환 정부가 식량위기 해결을 위해 쌀 매수에 나섰으나 어려움을 겪었다. 정부는 곡물메이저와 협상을 통해 울며겨자먹기로 2배 가까운 가격에 3년 장기계약을 맺어 쌀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병기 전 농축식품부(당시 농림수산부) 차관은 2006년 농수축산신문과 인터뷰에서 그때의 교훈을 되새기며 "식량안보는 전쟁보다 더 높은 차원의 ‘국민 생명줄’이라는 개념"이라며 "식량안보가 확립되지 못하면 주권이 손상되고 바람직스럽지 못한 희생과 대가를 치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최근 기후위기에 따라 과거와 같은 흉년 가능성이 커지면서 주식인 쌀 생산량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시각이 많다.
정부가 참고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에서는 오히려 쌀 부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2023년 일본정부 쌀 목표생산량인 669만 톤에 미치지 못하는 661만 톤이 생산되면서 쌀 가격이 급등했다. 2023년 일본 내 주요 쌀 산지에 기록적인 폭염이 발생한 것이 원인이다.
일본농업협동조합이 도매업체에 판매하는 미도정 쌀 60kg 가격은 2024년 8월 1만6133엔(약 15만 원)으로 2023년 8월보다 28.3% 높아졌다.
이같이 상승한 가격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2024년에도 폭염으로 쌀 생산량이 크게 회복되지 않아서다.
교도통신이 지난 10월18일 일본 농림수산성 발표를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새로 수확된(햅쌀) 미도정쌀 60kg 9월 가격은 2만2700엔(21만 원)이었다. 전년 동기 대비 48% 상승했으며 1993년 이후 최고치다.
아직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진 않았으나 한국에서도 기후변화에 다른 단위당 생산량 감소 현상이 통계적으로 잡히기 시작했다.
통계청이 지난달 15일 발표한 쌀 생산량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4년 1천㎡(1천 제곱미터, 10a)당 쌀 생산량은 514kg으로 전년 생산량(523kg)보다 1.8% 감소했다.
통계청은 “벼 낟알이 익는 시기에 집중호우 및 고온으로 병충해 등 피해가 증가해 생산량이 줄었다”고 해석했다.
김지연 농경연 해외농업관측팀장은 최근 기후위기 대응 식량안보 강화방안 포럼에서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 6차 평가보고서를 인용해 "고온, 가뭄 발생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국내 쌀 생산량이 장기적으로 10% 이상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조충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