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철 기자 dckim@businesspost.co.kr2024-11-22 14:4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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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론으로 추진하는 이사회 책임범위를 일반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내용을 뼈대로 하는 상법개정안을 두고 공개토론을 제안했다.
이 대표는 당대표 연임에 성공한 뒤 ‘먹사니즘(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강조하며 재계와 접촉면을 늘리면서 ‘경제 우클릭’ 행보를 보였다. 이런 기조 속에서 이 대표가 재계 반발이 거센 상법개정안에 관해 절충점을 이끌어낼 지에 관심이 집중된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2일 국회에서 열린 확대간부회의에서 미소를 짓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2일 확대간부회의에서 “재계가 민주당의 상법개정에 문제가 있다는 긴급성명을 발표했다”며 “한편으로는 개인 소액 투자자들은 신속하게 상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말한 뒤 당 정책토론 개최를 제안했다.
민주당은 이 대표가 제안한 상법개정안 토론과 관련해 일반투자자와 재계 측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문가들을 초청해 토론회를 연다는 방침을 정했다.
진성준 정책위의장은 이날 회의가 끝난 뒤 백브리핑에서 “상법 개정 문제와 관련해 2차 정책토론이 될 것 같다"며 "다만 (금투세 토론처럼) 당내 의원들 간 이견 토론이 아니라 이해관계 당사자들, 경영계와 일반 투자자들 사이에 의견차가 있기 때문에 두 진영을 대표하는 대표자들과 진영에서 추천하는 전문가들 모시고 공개 토론을 해볼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 대표가 상법개정안에 관한 여러 의견을 수렴하겠다는 뜻을 밝힌 데에는 재계의 강력한 반발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국회 인근 카페에서 주식 투자자들을 만나 “이사가 실제 주주의 이익이 되도록 행동할 필요가 있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상법 개정을 확실히 추진하겠단 뜻을 내비쳤다.
이 대표의 입장이 알려지자 삼성, SK, 현대자동차 등 16개 국내 주요 그룹사 사장단은 성명서에서 민주당의 상법개정안을 두고 “소송 남발과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으로 이사회의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어렵게 하고 신성장 동력 발굴을 저해함으로써 기업과 ‘국내 증시 밸류다운’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재계의 입장이 나온 다음 날 바로 이 대표가 직접 상법개정안에 관한 재계의 입장을 듣기위해 토론을 제안한 만큼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절충점을 모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가 11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과 대화하며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대표가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와 한국무역협회 등을 만나 재계의 건의사항을 경청하며 ‘친기업’ 행보를 보인 점도 이번 상법개정안 논의에 재계의 입장을 수용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이유다.
특히 이 대표는 진보진영에서는 반대하고 기업인들에게는 숙원사업으로 평가되는 ‘배임죄 완화’와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전향적 태도를 나타냈다.
이 대표는 20일 주식투자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제는 기업인을 배임죄로 수사하고 처벌하는 문제를 공론화할 때가 된 것 같다”며 “검찰이 수시로 웬만한 회사 자료를 갖고 심심하면 내사를 하고 배임죄 등으로 조사해 회사가 망해버린다”고 지적했다.
또 배당소득 분리과세와 관련해 “배당이 정상화될 수만 있다면 배당소득세를 낮추는 것이 세수 증대에, 총액으로 보면 오히려 더 많지 않을까 생각도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재계에서는 주주 이익에 반하는 결정을 했다는 이유로 기업 이사들이 배임죄 대상이 돼 과도한 수사를 받게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팽배햇다. 배임죄를 완화하지 않은 채 상법 개정을 통해 이사 충실의무를 확대하면 재계의 우려가 더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배당소득 분리과세도 배당소득과 이자소득을 합한 금융소득에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현행 세제를 고치는 게 뼈대로 이는 재계가 줄곧 요구해온 사안이다.
이 대표가 재계와의 정책토론을 거쳐 민주당이 당론으로 발의한 상법개정안보다 좀 더 완화된 내용으로 수정하는 정무적 결정을 내린다면 국민의힘과의 논의에도 탄력이 붙을 수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얼마든지 타협할 수 있고 합리적인 방안을 찾을 수 있다고 보니 기업계에서도 신속하게 공개토론에 응해달라”며 민주당 상법 개정안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민주당 상법 개정안의 핵심은 이사의 충실 의무를 ‘회사’에서 ‘주주’로 확대하는 것이다. ‘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주주 보호 의무 조항을 신설함으로써 기업 이사가 총수의 이익을 위해 일반 주주들에게 불리한 결정을 하게 되면 상법상 손해배상책임을 물을 수 있게 된다.
반면 국민의힘은 상법을 개정하지 않고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일반 주주들을 보호하는 방식을 검토하고 있다.
김상훈 정책위의장은 이날 원내대책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업계가 느끼는 여러 부담을 고려했을 때 상장법인에 한해 적용할 수 있는 자본시장법으로 대안을 제시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의 합병 사례 등에서 합병가액 산정 방식 등에 관해 소액주주들의 불만이 높아진 점을 고려해 합병이나 물적분할 같은 특수한 사례에만 적용할 수 있는 ‘핀셋 규제’를 마련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의 상법개정안을 추진하는 주식시장 활성화 태스크포스의 한 관계자는 비즈니스포스트와의 통화에서 “대통령과 금감원장도 이사충실의무 확대를 추진한다고 했다가 재계가 반대하자 여당이 태도를 바꾼 것”이라고 비판하면서도 “여당이 일반 주주 보호를 위한 법안을 내놓는다면 물적분할 이후 별도로 기업을 상장할 때 주식매수청구권 규정 등 큰 틀에서는 논의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대한상의와 상장사협의회 방문 일정도 있는 만큼 재계에서 상법개정안 토론에 응한다면 의견을 나눌 기회는 금방 잡힐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대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