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축소·폐지를 줄곧 시사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이 확정되면서 국내 배터리 기업들의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지난 6일(현지시각) 미국 대선 개표 결과가 나온 뒤 플로리다주 팜비치 행사장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친환경 정책 ‘역주행’을 예고한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다시 백악관 주인자리를 꿰차게 됐다. 전기차 시장 성장둔화(캐즘) 여파로 고전 중인 국내 배터리 업계에 악재로 작용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기차·배터리 업계에서는 트럼프 당선인이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배터리 세액공제, 전기차 보조금 등 판매 촉진책을 완전 폐지하기보다는 일부 축소할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최악은 피하게 되는 셈이지만, 친환경 정책 기조 유지를 바탕으로 세워뒀던 배터리 업계의 미국 사업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7일 배터리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친환경 정책 역주행을 예고한 트럼프 후보 당선으로 배터리 업계가 더 깊은 경영악화 늪에 빠질까 우려하고 있다.
특히 업계에서는 IRA에 따른 첨단제조생산 세액공제(AMPC) 축소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AMPC는 배터리·태양광·풍력·핵심광물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기업에 생산량에 따라 크레딧(지원금)을 주는 제도다.
트럼프 당선인이 의회에서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하는 IRA 폐지보다는 행정명령을 통한 IRA 보조금 또는 AMPC 지급 조건을 까다롭게 변경해 예산을 축소할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AMPC 축소가 현실화하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의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올해 내내 악화한 수익성이 더 나빠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각 사의 올해 3분기 누적 AMPC 금액은 LG에너지솔루션 1조827억 원, SK온 2111억 원, 삼성SDI 649억 원 등으로 AMPC가 수익에 상당 부분 기여하고 있다.
국내 배터리 업계는 일시 중단한 미국 내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다시 검토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AMPC가 그동안 미국 현지 배터리 공장 건설의 전제였던 만큼, AMPC가 사라지면 공장 투자 계획도 전면 철회하거나 변경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미국 내 공장 건설에 속도를 내고 있는 삼성SDI는 12월 스타플러스에너지(스텔란티스 합작법인) 1공장 조기 가동을 통해 내년부터 AMPC 수혜 기대감을 키운 상황이었다.
또 삼성SDI는 2027년을 양산을 목표로 GM과 미국 합작공장에 2조2930억 원, 스타플러스에너지 2공장 2조6556억 원 등 북미 투자 계획을 추진 중이었는데, 트럼프 IRA AMPC 정책 변경에 따라 투자를 재검토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SK온은 포드와 합작해 설립한 블루오벌SK가 켄터키주 1·2공장과 테네시주 공장, 현대자동차과 합작한 DL이 조지아주에 공장을 건설 중이다. 켄터키주 2공장을 제외하고 2025년 상업 가동할 예정이었다.
SK온은 총 199GWh 배터리 생산 규모의 지역별 생산체계를 완비하는 2025년을 기점으로 설비투자를 일단락 한 뒤, 수익성 개선에 주력한다는 계획이었지만 상황을 낙관할 수 없게 됐다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김동명 대표이사가 지난 1일 배터리 산업의 날 행사에서 시사했듯, 북미 설비투자 속도 조절에 나설 것이 유력해 보인다.
생산량 기준 국내 배터리 제조사 가운데 가장 많은 설비를 운영하고 있는 만큼,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 고정비가 큰 업종 특성상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 지역에서 단독 공장 2개와 GM, 혼다, 현대차, 스텔란티스 등과 합작공장 6곳 등 총 8개의 공장을 운영 또는 건설하고 있다. 특히 현재 GM과 합작법인 얼티엄셀즈 3공장 건설 재개 여부가 관심사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전기차 산업의 중장기적 성장 가능성은 변함이 없을 것”이라며 “대선 결과에 따른 정책과 시장 변화 가능성을 예의주시하며,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능동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북미 시장에 대규모 생산설비를 구축한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 정부의 세액공제 혜택이 줄고, 전기차 보조금이 축소돼 캐즘이 길어진다면 향후 막대한 설비투자에 대한 이자부담이 높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각사> |
미국 전기차 보조금 축소·폐지로 전방 시장인 전기차 시장의 캐즘이 길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배터리 업계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현재 연방소비자 세액공제(인센티브)는 전기차 구매에 최대 7500달러의 보조금을 제공하는데, 트럼프는 이를 대폭 삭감하거나 없앨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정진수 흥국증권 연구원은 “향후 금리 상승 여부에 따라 국내 배터리 업계의 막대한 자본적 지출에 대한 후유증이 증폭될 수 있다”며 “최근 3년간 2차전지 업계의 자본적 지출과 이자비용은 4배 이상 증가한 상태로, 금리상승 혹은 전기차 캐즘 등으로 투자금 회수 시점이 지연될수록 이자 부담이 가중된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트럼프의 보호무역 정책이 미국 현지에 공장을 세운 K-배터리에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트럼프 당선으로 미중 갈등이 격화하고, 미국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면 현재 중국산 배터리에 고전하고 있는 K-배터리에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신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