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유 기자 jsyblack@businesspost.co.kr2024-10-29 15: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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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D현대그룹의 주요 사업축인 건설기계가 실적 둔화를 겪고 있다. <그래픽 비즈니스포스트>
[비즈니스포스트] 조영철 HD현대사이트솔루션 대표이사 겸 HD현대인프라코어 대표이사 사장이 HD현대그룹의 3대 사업축 구축 이후 처음으로 건설기계 실적 둔화를 겪게 됐다.
임기 만료가 다가오는 조 사장으로서는 부진한 업황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다만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의 경영승계가 본격화한 상황에서 그룹 내 신뢰를 받고 있는 조 사장은 미국 대선 이후 실적 반등을 기대하며 신시장 등 성과를 다지는데 공을 들이고 있다.
29일 건설기계업계와 증권업계 안팎의 말을 종합하면 HD현대그룹 건설기계 계열사인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가 본격적으로 실적 반등을 기대해볼 만한 시점은 내년 하반기로 전망된다.
최근 대다수 증권사가 두 회사의 목표주가를 잇따라 내려 잡는 등 단기 실적 개선은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미국 대선 이후 북미 수요를 지켜봐야 한다는 건설기계 업황 전반의 큰 틀 안에서 움직이는 셈이다.
▲ HD현대그룹 건설기계부문을 이끌고 있는 조영철 사장이 신시장에서의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 대선 이후 반등의 기회를 바라본다.
23일 HD현대건설기계 3분기 실적발표 뒤 분석보고서 내놓은 증권사 9곳 가운데 7곳이 목표주가를 하향했다. 전날 실적을 발표한 HD현대인프라코어의 목표주가는 이날 나온 보고서 7곳 모두에서 내렸다.
두 회사 실적에 드리운 먹구름은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력인 선진시장(북미·유럽)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는 글로벌 건설시장 둔화, 11월5일(현지시간) 치러질 미국 대선을 앞두고 지속하는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장비 구매 지연 현상이 주요 원인이다.
최근 두 회사의 3분기 실적을 뜯어보면 당분간 이어질 흐름을 미뤄 짐작해볼 수 있다.
HD현대건설기계는 3분기 연결기준 매출 8168억 원, 영업이익 430억 원을 거둔 것으로 잠정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및 직전 분기와 비교해 모두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한 것인데 특히 영업이익은 물량 감소에 따른 고정비 부담 증가에 각각 20%, 27%씩 축소됐다.
3분기 지역별 매출 보면 북미가 2032억 원, 유럽이 97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각각 11%, 15% 줄었다. 북미는 대선 불확실성에 따른 건설시장 관망세 탓에, 유럽은 서유럽 중심 주요국을 중심으로 수요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분석이다.
HD현대건설기계 자체 분석에 따르면 선진시장의 굴착기 및 중대형 휠로더 등 건설기계 수요는 3분기 5만3700대로 지난해 3분기와 견줘 21% 감소했다.
사업부문별로 봐도 매출의 75%가량을 차지하는 건설기계부문은 매출 634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3% 감소했다. 산업차량부문 매출은 1012억 원으로 1년 전보다 19% 축소된 것이다.
HD현대인프라코어의 실적 하락폭은 더 크다.
HD현대인프라코어 3분기 잠정실적은 3분기 연결기준 매출 9098억 원, 영업이익 207억 원으로 1년 전 및 직전분기와 비교해 매출은 15%가량, 영업이익은 75% 안팎으로 감소한 것이다. 건설기계부문에서 프로모션비용과 물류비용이 확대되며 영업손실 120억 원을 기록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
3분기 건설기계부문의 북미와 유럽 매출 합은 2270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7% 줄었다. HD현대인프라코어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에 따른 예산 감축도 실적 부진의 또 다른 이유로 꼽았다.
사업부문별로 나눠보면 매출의 70% 이상을 점유하는 건설기계부문은 지난해 3분기보다 17% 감소한 매출 6548억 원, 엔진부문은 11% 감소한 2550억 원을 올렸다.
HD현대건설기계와 HD현대인프라코어는 연초에 세웠던 연간 실적목표 달성에서는 멀어진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두 회사 실적목표는 HD현대건설기계가 매출 4조120억 원, 영업이익 2638억 원이고 HD현대인프라코어가 매출 5조 원, 영업이익 4450억 원이다.
증권사 전망치를 종합하면 올해 HD현대건설기계는 연결기준 매출 3조5천억 원 및 영업이익 2천억 원, HD현대인프라코어는 연결기준 매출 4조1천억 원 및 영업이익 2300억 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조영철 사장도 최근 한 언론사와 인터뷰에서 글로벌 건설기계 시장이 내년 하반기부터 살아날 것이라고 관측했다. 실적 회복에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HD현대건설기계 및 HD현대인프라코어 실적과 소규모 자체사업(산업차량·건설기계용 컴포넌트 제조)을 더한 HD현대사이트솔루션 연간 실적도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은 2022년 연결기준 매출 8조5036억 원, 영업이익 4644억 원에서 지난해 8조7482억 원, 영업이익 7242억 원으로 대폭 실적을 개선했다. 올해는 상반기까지 매출 4조2160억 원 영업이익 3323억 원을 거뒀다.
조 사장에게 올해 실적후퇴가 아쉬운 것은 HD현대그룹의 사업구조 재편 이후 오너경영체제로의 본격적 전환과 그 시점이 맞물렸다는 점이다.
HD현대그룹은 2021년 8월 HD현대인프라코어(옛 두산인프라코어) 인수를 마무리짓고 건설기계 중간지주사 HD현대사이트솔루션(옛 현대제뉴인)을 출범했다. 조선 중간지주사 HD한국조선해양, 정유 계열사 HD현대오일뱅크와 함께 조선·에너지·건설기계의 3대 사업축으로 거듭난 것이다.
이는 단순한 사업구조 재편에 의미를 넘어선다는 평가가 많다. 같은 해인 2021년 10월 정기선 부회장이 당시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하면서 1988년 이후 30여 년이 넘어서 오너경영체제 전환의 시작을 알렸다.
이어 지난해 11월에는 가삼현 전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 부회장, 손동연 전 HD현대사이트솔루션 대표이사 부회장의 용퇴와 함께 정 부회장이 그룹 유일의 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오너경영체제의 9부 능선을 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3대 사업축이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은 뒤 오너경영체제가 더욱 확고해지는 시기에 실적이 뒷걸음질 치는 것이다.
조 사장은 지금까지 ‘정기선 체제’에서 그룹 건설기계부문 리더로 중책을 맡아 왔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출범과 동시에 권오갑 HD현대그룹 회장과 초대 공동대표를 맡으면서 사장으로도 승진했다.
HD현대그룹 건설기계부문이 업황에 고전하는 반면 다른 주요 계열사의 실적은 역대급 호조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HD한국조선해양은 올해 영업이익만 1조3천억 원을 거둘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대 중반부터 쌓인 저가수주 물량을 털어내면서 2021년 1조3848억 원, 2022년 3556억 원에 이르렀던 영업손실을 지난해 2823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돌린 뒤 이어진 역대급 개선세다.
HD한국조선해양은 지난해 223억2천만 달러(약 31조 원)를 수주해 조선3사(HD한국조선해양·한화오션·삼성중공업) 가운데 유일하게 수주목표를 달성하는 등 78조5109억 원, 3.5년어치 일감을 확보할 만큼 향후 실적 기반도 탄탄하다.
정 부회장이 일찍이 HD한국조선해양 대표이사를 맡은 뒤에는 미래 먹거리로 꼽히는 친환경 선박 분야에서도 한걸음 앞서나간다는 평가를 받는다.
▲ 정기선 HD현대그룹 부회장이 2022년 1월5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2022' 현장에서 사장 시절 그룹의 미래비전인 '퓨처 빌더(Future Builder)'를 소개하고 있다. 앞서 사장으로 승진했던 정 부회장이 본격적으로 경영전면에 나선 첫 자리로 꼽힌다. < HD현대 >
에너지부문에서 HD현대오일뱅크는 다소 부진한 실적을 거두고 있지만 HD현대일렉트릭는 올해 단일 계열사로는 손꼽히는 규모인 연결기준 영업이익 7117억 원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일렉트릭도 2019년 말 그룹 사상 첫 외부출신 대표인 조석 사장 부임 이후 저가수주 물량을 취소하는 등 강도 높은 구조조정으로 2021년 적자고리를 끊어냈다. 이후 전력기기시장 초호황과 맞물려 시장의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대선 이후 내년 하반기부터 완만한 업황 개선이 예상되는 가운데 조 사장은 신시장으로 여겨지는 인도, 인도네시아, 브라질 등에서의 성과를 기반으로 미래를 도모할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HD현대건설기계는 3분기 인도에서 1042억 원, 브라질에서 579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각각 14%, 5% 증가한 것이다.
인도에서는 지속해서 발생하는 인프라 투자 수요, 브라질에서는 건설기계 라인업 확대를 통해 확보한 시장 지위 효과를 보고 있다. HD현대건설기계는 앞으로도 인도의 인프라 투자 확대 및 브라질의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이 제품 수요를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HD현대인프라코어의 3분기 신흥시장 및 국내 매출 합은 3701억 원으로 1년 전보다 2% 감소했다. 다만 인도네시아, 브라질, 아프리카 지역에서는 확실한 성장을 거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 갈팡질팡했던 인도네시아 신수도(누산타라) 이전사업을 놓고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이 2028년까지 완공을 목표로 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면서 업계에서는 인도네시아발 건설기계 수요가 본격화할 것이란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HD현대사이트솔루션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부터 향후 몇 년간은 건설기계 업황이 완만하게 우상향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며 “이에 앞서 신흥시장에서 지속적 판매 확대 노력을 펴 불확실한 시장 상황에서도 실적개선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2025년 3월로 HD현대사이트솔루션과 HD현대인프라코어 사내이사 임기가 끝난다.
1961년생인 조 사장은 3대 사업축의 정점에 있는 HD한국조선해양, HD현대오일뱅크, HD현대사이트솔루션 대표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고 오랜 경력을 지녔다. 사업 계열사들까지 합치면 조석 사장(1957년생)과 HD현대미포 대표를 거친 신현대 HD현대삼호 대표이사 사장(1959년생) 다음이다.
조 사장은 2010년 현대오일뱅크 재무부문장(상무), 2014년 현대중공업 최고재무책임자(CFO·전무), 2019년 한국조선해양 CFO(부사장) 등을 지내며 오랫동안 권오갑 회장과 호흡을 맞춰 그룹 내에서 단단한 입지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는다. 장상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