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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균형잡힌 정무감각, 청와대의 새 바람
백설희 기자 ssul20@businesspost.co.kr 2017-05-11 08:46: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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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임종석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일찌감치 선거캠프에 합류해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일정을 총괄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비서실장으로 임명돼 젊은 피로 청와대에 새바람을 불어넣으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1966년 4월24일 전라남도 장흥에서 태어나 한양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한양대학교 총학생회장을 맡았으며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3기 의장을 지냈다.

대표적인 '386세대' 운동권 출신 정치인이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3년 넘게 옥살이를 하기도 했다.

새천년민주당이 젊은 피 수혈을 위해 운동권 출신들을 당에 끌이면서 제도권 정치에 발을 디뎠다.

재선 국회의원을 지냈고 새천년민주당 대표 비서실장, 열린우리당 대변인, 대통합민주신당 원내수석부대표 등을 거쳤다.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아 박원순 서울시장과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균형잡힌 정무감각과 넓은 인맥, 친화적 성격 등이 강점으로 꼽힌다.

경영활동의 공과


△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
2017년 5월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임종석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임 실장 임명을 통해 청와대를 젊고 역동적이고 탈권위적인, 군림하지 않는 청와대로 만들 생각”이라며 “임 실장은 젊지만 당에서 쌓은 경험과 서울시에서 쌓은 행정경험을 통해 안정감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말했다.

임종석은 문 대통령의 무조건적인 ‘예스맨’이 되지 않고 국민의 의견에 귀기울이며 이를 대통령에게 잘 전달하는 비서실장이 되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 문재인 선거캠프에 영입
임종석은 2016년 9월에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의 선거운동 캠프에 영입됐다. 문 대통령이 직접 여러 번 권하는 등 영입하기 위해 공을 많이 들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종석은 친문이 아닌 비문계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문 후보는 통합정치를 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캠프가 친문세력으로만 채워지는 것을 원치 않아 비문 인사들을 영입하기 위해 애를 썼다.

임종석은 원만한 성격으로 여야를 가리지 않는 넓은 인맥을 보유하고 있어 새 정부를 구상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됐다.

△ 박원순과 인연
임종석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람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그는 2011년 보궐선거 승리 이후 박 시장이 민주당으로 입당하는 과정에서 가교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박 시장은 임종석이 삼호저축은행 사건과 관련해 대법원의 무죄선고를 받은 2014년 3월27일 전화를 걸어 그동안의 마음고생을 위로하며 서울시장 재선을 위해 캠프에 합류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시장이 2014년 6월재선에 성공한 뒤 임종석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에 임명됐다.
[Who Is ?]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임종석 청와대비서실장이 2017년 5월 10일 오후 청와대 본관 집무실에서 '일자리위원회 설치 및 운영방안' 등에 관해 이야기 하고 있다.

△ 용산 화상경마장 분쟁조정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고 있던 2014년 7월 마사회와 주민 간 갈등이 빚어지고 있는 용산 마권장외발매소(화상경마장) 분쟁 조정에 나섰다.

마사회는 용산역 인근에 있는 화상경마장을 용산 전자상가 근처로 확장·이전할 예정이었으나 주민들이 반대하자 개장시기를 미뤄오다 2014년 6월28일 시범운영을 했다.

주민들과 시민단체는 화상경마장 인근 지역에 주택가가 밀집해 있고 원효초등학교, 성심여고 등 학교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화상경마장 개장을 반대했다.

임종석은 화상경마장 입점 저지 주민대책위원회 농성장을 찾아 대표들과 면담하고 참여연대 등 화상경마장 추방 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관계자와 성심여고 교장 등도 만나 의견을 수렴했다. 이후 마사회 영업본부장과 용산지사장 등을 만나 갈등 해결책을 논의했다.

임종석은 이후 국민 대통합위원회 한광옥 위원장을 만나 용산 화상경마장 확장이전에 대한 서울시의 반대 입장을 전달했다.

△ 서울시청앞 세월호 유가족 농성천막 지원
한 보수단체는 서울시가 세월호 유가족 농성을 위해 광화문광장에 천막을 설치해줬다며 박원순 서울시장과 공무원 3명을 직무유기 혐의로 2014년 8월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임종석도 이와 관련해 참고인 신분으로 소환돼 조사를 받았다.

임종석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맡고 있던 2014년 광화문광장 한데에 나와 있는 유족의 건강과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서울시 차원에서 천막을 치고 의료와 물자를 지원하도록 지시한뒤 박원순 시장에게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 개성공단 지원법 발의
임종석은 17대 국회의원이던 2007년 3월 김근태, 송영길 의원 등 여야 50명의 서명을 받아 ‘개성공업지구의 지원에 관한 법률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 법안에는 개성공업지구지원법은 공단입주 기업이 중소기업 구조고도화 자금 등 각종 자금을 국내 중소기업에 준하는 수준으로 융자받을 수 있도록 하고 남북협력기금의 직접 대출도 가능하게 하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 공항입국장 면세점 설치 추진
임종석은 2005년 6월 해외여행객들의 국내공항 면세점 이용을 권장하기 위해 공항 입국장에도 면세점을 설치하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을 여야 의원 43명의 서명을 받아 국회에 제출했다.

임종석은 “입국장 면세점이 설치되면 입국 여행객들의 편의 증진은 물론 주로 외국 출국장에서 이뤄지던 구매행위를 국내에서 할 수 있도록 유도해 외화 유출을 막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이자제한법 발의
제 16대 국회의원이던 2001년 3월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 등 여야 의원 46명과 함께 시중금리를 연 40% 미만으로 제한하는 내용의 ‘이자제한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연 40%까지 이자는 법적보호를 해주되 그 이상은 무효로 하자는 것으로 신용불량자의 폭발적 증가로 악덕 사채업자들에 의한 고리채의 피해가 심각해짐에 따라 그 피해를 최소화하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 제도권 정치에서 파란
임종석은 2000년 새천년민주당이 당에 새 바람을 불어넣기 위해 운동권 출신 젊은 인사들을 영입하면서 제도권 정치에 입문했다.


임종석은 제도권 정치에 입문하자마자 2000년 치러진 16대 총선에서 서울 성동구에 입후보해 한나라당의 4선 이세기 의원을 꺾는 파란을 일으켰다. 당시 34세로 최연소 의원 당선 기록을 세웠다.

△ ‘평양축전참가 사건’ 주도
1989년 6월에 당시 외국어대학교 학생이던 임수경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전대협 대표 자격으로 제3국을 통해 무단으로 북한에 들어가 ‘제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뒤 판문점을 통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노태우 정부가 평양축전 참가를 허가할 것처럼 하다가 태도를 바꿔 불허하자 극비리에 제 3국을 통해 북한으로 넘어간 것이다.

당시 전대협 의장을 맡고 있던 임종석이 이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의 지명수배가 내려졌고 결국 붙잡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5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임종석은 3년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고 풀려났다. 임수경 전 의원도 3년5개월 동안 복역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임종석은 새로운 청와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막중한 책임을 안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젊은 피’ 임종석을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하면서 청와대를 이전보다 젊고, 역동적이고, 탈 권위적인 곳으로 만들어 줄 것으로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임종석은 특히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에 힘을 쏟고 필요하다면 직언도 서슴치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곱지 않은 일부 시각을 극복하는 것도 과제다.

제 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임종석의 과거 친북활동 전력을 문제 삼아 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 임명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과거 행적과 관련해 따라붙는 논란들을 제대로 잠재우지 못할 경우 비서실장으로서 문 대통령을 보좌하는 데도 지장이 생겨날 수밖에 없다.

[Who Is ?]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 임종석 청와대비서실장이 전대협 의장이던 시절 경찰에 연행되고 있는 모습.

◆ 평가

임종석은 친화력과 조정 능력이 뛰어나 인맥이 넓은 것으로 유명하다.

19대 대선에서도 문재인 캠프에서 인사영입에 큰 역할을 도맡아 문재인 대통령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국회의원 시절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서만 6년을 활동하면서 외교분야에서도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외교안보실장과 호흡을 맞춰 국제관계에 유연히 대처하는 데 능력을 발휘하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임종석은 '개성공단 지원법'을 제정하는 등 남북관계 개선에도 관심이 많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를 제대로 뒷받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받고 있다.

학생운동을 하던 당시 수려한 외모로도 유명했다. 여학생들 사이에서 특히 인기가 많았다.

평양축전 사건으로 경찰의 수배를 받을 때 신출귀몰하게 수사망을 빠져나간다고 해서 ‘임길동’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취미로 바둑과 축구를 즐긴다.

사건사고
경력/학력/가족
◆ 경력

1989년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3기 의장을 지냈다.

1995년 5월부터 1997년5월까지 청년정보문화센터 소장, 1999년부터 2000년까지 푸른정치2000 공동대표를 맡았다.

2000년 5월부터 2004년 5월까지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청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2000년에는
새천년민주당 청년위원장도 맡았다.

2002년 제16대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후보 선거대책위원회 국민참여운동본부 사무총장을 맡았고 2003년에는 열린우리당 원내부대표를 지냈다.

2004년 6월부터 2008년 5월까지 제17대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5월부터 2005년 5월까지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2005년 11월부터 2007년 5월까지 열린우리당 간사를, 2007년 1월에 열린우리당 개헌추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2006년 8월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2012년 민주통합당 사무총장을 지냈고 2014년 6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서울특별시 정무부시장을 맡았다.

2017년 5월10일 청와대 비서실장에 임명됐다.

◆ 학력

한양대학교 무기재료공학과를 졸업했다.

◆ 가족관계

월간 환경운동 기자였던 김소희씨와 1996년 결혼해 슬하에 딸 임동아씨를 두고 있다.
[Who Is ?]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
▲ 2000년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왼쪽)과 부인 김소희씨, 딸 임동아씨.

◆ 상훈

2000년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2001년 의정한국을 빛낸 인물상,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 2002년 제4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을 수상했다.

2003년 제5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 2004년 제6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2005년 최고 의정활동 의원,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됐으며 제7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을 수상했다.

2006년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으로 뽑혔고 제8회 백봉 라용균 선생 기념사업회 백봉신사상을 받았다.

2007년 NGO모니터단 국정감사 우수의원에 선정됐다.

◆ 기타

실형을 받아 복역을 하게 되면서 병역이 면제됐다.

어록


“대통령을 성실하게 모시되 예스맨이 되지는 않도록 하겠다.” “국민 목소리를 잘 듣고 대통령에게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국회에서 항상 소통하고 함께 조정하고 타협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국회, 특히 야당과는 더 잘 소통하도록 노력하겠다.” (2017/05/10, 청와대 춘추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하고 난 뒤 질의응답 시간에)

“남북경제협력은 전 세계에서 오직 우리만 세울 수 있는 경제전략이다. 남북이 협력하는 새로운 길, 우리만의 성장엔진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가치 7천조에 이르는 지하자원, 우수한 노동력이 거기 있다. 인구 2억에 달하는 중국 동북3성과 러시아 극동지역이 대한민국 청년들에게 손짓하고 있다. 잘살기 위한 희망, 청년들의 가슴을 뛰게 할 희망도 바로 거기에 있다."

“내년에 정권교체라는 공통의 목표가 있고 정권교체는 야권의 목표라기보다는 국민적 목표다. 현 야권의 조건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 뭔지 고민했다. 문 전 대표가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것 같고 조직부터 사람 구성에서도 변화를 모색하는 것 같고 해서 (대선 국면) 처음부터 같이 했으면 하는 것 같다. (문 전 대표와) 그정도 얘기를 했다. 언제부터 어떤 역할을 맡을 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2016/10/14, 문재인 캠프 합류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 뉴시스와 전화 통화에서)

"경제분야에서 남북이 통일을 이루면 우리 내수 규모는 단번에 8천만이 된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북한에 베이비부머가 생기면 저출산 문제도 해소될 수 있다. 한반도 단일 경제권 형성 시너지 효과를 보면 중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이 약 1%가 높아진다. 2050년 통일 한국은 1인당 GDP 7만 달러 시대가 된다. 실질 GDP 약 5조3천억을 달성하고 세계 12위권의 경제규모를 전망한다.“ (2016/03/12, 한강타임즈와 인터뷰에서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우리경제가 좋아지느냐는 질문에)

“지금의 야권분열 구도에서는 새누리당이 지역구 180석 이상을 확보해 개헌선을 넘어설 수 있다. 이 엄중한 현실을 무시하고 안철수 대표가 ‘새정치’와 ‘공정성장론’을 얘기하는 것은 위선이다. 경제실정과 안보위기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국민들은 간절하게 정권교체를 원하고 있다. 정권교체는 이번 총선에서 야권이 연대해 여야간 힘의 균형을 맞추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2016/03/07,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총선에서 야권연대를 거부한 것을 비판하며)

“한나라당이 변화의 속도를 못따라가고 있다. 한나라당도 원론적으로는 (모바일 투표를) 반대하지 않고 있지만 이번 선거가 아닌 다음 선거부터 하자고한다. 한나라당이 젊은 층이 정치에 참여하고 요구하는 속도를 여전히 못따라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2012/01/30, SBS라디오 서두원의 시사초점에 출연해 4·11 총선 경선에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는 방안을한나라당이 거부하고 있는 것을 두고)

“믿어주신 한명숙 대표와 지도부에 감사드린다. 깨끗하고 투명한 정당, 국민과 소통하는 정당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 중대한 시기에 사무총장 이라는 책임을 맡아 어깨가 무겁다. 신속하게 당을 안정시키고 한발 앞선 준비로 총선승리에 만전을 기하겠다.” (2012/01/18, 부산에서 개최된 민주통합당 최고위원회에서 신임 사무총장에 임명된 뒤 소감을 밝히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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