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방문객들이 2023년 5월30일 프랑스 빌리-베르클로와 두브랭 지역에 위치한 ACC 배터리 공장 개소식에 참석해 설비를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의 역내 배터리 제조 역량이 현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 자급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온 및 삼성SDI 등 한국 배터리 3사는 유럽에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며 현지 시장에서 높은 비중을 보이지만 수요 대응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에 K배터리 3사가 증설에 나서야 할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26일 ESS뉴스와 로이터를 비롯한 외신을 종합하면 유럽 내 배터리 생산능력이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수요를 당분간 따라가지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산하 연구소인 공동연구센터(JRC)는 ‘EU의 배터리 기술’ 보고서를 통해 2030년까지도 EU의 자체 배터리 공급 비중이 21.4%에 그칠 것이라고 바라봤다.
EU는 배터리 제조 산업을 강화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했지만 중국이나 미국 등과 비교해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때 EU는 과거 스웨덴 노스볼트와 같은 지역 내 배터리 기업을 적극 육성했다. 그러나 노스볼트는 낮은 수율과 품질 문제를 이기지 못하고 2024년 11월 파산 보호를 신청했다.
EU산 배터리 제조 원가가 아시아산보다 최대 50% 더 비싸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에너지 비용이나 인건비 등에서도 유럽이 아시아에 불리한 것으로 분석된다.
또한 EU가 배터리 핵심 구성요소인 양극재와 음극재의 각각 4.9%와 0.1%만 자체 생산하고 있다. 이처럼 공급망의 외부 의존도가 높아 원가 격차가 불가피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상황이 4년 뒤인 2030년에도 크게 개선되기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 것이다.
블룸버그는 “유럽 내 배터리 설치 용량은 지난해 50GWh(기가와트시)에서 올해 75GWh로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SS뉴스는 “유럽 지역 내 생산능력이 증가했지만 늘어나는 미래 수요를 충당하긴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며 배터리 자급 체제를 강화해야 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 ▲ 대형 기중기가 2026년 4월23일 폴란드 국영 전력공사 PGE의 자르노비에츠 프로젝트 부지에 LG에너지솔루션의 ESS용 배터리를 설치하고 있다. <연합뉴스> |
현재 유럽 내 배터리 생산의 상당 부분은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 기업이 담당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폴란드에 86GWh(기가와트시) 용량의 배터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SK온과 삼성SDI도 헝가리에 각각 47.5GWh와 40GWh 생산 용량을 갖춘 배터리 공장을 뒀다.
EU의 배터리 기술 보고서에 따르면 K배터리 3사를 비롯한 아시아 기업이 유럽 내 생산 용량의 80% 이상을 점유한다. 그러나 이들 공장만으로는 유럽 내 배터리 수요를 감당하기 역부족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EU는 2024년 165억 유로(약 28조5730억 원) 규모의 배터리를 수입했다. 이 가운데 85%는 중국산이었다.
유럽 내 배터리 수요는 친환경 정책 목표와 지정학 변수 등 요인으로 최근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이란 전쟁으로 배터리를 포함한 가정용 태양광 시스템 수요가 증가했다.
유럽자동차산업협회(ACEA) 또한 올해 1분기 EU 완성차 시장에서 전기차 점유율이 지난해보다 4.2%포인트 오른 19.4%로 집계했다.
이에 EU가 증가하는 배터리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자체 산업 기반을 더욱 다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U가 일명 ‘소금 배터리’라고 불리는 나트륨 배터리나 리튬-황 배터리 등 차세대 기술에서 입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시각도 제시됐다.
나트륨이나 리튬-황 배터리 모두 가격 경쟁력이 높아 중저가 전기차나 ESS 시장에서 3~5년 내로 점유율을 늘릴 잠재력을 갖춘 것으로 분석된다.
결국 K배터리 3사가 유럽 전기차와 ESS 수요 증가세에 맞춰 공급에 대응하고 있지만 현지에서는 차세대 기술을 중심으로 자급체제 구축 목소리가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배터리 점유율 세계 1위인 중국 CATL은 유럽 수요가 늘어나자 독일에서 생산을 시작했고 헝가리에서도 대규모 생산 공장을 구축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지난 3월 발표한 ‘산업 가속화법(IAA)’ 초안을 통해 중국 중심의 투자 확대 경로를 제한하려는 내용을 담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IAA를 통해 유럽연합 내 산업생태계와 협업을 강조하며 중국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데 따른 자국 핵심 공급망 생태계의 불확실성을 낮추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한국은 EU와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중국과 달리 IAA에 따른 수혜를 누릴 수 있는 위치를 점했다.
유럽연합 당국을 중심으로 한국 배터리 3사의 증설 필요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유럽연합과 한국은 최근 가진 무역공동위원회를 통해 자동차와 배터리를 비롯한 주요 공급망 경제협력을 강화하자는데 뜻을 모았다.
마로시 셰프초비치 유럽연합 무역·경제안보 담당 집행위원은 이번 회담에서 “한국과 EU의 자유무역협정을 통한 경제협력은 성공적 사례”라며 “파트너 사이에 핵심 광물부터 핵심 기술에 이르기까지 경제 안보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이에 현지 기업과 협업을 통해 한국이 강점을 가진 고가의 삼원계 배터리 외에도 ESS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 리튬인산철(LFP) 등 보급형 배터리 증설에 나설 가능성이 고개를 든다.
유럽의회와 브뤼겔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배터리 역내 생산 확대가 EU의 전략적 목표인데 한국 기업들의 현지 생산능력 및 투자 경험은 이러한 EU 전략과 자연스럽게 맞물릴 수 있다"고 바라봤다. 이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