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영현 삼성전자 DS부문장 대표이사 부회장이 HBM4의 '조기 대량 생산'으로 HBM 시장 1위 탈환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나노 바나나 프로> |
[비즈니스포스트] 삼성전자가 엔비디아·AMD 등 빅테크의 6세대 고대역폭 메모리(HBM4) 주문 쇄도에 전례 없는 '공급 부족'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전영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 대표이사 부회장은 건설 중인 평택캠퍼스 4공장(P4)의 가동 시점을 올 4분기로 앞당기며, HBM4 기술 우위를 넘어 대량 생산으로 HBM4 시장 장악에 본격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초격차 기술과 압도적 생산능력'으로 과거 범용 메모리반도체 시장을 장악했던 삼성전자의 승리 공식을 재현해 HBM 시장에서도 1위 자리를 탈환하기 위한 전략에 돌입한 것으로 풀이된다.
30일 반도체 시장조사업체 세미애널리시스에 따르면 엔비디아가 차세대 그래픽처리장치(GPU) '루빈'에 탑재할 HBM4 수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올해 루빈 출하량이 당초 올해 예상했던 170만 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를 제외한 메모리 공급업체들의 HBM4가 엔비디아의 성능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하면서, 루빈 출시 일정이 늦춰질 가능성도 제기된다.
대만 공상시보는 "일부 메모리 공급사가 베이스다이를 재설계해 HBM4 출하가 지연될 것"이라며 "엔비디아가 예상보다 부진한 HBM4 공급으로 인해 루빈 양산 물량을 축소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HBM4를 요청하는 고객사는 늘어나고 있다.
AMD는 리사 수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8일 직접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 방문, 차세대 AI 가속기 '인스팅트 MI455X'에 적용할 HBM4를 확보했다. 오픈AI도 올해 하반기 출시하는 자체 AI 칩 '타이탄'에 삼성전자 HBM4를 탑재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영현 부회장의 고민이 지난해 HBM4 품질 테스트 통과에서, 이제는 늘어난 주문량을 어떻게 감당하느냐로 옮겨간 것이다.
이에 따라 전 부회장은 평택캠퍼스 4공장(P4) 건설을 서두르며, HBM4 생산량을 확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삼성전자는 당초 2027년 1분기로 예정했던 평택캠퍼스 4공장 준공 시점도 2026년 4분기로 앞당겼다.
전 부회장은 당초 파운드리(위탁생산) 생산라인으로 계획했던 P4 공장의 상당 부분을 HBM4 제작을 위한 1c D램(10나노급 6세대) 생산라인으로 전환해, HBM4 생산량 확대에 집중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P4 생산라인에서는 최대 월 12만 장 수준의 웨이퍼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황상준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개발담당 부사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각) 엔비디아 연례 콘퍼런스 'GTC 2026'에서 "가파르게 램프업(증산)을 하고 있고 크게 문제는 없다"며 "올해 HBM 공급을 전년 대비 약 3배 확대하고, 전체 HBM 생산량에서 HBM4를 절반 이상 가져가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 ▲ 삼성전자 HBM4 고대역폭 메모리 홍보용 이미지. <삼성전자> |
삼성전자 경영진의 이 같은 자신감은 메모리, 파운드리, 첨단 패키징을 한 번에 제공하는 '반도체 턴키(일괄) 솔루션'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HBM4부터는 베이스 다이에 파운드리 공정이 적용되는데, 삼성전자는 자체 4나노 공정을 직접 활용해 성능 최적화와 물량 확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평택캠퍼스는 메모리와 파운드리 생산라인을 모두 갖추고 있다.
반면 SK하이닉스는 HBM4 베이스 다이에 대만 TSMC의 12나노 공정을 활용하고 있으며, 미국 마이크론은 HBM4 베이스 다이도 기존과 마찬가지로 D램 공정으로 제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생산능력 확대를 위한 자금 측면에서도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
2025년 말 기준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25조8471억 원으로, SK하이닉스(34조9423억 원), 마이크론(139억 달러, 약 21조 원)을 크게 웃돈다.
올해 설비투자와 연구개발(R&D)에 투입하는 금액도 지난해보다 20조 원 가까이 증가한 11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압도적 생산능력과 자금동원력을 활용해 메모리 점유율 1위에 올랐던 삼성전자의 성공 공식을 다시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전 부회장은 20나노와 18나노급 D램 미세공정 개발에 기여한 삼성전자 반도체 신화의 주역 가운데 한 명으로, '압도적 물량으로 시장을 지배하는' 메모리반도체 전략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경영자이기도 하다.
삼성전자가 최근 몇 년 동안 첨단 D램 공정과 HBM 기술력을 끌어올리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검증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대량 생산에 나서 HBM 점유율을 단숨에 끌어올리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구글의 터보퀀트와 엔비디아의 KVTC(Key Value Token Compression) 신기술도 데이터를 GPU로 불러올 때 압축을 해제하는 과정에서 HBM의 추가 연산이 필요하기 때문에 HBM 수요에 오히려 긍정적"이라며 "HBM4의 기술력 우위를 점한 삼성전자에게는 점유율 확대의 기회 요인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나병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