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유럽연합이 미국 빅테크 기업과 관련해 추진되던 네트워크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해 내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트럼프 정부의 무역보복 등 압박에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는 한국의 디지털 규제 법안에도 압박을 더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
[비즈니스포스트] 유럽연합(EU)이 미국 빅테크 기업을 상대로 한 규제 수위를 당초 계획보다 대폭 낮추는 방안을 저울질하고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가 이를 빌미로 삼아 온라인 플랫폼 기업에 규제 강화를 추진하는 한국 정부와 국회에 압박을 더할 명분을 키울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든다.
로이터는 9일 관계자들의 말을 인용해 “구글과 메타, 넷플릭스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이 유럽의 디지털 규제 추진 과정에서 엄격한 조치에 직면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유럽연합은 최근 수 년에 걸쳐 디지털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규제를 꾸준히 강화해 왔다. 주로 영향력이 큰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표적으로 지목됐다.
트럼프 정부는 이러한 행위가 미국 기업을 겨냥한 차별적 공세라고 목소리를 높이며 이는 무역 보복과 같은 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압박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유럽연합은 결국 1월 중 발표되는 디지털네트워크법(DNA)에 망 사용료 부과 등 이미 논의되고 있던 강력한 규제를 포함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빅테크 기업들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의무를 부여하는 대신 자발적으로 새 규제에 협력해야 한다는 권고만 내리는 수준에 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럽 통신 사업자들은 그동안 미국 빅테크 기업에 강경한 규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활발히 로비 활동을 벌여 왔다.
그러나 유럽연합이 결국 미국 정부의 위협에 백기를 들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러한 기조는 유럽연합의 디지털시장법(DMA)을 비롯해 점차 강화되고 있는 다른 빅테크 대상 규제 방침에도 유사하게 반영될 가능성이 있다.
대형 플랫폼 사업자들의 시장 지배력 확대를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디지털시장법은 본격적으로 시행 단계에 접어들어 미국 빅테크 업체들에 막대한 과징금 부과를 위협하고 있다.
| ▲ 벨기에 브뤼셀에 위치한 유럽연합 본부. <연합뉴스> |
디지털 서비스 이용자 보호를 주요 목적으로 하는 유럽의 디지털서비스법도 전면 적용을 추진하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결국 트럼프 정부가 유럽연합에서 이러한 디지털 서비스 규제를 주도한 주요 인물에 최근 비자 발급을 제한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이면서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테레사 리베라 EU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등 유럽연합 측 인사들은 미국의 압박에도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단호한 규제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디지털네트워크법이 당초 논의보다 대폭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다른 법안들도 미국 빅테크 기업들에 엄격하게 적용되기는 어려워질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유럽연합은 10년 가까이 디지털 규제 강화에 강경한 태도를 고수해 왔다”며 “그러나 최근에는 내부에서도 회의적 의견이 고개를 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정부가 결국 유럽연합을 겨냥한 규제 완화 압박에 ‘판정승’을 거둔다면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한국을 향한 압박도 한층 더 강력해질 가능성이 충분하다.
한국에서 허위 및 조작정보 근절을 위해 플랫폼 사업자의 역할과 책임을 강화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최근 여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미국 국무부는 최근 이와 관련해 “미국 기업들의 사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표현의 자유를 빼앗을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는 성명을 전했다.
플랫폼 업체의 독과점 행위를 방지하는 온라인 플랫폼법 추진 계획도 도마 위에 올랐다.
미국 하원은 최근 한 보고서에 해당 법안이 미국 업체들에는 불리한 반면 중국 경쟁사들에는 유리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한국과 미국은 이미 한미 정상회담 이후 발표한 공동 팩트시트에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과 정책이 미국 기업을 차별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을 초래하지 않도록 보장한다”는 문구를 담았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연합까지 디지털 플랫폼 규제 완화 조짐을 보이고 있는 만큼 한국 정부와 의회도 미국 빅테크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규제 강화에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일 수밖에 없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해 전 세계를 대상으로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할 때부터 미국 IT기업을 겨냥한 금전적 불이익이나 규제가 발견된다면 해당 국가에 추가 관세를 매길 수 있다고 경고해 왔다.
미국 씽크탱크 정보통신혁신재단(ITIF)도 최근 보고서에서 “한국의 플랫폼 규제는 자국의 대형 IT기업과 미국 빅테크의 사업을 모두 제약할 것”이라며 “중국 기업들이 빈 자리를 채우며 성장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용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