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기재부·금융위 조직 개편안 토론회 : 개편인가 개악인가?' 토론회 참석자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금융감독 기능을 쪼개면 두 기관의 책임회피, 업무중복이 일어날 게 불 보듯 뻔하다. 오히려 힘없는 금융소비자들만 더 힘들어질 수 있다.”
17일 오전 10시40분 국회 본관에서 열린 ‘기재부·금융위 조직개편안 긴급 토론회’에서 오창화 금융감독원 팀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 팀장은 금감원 노동조합이나 비상대책위원회 소속이 아니다. 이날 토론회에 금감원 직원의 한 사람으로 나왔다.
오 팀장은 일찍이 쌍봉형 금융감독체계를 도입한 호주를 방문해 실무 현장의 업무조정 실패, 정보교류 부족에 따른 부작용 사례를 직접 보고 듣고 왔다.
호주는 금융감독부분에서 건전성감독기구와 영업행위감독기구를 두고 있다. 그런데 두 기관 사이 불협화음과 정보 누락이 금융사의 횡령사고, 상장기업의 회계 부정 등 감독 실패로 이어지는 사례가 계속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금감원에서 금융소비자보호처를 분리해 독립된 금융소비자보호원을 설립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금감원은 건전성 감독을 맡고 금융소비자보호원이 금융사 영업행위 감독을 담당하는 쌍봉형 모델이다.
이렇게 두 개로 나눠진 금융감독 기관 위에는 다시 금융 산업정책을 떼어내고 감독정책 기능만 남긴 금융감독위원회를 둔다.
오 팀장은 “이번 개편은 건전성과 영업행위 감독을 한 곳에서 하면 이해상충, 충돌 문제가 있다는 데서 시작됐지만 현장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은 다르다”며 “건전성과 영업행위 감독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고 보완 관계에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의 개편안이 일단 금융감독을 쪼개는 데만 집중하고 업무조정 등 핵심 문제는 간과하고 있는 점도 짚었다.
또 실제 금감원 내부에서 건전성 감독, 영업행위 감독 업무를 분리도 해봤지만 직원들 사이 중복 검사와 비효율에 관한 불만과 갈등만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 오창화 금융감독원 팀장이 17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에서 열린 '기재부·금융위 조직 개편안 토론회 : 개편인가 개악인가?' 토론회에서 쌍봉형 금융감독모델에 관한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오 팀장은 “지금 정부의 금융감독체계 개편은 비용부담을 비롯한 여러 문제에 관해 어떤 구체적 설계도 없다”며 “일단 분리해보고 부작용이 나면 그 때 수정하면 된다, 비용은 금융사에 청구하면 된다는 식이다”고 지적했다.
오 팀장은 “이런 방식의 조직개편은 국민에 대한 배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 팀장 외에도 이창욱 NH투자증권 노조위원장, 오상훈 삼성화재 노조위원장 등 피검기관 관계자가 토론회 발표자로 나서 목소리를 냈다.
야당과 조직개편의 대상인 금융당국, 금융기관 등은 정부의 이번 개편안을 두고 직접적 이해관계자를 모두 ‘패스’한 독재, 독단적 졸속 개편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감원은 물론 피검기관 관계자들이 공개적으로 의견과 우려를 내놓는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이창욱 NH투자증권 노조위원장은 이날 네 번째 발표자로 나서 “정부가 내놓은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의 가장 큰 화두는 금융소비자를 더욱 강하게 보호하겠다는 명분인 것 같다”며 “하지만 개편을 통해 금융소비자를 어떻게, 누구에게서, 무엇으로부터 보호할 것인가에 관한 답변을 주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특히 금감원 분리 등에 관한 부분을 볼 때 과연 금융소비자 보호에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용할 수 있을지 우려가 많이 된다”며 “굉장히 모호한 정책을 가지고 막연한 내용을 현장에 강요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오상훈 삼성화재 노조위원장은 피검기관의 관계자로 공개석상에 나와 의견을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는 말로 발표를 시작했다.
오 위원장은 “이 자리에 나오기 쉽지 않았지만 그래도 용기를 낸 이유는 금융기관에서 일하는 직원들 이야기가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라며 “금융소비자 보호를 말하지만 47만 보험 설계사를 비롯해 조직개편 속에서 영향을 받을 직원들이 있다는 점을 짚고 싶다”고 말했다.
오 팀장부터 NH투자증권, 삼성화재 등 노조위원장은 모두 한결 같이 이번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이 실무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지에 관한 부분을 빼놓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우선 조직개편을 하려면 감독기구를 쪼갠 뒤 업무와 권한, 기능을 어떻게 조정할지에 관한 구상까지 있어야 하는데 이 부분은 쏙 빠져 있다는 것이다.
▲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국민의힘 정책위와 정무위, 기재위가 공동 주최한 '기재부·금융위 조직 개편안 토론회 : 개편인가 개악인가?'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국민의힘에서도 정부와 여당이 조직개편안을 발표하고 추진하는 과정에서 의견수렴 자체가 없었다는 점을 비판했다.
윤한홍 정무위원장은 “이번 개편안에 관해 야당은 물론 이해관계자 어느 누구에게도 논의를 하고 의견을 듣고 협의를 하는 과정이 없었다”며 “대한민국 경제를 받치는 뿌리인 금융조직 개편을 이렇게 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 위원장은 “그렇다 보니 왜 이런 조직개편을 하느냐에 관한 답변이 전혀 없다”며 “목적에 관한 공감이 없는 조직개편은 비판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수영 기재위 간사도 “금융조직 개편은 정권뿐 아니라 국가 경제와 정책 방향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충분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며 “25일 국회 통과를 못 박아두고 다수당의 힘으로 통과시키겠다는 것은 독재”라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는 국민의힘 정책위원회, 기획재정위원회, 정무위원회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국민의힘과 학계 등에서는 김도읍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윤한홍 국회 정무위원장, 박수영 국회 기재위 간사, 구민교 서울대 교수, 김상봉 한성대 교수 등이 참석했다. 이밖에 금감원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등 관계자들도 토론회를 참관했다. 박혜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