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대통령이 올해를 ‘산재 사망 제로 원년’으로 삼아 건설 현장 안전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주택 공급과 관련한 딜레마와 맞닥뜨렸다.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잘못된 건설업계의 관행을 개선하는데 분기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안전 규제 강화가 뼈대를 이루면서 자칫 주택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왼쪽 두 번째)이 지난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16일 시공능력평가 상위 건설사 10곳의 202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종합하면 지난해 모든 곳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많으면 4명이 목숨을 잃었고 사망자는 대부분 협력사 임직원이었다.
올해도 이 같은 흐름이 이어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7월말 포스코이앤씨 사고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며 강하게 질책했지만 이후에도 GS건설과 롯데건설, 대우건설 등 국내 대표 건설사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이어졌다.
정부는 결국 올해를 ‘산재 사망 제로’ 원년으로 삼겠다며 전날 노동안전 종합대책을 내놓고 칼을 빼들었다.
핵심으로는 연간 3명 이상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법인 과징금 신설 등 경제적 제재를 부과하는 내용이 꼽힌다. 정부는 그동안 논의 차원에 머물렀던 산재 과징금을 명문화하며 영업이익 최대 5%, 영업손실 법인에는 최소 30억 원을 매기는 방안을 예시로 제시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은 “충분히 예방가능한 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절대로 용인하지 않고 안전투자가 더 이익이 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며 “올해를 ‘산재왕국이란 오래된 오명을 벗는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그동안 산재 사망사고에 고강도 비판을 이어간 점이 노동부 정책에 반영된 셈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 11일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도 ‘조금만 신경 썼으면 안 죽었을 사고가 많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다만 건설현장의 산재 사망사고가 적정 공사기간과 비용, 원청과 거듭된 하청 구조에 따른 뿌리깊은 문제인 만큼 단기적으로는 오히려 주택 공급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시각이 나온다.
정부가 당장 9·7대책에서 제시한 2030년까지 수도권에 135만 호 착공(연간 27만 호) 목표 달성에는 건설사의 적극성이 중요한데 산재에 따른 제재로 투자가 줄어들 수 있다는 것이다.
신대현 키움증권 연구원은 “연간 27만 호 착공은 최근 10년 평균 25만8천 호를 웃도는 것으로 공공과 민간이 적극적 착공을 했을 때 가능한 수준”이라며 “건설사 영업정지 요건에 ‘연간 다수 사망’이 추가되면 공사 현장을 늘리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바라봤다.
신 연구원은 “고층인 아파트 건설 현장이나 변수가 많은 인프라 현장에서는 사고가 잦아 주택 공급과 인프라 확충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며 “건설사가 분양가에 모든 비용을 전가하지 못하면 건설 투자 확대가 힘들 수 있고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은 가운데 사업 위험 증가는 정부의 적극적 공급정책에도 가시성을 낮추는 요인이다”고 말했다.
포스코이앤씨와 대우건설 등이 잇따라 사망사고가 발생한 뒤 전국 현장 공사를 중단하면서 지역 사회와 야당을 중심으로 공급 위축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사후 규제에 치우쳐 또다른 피해를 낳을 수 있다는 목소리다.
김도읍 정책위의장은 “노동안전 종합대책은 사후 징벌적 규제에 치우친 대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과징금과 영업정지, 형사처벌 강화로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 부담만 키울 것이란 현장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 노동안전 종합대책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 관련 항목 및 추진 일정. 건설업 고용제한 단위를 '현장'에서 '사업주'로 변경한 것도 업계에서는 큰 변화로 바라보고 있다. <국토교통부>
노동안전 종합대책에 산재 발생시 건설사의 외국인 인력수급 제한이 담긴 점이 주택공급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제기된다. 노동부 대책에 따르면 외국인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면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이 3년 동안 제한된다.
국내 건설현장이 고령화된 가운데 외국인 노동자 의존도가 갈수록 커지는 만큼 건설사 관점에서 노동부 정책은 매우 강력한 조치가 될 수밖에 없다.
건설근로자공제회 통계에 따르면 6월에 하루 이상 근로내역이 있는 건설근로자(퇴직공제 피공제자)는 64만3474명으로 이 가운데 외국인은 17.6%(11만3856명)로 집계됐다. 내국인 평균 연령은 52.8세로 외국인(46.7세)보다 6살 가량 높았다.
노동계는 이번 노동부 대책에 대해 의지는 환영하나 실제 적용이 중요하다고 바라봤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등에도 영업정지 요청의 제재 근거는 마련돼 있지만 그동안 유명무실했다는 이유에서다.
민주노총은 전날 성명을 통해 “대책 성공을 위해서는 대통령·정부의 의지와 함께 ‘현장에 실물 작동하는 근본 대책’이 제시돼야 한다”며 “경제적 제재 확대 강화는 환영하나 또다시 사문화되지 않도록 기존 제도가 작동하지 않았던 원인파악과 대책이 병행돼야 한다”고 바라봤다.
건설업계는 결국 이번 대책 발표를 기점으로 구조 조정을 겪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박세라 신영증권 연구원은 “건설업은 수주 가뭄에 인건비 상승에 이어 안전관리 의무 강화까지 부담이 늘고 있다”며 “건설업 구조조정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대형사를 포함한 건설업 전반의 외형 감소는 불가피하며 건설사들로서는 진짜 경쟁력을 고민하는 시기가 될 것이다”고 전망했다.
이 대통령으로선 이번 노동부 대책이 건설업계에 중장기적으로는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오는 만큼 공급확대와 산재 예방 사이에서 정책의 균형점을 찾기 위해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강한 대책이 발표됐지만 ‘적정 공기와 적정 공사비’를 함께 다뤄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며 "안전 문제가 사회적 비용으로 자리잡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그때까지는 논란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바라봤다. 김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