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시절 'AI 100조 투자'를 통해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하고, 모든 국민이 AI를 활용하는 '모두의 AI'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또한 취임 뒤에는 공공부문의 마중물 구실을 강조하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 |
[비즈니스포스트]
이재명 대통령이 미래기획AI수석비서관(이하 AI수석) 자리를 신설해 하정우 네이버클라우드 AI혁신센터장을 임명한 데 이어 배경훈 LG AI연구원장과 한성숙 전 네이버 대표를 각각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로 내정했다.
발탁 인사란 평가가 나온다.
이들에겐 '진짜 성장' 임무가 주어졌다.
앞서 이 대통령은 대선 시절 'AI 100조 투자'를 통해 '세계 3대 AI' 강국으로 도약하고, 모든 국민이 AI를 활용하는 '모두의 AI' 시대를 열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통해 국가 기술력과 산업 경쟁력을 높여 새 성장 동력으로 삼고, 더불어 산업 발전과 일자리 창출 효과도 극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대통령실의 이들 인사에 대한 배경 설명을 종합하면, 현장에서 직접 해봤으니 무엇이 부족하고 필요한 지 잘 알테고, 잘 아니 부족한 것을 채우고 필요한 것을 끌어와 잘 이끌 것으로 믿고 맡겼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공부문의 마중물 구실도 강조하고 있다.
하 AI수석은 행정안전부 주최로 열린 전자정부의 날 기념식에서 축사를 하며 "미국, 영국, 중국 등 AI 선도국은 공공 AX(AI 전환)를 통해 AI 산업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며 "공공 AX는 국가 AX의 중요한 마중물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공공 AX가 관련 산업 육성에 기여하고, 행정서비스 패러다임을 AI에 기반하는 쪽으로 완전히 바꿀 뿐 아니라, AI 3대 강국 실현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특히 인공지능 책임관(CAIO)을 중심으로, 국민이 요청하기 전에 필요한 서비스를 맞춤형으로 제공하고 공무원의 일하는 방식을 전면 개선하는 등 AI 혁신정부 구현을 주도해 달라"고 당부했다.
기획재정부가 앞장선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기재부는
이재명 정부 인수위원회로 불리는 국정기획위원회에 업무보고를 하며 '경제·사회·기술 전반에 AI 기술을 활용하는 인공지능 대전환을 본격 추진하겠다'고 보고했다.
국가·정부기관 예산 배분 권한을 쥔 기재부가 나섰으니 공공부문 쪽 AI 수요 발굴에 가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인공지능 활용 수요가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가량 저출산·고령화와 관련해 인구구조의 변화상을 예측하고 대비책을 마련하거나, 기후변화 시대에 어떤 작물을 얼마나 재배해야 할 지 예측하고 근거자료를 만드는 일 등에 인공지능을 활용하면 비용 대비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이밖에 각 기관별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자체 업무 절차를 혁신하고 행정서비스의 질을 높일 수도 있다.
국내 인공지능 생태계 쪽에서 보면, 모두 새로운 사업 기회이자 시장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름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창업 붐이 일며 스타트업 생태계 활성화로 이어질 수도 있다.
조짐이 좋다. KT와 LG유플러스 등 통신사들이 미국 글로벌 빅테크들의 '앞잡이'를 자처하며 뒤로 숨겼던 자체 개발 AI 모델을 다시 앞세우고, 구글 등 미국 빅테크 업체 쪽의 '지지' 발언도 잇따르고 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국가정보화를 추진하며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경험도 있다.
이재명 정부가 '모두의 AI' 밑그림을 그리며 공공부문을 마중물로 삼는 등 전략의 출발 모습이 김대중 정부(국민의 정부)와 노무현 정부(참여정부) 시절 국가 성장 전략으로 '전자정부'와 '국가정보화'를 추진할 때와 너무나 비슷하다.
▲ 하정우 대통령실 AI미래기획수석이 25일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8회 전자정부의 날 행사에서 축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대중 대통령은 IMF 구제금융으로 풀죽은 나라 경제를 전자정부 추진을 통해 되살리는 구상을 하며 당시 '탱크주의'로 유명해진 배순훈 대우전자 사장을 과기정통부(당시는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했다. 후임에도 남궁석 삼성SDS 사장을 앉혔다.
이전 정부 때는 주로 군이나 관료 출신들을 임명했다.
이렇게 발탁된 장관들에게는 초고속인터넷 보급과 전자정부 구축을 통해 유비쿼터스 사회를 실현하라는 임무가 주어졌다.
뒤를 이은 노무현 대통령은 '미스터 반도체'로 불리던 진대제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사장을 과기정통부 장관으로 발탁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청와대를 방문한 자리에서 진 사장을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로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텔레비전 규격 등의 삼성전자 특혜 가능성, 후보자 본인의 미국 영주권 소지 및 예비역 의무 불이행, 자녀 미국 국적 등이 논란이 됐지만, 대통령이 직접 나서 "능력을 보고 발탁했다", "필요하면 외국인도 장관으로 영입할 수 있다"며 임명을 강행했다.
진 장관은 역대 과기정통부 장관 중 가장 오랜 기간 재임했다.
또한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에서는 앞서 가자'고 외치며 우리나라를 '정보화 강국' 'IT 강국'으로 만들라고 주문했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는 국가정보화를 행정업무 처리 절차를 혁신하고 행정서비스의 효율성을 높이는 동시에 국내 IT업체들에게 시장을 만들어주는 수단으로 적극 활용했다. 국내 IT 산업을 키워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고, IT분야를 중심으로 벤처기업 창업을 활성화하자는 취지였다.
이재명 정부의 표현을 빌리면, 공공부문 수요를 마중물 삼아 민간 쪽 투자를 일으키려고 했던 것이다.
대통령이 나서 정부·공공기관의 정보화 및 전자정부 추진을 독려했고, 대통령실(당시는 청와대 비서실)이 현황판까지 만들어 주요 기관들의 정보화 추진 실적을 챙기기까지 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이 국가 정보화 비전과 추진 필요성 등에 '확신'을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평가가 많았다.
초고속인터넷 이용료가 월 3만원으로 정해진 것도 당시였다.
기존 전화선을 이용하는(ADSL) 방식 초고속인터넷은 김영삼 정부 때 제2 시내전화 사업 허가를 받은 하나로텔레콤(지금은 SK브로드밴드)의 '야심작'이었다. 무엇보다 각 집마다 깔려있는 전화선을 활용하는 방식이라 빠른 대중화가 가능했다.
문제는 월 이용료였는데, 어느 날 갑자기 3만원으로 정해졌다고 알려져 다들 의아해했다.
김대중 대통령이 신윤식 당시 하나로텔레콤 사장으로부터 기존 전화선 이용 방식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에 대한 설명을 듣는 자리에서 "성능과 이용 편리성 모두 뛰어난데, 월 이용료가 너무 높게 책정돼 국민 부담이 커질까 걱정"이라며 "월 3만 원 정도면 국민 부담이 그리 크지는 않을 것 같은데 가능하겠냐"고 물어본 게 굳어졌다는 게 '정설'이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명 정부 AI 정책 당국자들이 앞으로 AI 서비스 이용료 등 새로운 서비스의 요금을 정할 때 '실용' 차원에서 참고하면 어떨까 싶다.
아울러, 공공부문을 마중물 삼아 산업을 키우고 시장을 만들 때 정치적으로 조심해야 하는 게 '죽 쒀서 뭐 줬다'는 뒷 평가와 함께 기존 업무 방식에 길들여진 공무원들의 저항인데, 다행히도 전자는 하정우 AI수석과 배경훈 과기정통부 장관 후보 등 '소버린(주권형) AI'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는 인사들을 발탁하는 것으로 상당부분 해소됐다.
문제는 공무원 설득인데, 전례로 볼 때 예산 배분 권한을 쥔 기재부가 앞장서는 것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렵다.
국가정보화 추진 당시 다른 부처와 정부기관의 전산화 추진을 설득하는 일에 관여했던 과기정통부 당국자가 후일 출입기자들에게 털어놓은 경험담에 따르면, 전산화 수요가 가장 큰 행정안전부 쪽을 설득하는 게 가장 힘들었다.
당시 행안부는 전산화 추진과 유지에 들 막대한 예산에 대한 걱정이 컸다고 한다. 민간 기업 출신 과기정통부 장관이 이 부분을 파고 들었다.
"전산화를 하면 인건비가 크게 준다고 설득했다. 지금은 주민등록등본 발급 신청이 오면, 동사무소 직원이 주민등록 서류 철 보관소로 가 해당 민원인 서류를 찾아 복사한 뒤 인지를 붙여 발급해줘야 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사람도 많이 필요하지만, 전산화를 하면 컴퓨터에서 민원인 주민번호를 입력해 프린터하는 것으로 바로 발급이 가능해진다, 그만큼 인력 수요가 줄어 인건비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고 했다."(당시 과기정통부 당국자 출입기자 후일담 중)
그런데 부작용이 생겼다. 행안부 설득 논리가 동사무소 직원들에게까지 퍼졌고, '전산화하면 우리 일자리 없어지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불렀다. 전산화 효율을 높이려면 바뀐 환경에 맞춰 업무처리 절차도 혁신해야 하는데, 오해가 발목을 잡았다.
"전산화 추진으로 발생하는 잉여 인력을 홀몸 어르신을 비롯한 취약 계층 살피기 등 주민 서비스 질을 높이는 쪽으로 재배치하는 등 지방자치단체 직원 업무 구조조정이 병행돼야 했는데 아쉬웠다. 업무처리 절차 개선이 소극적으로 이뤄지며 전산화 이후 종이 소비량이 오히려 늘어나는 부작용까지 일었다."(과기정통부 당국자 후일담 중)
이는 이후 출범한 보수정권이 이전 정부의 국가정보화를 통한 성장 전략을 공격하며 '삽질'로 방향을 트는 빌미로도 쓰였다.
이재명 정부가 공공부문 마중물 전략을 통해 모두의 AI 시대를 열고 AI 3대 강국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런 '소소한 실수'조차 없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자정부 추진 당시 기억을 살려봤다. 김재섭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