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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소통 능력 갖춘 '86세대 맏형', 국민통합 중책 맡아 [2025년]
김은혜 기자 grace@businesspost.co.kr 2025-06-23 0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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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우상호는 이재명 대통령 비서실의 정무수석비서관이다.

1962년 12월12일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오덕리에서 3남1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서울 용문고등학교와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연세대 행정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을 다니면서 총학생회장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초대 부회장으로 활동했다.

16대 총선에서 서울 서대문구갑 선거구에 출마했지만 낙선했다.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대문갑에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18대 총선에서 낙선하고 19대와 21대 총선에서 당선되면서 4선 고지를 밟았다.

여러 차례의 대변인을 거쳐 20대 국회에서 민주당 원내대표를 맡았고 더불어민주당이 2022년 6·1 지방선거에 패배한 뒤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일했다.

합리적 사고와 소탈한 매너를 지닌 달변의 정치인이다.

경영활동의 공과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대통령실 정무수석 비서관으로 임명된 우상호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이 2025년 6월9일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학교 이한열동산에서 열린 제38주기 이한열 열사 추모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단>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 자격으로 추모식 참석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지명된 우상호는 2025년 6월9일 연세대학교 신촌캠퍼스 이한열동산에서 열린 고 이한열 열사 38기 추모식에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 자격으로 참석해 "힘이 닿는 한 민주유공자예우관련법(민주유공자법) 제정을 책임지고 관철하겠다"고 밝혔다.

우상호는 "지난 겨울과 이번 대선, 광장의 많은 분을 보며 이한열 정신이 되살아나고 있는 게 아닌가 감동을 여러 번 느꼈다"며 "추모식을 통해 다시 한번 민주주의에 대한 소중함을 절실히 공유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민주유공자법은 4·19와 5·18을 제외한 다른 민주화 운동 과정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도 유공자로 지정해 본인과 가족에게 혜택을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4년 5월 국회 본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단독으로 의결됐으나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날 유족을 대표해 나선 이한열 열사의 큰 누나 이숙례씨는 다른 민주화운동 유가족의 명예 회복을 당부했다.

연대생이었던 이한열 열사는 1987년 군사정권에 항거하는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맞아 숨졌다. 우상호는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이었고 이 열사 장례 때 민주국민장 집행위원장을 맡았다.

이후로도 우상호는 이한열 추모사업회에서 활동해왔으며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씨는 우상호를 친아들처럼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22년 1월 배은심씨가 별세했을 때도 우상호가 호상(護喪)을 맡았다.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왼쪽 두 번째)이 2025년 6월8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정무, 홍보, 민정수석 인선을 발표하고 있다. 왼쪽부터 우상호 신임 정무수석, 오광수 민정수석, 이규연 홍보소통수석. <연합뉴스>
이재명 정부 초대 정무수석 맡아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6월7일 우상호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정무수석에, 이규연 전 JTBC 고문을 홍보소통수석에, 오광수 변호사를 민정수석에 각각 임명했다고 대통령실이 밝혔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이번 인선과 관련해 "이재명 대통령은 '모든 국민을 섬기고 아우르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강한 의지에 따라, 국민통합과 소통을 책임질 적임자들을 선택했다"라고 설명했다.

대통령실은 우상호 정무수석 임명을 두고 "여야 상생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갖춘 인물로 통합의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는다"며 "오랜 의정 경험을 바탕으로 국정 전반에 대한 높은 이해와 합리성, 뛰어난 정무 감각을 겸비해 대통령실과 국회의 가교역할을 훌륭히 해낼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우상호는 임명 직후 박찬대 더불어민주당 대표 권한대행, 김용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 김선민 조국혁신당 대표대행, 천하람 개혁신당 대표대행, 김재연 진보당 상임대표,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 한창민 사회민주당 대표 등을 예방해 이재명 대통령의 인사말을 전하고 정국 협조를 당부했다.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장으로 활동
더불어민주당 내 최대 의원 모임인 '더좋은미래'(더미래)와 싱크탱크 더미래연구소가 2025년 4월21일 공동으로 정책자료집을 발간했다. 이번 자료집은 '불평등과 격차 완화'를 핵심 열쇠말로, 향후 대한민국의 정책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자료집에는 공공의료, 국민연금, 돌봄, 교육, 부동산, 노동, 농업, 검찰개혁, AI 등 총 11 개의 주제가 담겼으며, 이들 주제는 내부 토론뿐 아니라 외부 전문가들의 연구와 분석 결과도 반영했다 .

더미래연구소 소장 우상호는 "심각한 불평등과 격차는 극우 정치와 사회적 분열의 근원이 됐다"며, "이번 대선은 위기를 기회로 바꿔 정의롭고 따뜻한 공동체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정책자료집은 더좋은미래 소속 국회의원 및 전문가들이 함께 참여해 집필했으며, 향후 대선 국면에서 당의 정책 플랫폼과 공약 개발에 실질적인 기초 자료로 활용될 전망이다 .

앞서 더미래와 더미래연구소는 2025년 2월19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불평등과 격차 해소' 연속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토론회는 '보건·복지 분야, 공공의료 확충 및 돌봄 복지국가 실현'이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더미래는 지금 민주당이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를 격차 해소로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진보적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더미래는 이날을 시작으로 '농업·농촌', '부동산·교육'을 주제로 연속 토론회를 가진 뒤 2025년 3월12일에는 '진보의 새로운 모색'이라는 주제로 총정리 토론회를 열었다.

더미래는 2014년 민주당에서 개혁 성향의 초ㆍ재선 연구 모임으로 출범한 당내 정책 모임이다. 이후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며 친명·친문 등 계파를 초월한 중도·합리적 성향의 의원 모임으로 자리를 잡았다. 제 21대 국회에선 50여 명까지 숫자가 늘었고, 22대 국회에서 조직을 재·개편해 2025년 현재는 현역 의원 35명이 더미래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제 22대 총선에서 ‘민주당 1호 불출마’ 선언
우상호는 2024년 제 22대 총선을 맞아 더불어민주당의 1호 총선 불출마자가 됐다. 2년 전부터 불출마 결심을 했던 그는 2023년 11월 중앙당에 불출마 확인서를 제출하면서 이를 공식화했다.

우상호는 자신이 불출마를 선택했던 이유에 대해 두 가지를 들었다.

첫번째는 ‘국회 내에서 더 이상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생각’이다. 그는 “국회의원을 하면서 대통령 탄핵까지 했다”며 “그 이상의 역할을 국회에서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두번째는 초·재선 때의 열정이 식었다는 점이다. 중앙정치에 관여하는 빈도 수가 늘면서 지역구 관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우상호는 “마음만 먹으면 ‘선수’를 더 늘릴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고 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신 광역단체장에 도전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그는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맞아 당내 경선에 출마한 바 있다. 하지만 박영선 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에게 서울시장 민주당 후보 자리를 내주면서 경선에서 탈락했다.

제 22대 총선 불출마 이후로는 강원도지사 도전설이 정치권에 돌고 있다. 그의 고향이 강원도 철원인 이유가 크다.

이에 대해 우상호는 “아직 지역은 정하지 않았다”며 “광역단체장에 도전하고 싶은 이유는 행정 등의 결정권이 있다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통 진보인사로서 내 철학과 소신을 펼쳐보이고 싶다”고 덧붙였다.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이태원 참사'의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국회의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이 2022년 11월24일 오후 국정조사특위 첫 회의가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박성민 국민의힘 의원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위 위원장 맡아
우상호는 국회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국조특위를 이끌었다.

우상호는 2023년 1월17일 국조특위 활동을 끝마치며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위정자들이 얼마나 무책임하고 책임 떠넘기기식 발언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준 기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우상호는 윤석열 대통령이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문책하지 않는 일을 두고 “책임자들의 무책임함을 더 키우는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매우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그는 국정조사에서 서울시·용산구의 인파관리 대책 미흡, 경찰의 신고 대응 체계 붕괴, 대통령실의 위기대응 체계의 허술함 등 참사 발생 원인과 책임 규명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예비조사 단계에서 유가족, 생존자, 상인 등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하지 못한 부분을 한계점으로 짚었다. 독립적인 조사 기구를 설립해 참사 당일 사건을 재구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우상호는 남은 과제로 "형사 처벌을 위한 노력은 특검(특별검사)으로 가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들기 위해선 별도의 조사 기구를 만들어서 전수조사를 할 필요가 있다. 피해자·부상자·목격자 전언을 바탕으로 세세하게 사건을 재구성해봐야 한다. 이를 기초로 평지 또는 비탈진 데서 인파 이동은 어땠는지 등을 조사해 재발 방지 대책을 만들어야 유사한 유형의 인파 사고를 막을 수 있지 않겠나.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어 여야가 조사위원들을 추천해서 그분들이 전체 사건을 들여다보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앞서 우상호는 2022년 11월24일 더불어민주당의 이태원 참사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위원장으로 내정됐다.

우상호는 과거 민주당 원내대표로서 박근혜정부의 국정농단 특별조사를 이끌었던 경험이 있다.

이태원참사 국정조사는 첫 회의부터 여야 사이 이견 노출로 순탄치 않은 모습을 보여 위원장인 우상호의 역할에 관심이 집중됐다.

우상호는 과거 세월호 참사 당시 유가족들과 소통을 하면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경험도 있다.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022년 8월25일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비대위원들과 함께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지지율 역전' 약속 지킨 비대위원장
비대위원장 우상호는 2022년 8·28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전 대선 후보가 신임 당 대표에 선출됨에 따라 그에게 바통을 넘기고 '평의원'으로 돌아갔다.

앞서 우상호는 2022년 6월7일 의원총회에서 비대위원장으로 선임됐다. 사흘 뒤인 6월10일 당 중앙위 의결로 '우상호 비대위'를 공식 출범했는데 79일 만에 임무를 마무리한 셈이다.

4선의 우상호는 2022년 3·9 대선과 같은해 6·1 지방선거 연패로 격랑에 휩싸인 당을 수습할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86(80년대 학번·60년대생) 그룹'의 대표주자인 우상호는 비교적 계파색이 옅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혔다.

우상호는 비대위 기간 안정적 당 운영을 통해 선거 패배 후유증을 어느 정도 씻고 당내 갈등을 큰 잡음 없이 해소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매주 일요일마다 기자 간담회를 열어 현안에 대응하며 대여 전선의 전면에 서는 한편 언론과의 소통에도 적극 나섰다.

간담회 등을 통해 서해 피살 공무원 사건이나 북송 어민 사건 등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일어난 일들에 대한 여권의 공세에 철통 방어에 나서는 한편 윤석열 정부의 '국정 난맥상'에 대한 대여 공세를 주도했다.

우상호가 '강한 야당', '유능한 민생 야당'을 표방한 것에 발맞춰 원내에서는 고유가·고물가·고금리·고환율 시대에 직장인과 서민 등이 어려움을 겪는다며 '민생우선실천단'을 발족, 여러 현장을 시찰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비대위원장 우상호는 "지지율을 역전시키고 떠나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떠나게 됐다.

지방선거 참패 후 20%대까지 떨어진 민주당 지지율이 여당인 국민의힘을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들이 속속 나왔기 때문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양당간 지지율 추이가 엎치락뒤치락 하는 양상도 보이고 있다.

우상호는 2022년 8월26일 고별 기자회견에서 "25∼26% 정도에서 머물렀던 정당 지지율에서 시작했지만 지금은 여야 지지율이 비슷하거나 조금 앞서는 것 보면, 국민들이 민주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필요하다고 해주는 것 같다"고 자평했다.

유상호는 새 지도부의 과제를 두고 "정책과 노선에 대해 근본적으로 점검했으면 좋겠다. 윤석열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면 반사이익으로 지지율을 올릴 수 있으나, 정작 민주당의 새로운 행동을 만들어내지는 못한다면 2년 뒤 총선에서 고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 우상호는 제 20대 대선에서는 이재명 후보 선대위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아 선거를 진두지휘하기도 했다.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출마한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왼쪽)과 우상호 의원이 2021년 2월1일 서울 금천구 한 스튜디오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시장 후보 지원자들의 국민면접' 방송촬영에 앞서 함께 손으로 하트를 만들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시절 두 차례 서울시장 도전
우상호는 2021년 4월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같은 해 3월1일 치러진 민주당 당내 후보 경선에서 박영선 전 중소기업벤처부 장관과 맞붙었다가 패했다. 우상호의 서울시장 도전은 이번이 두 번째다.

민주당 경선은 당원(50%)·여론조사(50%) 투표로 진행됐다. 우상호는 득표율 30.44%로 박영선 전 장관(69.56%)에 패배했다.

앞서 우상호는 2021년 4월7일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서 가장 먼저 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들었다.

그는 2020년 12월13일 일찌감치 출마 선언을 하며 ‘서울, 다시 시작’, ‘준비된 서울시장’을 기치로 내걸었다.

앞서 우상호는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참여해 박영선·박원순 후보와 대결했고 지지율 14.1%로 3위를 기록했다. 우상호는 2011년 보궐선거 당시 범야권 후보였던 박원순 전 시장 캠프에서 공동 대변인을 맡은 바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주도
우상호는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주도했다.

국정농단 사태가 탄핵정국으로 이어지자 우상호는 초반부터 진영 대결로 가면 보수진영이 결집하고 탄핵소추안에 필요한 새누리당 내 40석이 넘어오지 않을 것으로 판단했다.

우상호는 "정의당처럼 탄핵과 하야 움직임을 같이 갈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 등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직접 약속하는 2선 후퇴 등 절충안을 제시하는 온건 전략을 폈다. 진영 대결 인상을 주지 않도록 대선주자인 문재인 전 대표 측에도 물러서 있는 게 좋겠다고 전했고 문 전 대표 쪽도 납득했다.

이러한 우상호의 전략은 촛불집회와 맞물려 시너지를 냈다. 문재인 전 대표의 거국내각 제안이 거부되자 촛불집회 규모가 급속도로 불어났다. 친박계에 불만을 품고 있고 국정농단의 책임을 공유하기 싫어한 비박계는 우상호와 협상했다. 여기에서 도출된 절충안인 조기하야 요구를 청와대가 거부하자 민주당은 결국 탄핵안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2016년 12월2일 탄핵소추안 상정이 불발되고 다음날 촛불집회에 230만여 명이 나오는 등 촛불민심이 거세졌다.

우상호는 탄핵소추안 표결을 앞두고 중요한 역할을 다른 정당에 대부분 양보했다. 탄핵소추안 제안설명은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가 진행하고 헌법재판소를 담당할 탄핵소추위원단장은 비박계인 권성동 의원이 맡겠다는 주장을 받아들여 탄핵의 상징적 장면을 넘겨주는 대신 탄핵안 가결을 위한 표 계산에 집중했다.

2016년 12월9일 기준 국회 구성은 새누리당 128석, 더불어민주당 121석, 국민의당 38석, 정의당 6석, 무소속 7석이었다. 재적의원 300명 가운데 200명이 찬성해야 탄핵안이 가결된다. 우상호는 의결 당일 당 지도부에 222표 내지 226표가 확보됐다고 보고했다. 결과는 234표가 나왔다. 민심의 압박을 못 이긴 새누리당 의원들이 추가로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분석됐다.

우상호는 이에 앞서 백남기 농민 사건의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열릴 수 있도록 힘썼다.

2016년 9월12일 국회에서 백남기 농민 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2015년 11월14일 제1차 민중총궐기 대회 현장에서 고 백남기씨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의식을 잃은 지 304일 만이었다.

더불어민주당이 '백남기 청문회'를 열겠다고 처음 선언한 것은 우상호 원내지도부 출범 직후인 2016년 5월26일이었다. 국민의당과 정의당까지 야3당이 합의했지만 성과는 지지부진했다.

그러다 그해 8월 대우조선해운 구조조정 문제가 국회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정권 실세들이 청와대 서별관에 모여 구조조정 문제를 졸속으로 합의했고 부실을 야기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우상호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와 협상을 벌여 최경환 의원과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을 '서별관 청문회' 증인에서 제외하는 대신 백남기 청문회를 여는 것으로 합의했다. 당시 민주당의 정치적 실익이 크지 않아 보였기 때문에 의외의 결과라는 반응과 더불어 민주당의 무능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백남기 청문회의 성과는 그리 크지 않았다. 청문회장에 출석한 강신명·이철성 전현직 경찰청장은 혐의를 부인하고 사과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후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지고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되기까지 전개된 과정을 볼 때 백남기 청문회는 '촛불혁명'의 징검다리가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왼쪽)이 2018년 1월11일 저녁 방송된 JTBC ‘썰전’에 출연해 연세대학교 동문인 배우 우현(오른쪽), 안내상씨와 학생운동 시절 함께 했던 일화를 털어놨다. 이날 ‘썰전’에서는 1987년 남영동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대생 고 박종철 열사의 31주기를 맞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 항쟁의 선두에 섰던 우상호 의원이 출연했다.
△'썰전' 출연해 배우 우현, 안내상과 친분 소개
우상호는 2018년 2월11일 저녁 방송된 JTBC ‘썰전’에서 연세대학교 동문인 배우 우현, 안내상과 학생운동을 함께 했던 일화를 털어놨다.

이날 방송된 썰전에는 1987년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을 받다 숨진 서울대생 고 박종철 열사의 31주기를 맞아,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 항쟁의 선두에 섰던 우상호가 출연했다.

이날 방송에서 공개된 사진에는 박종철 열사의 영정 사진을 들고 있는 우상호와 그 옆에서 고개를 숙이고 서 있는 배우 우현의 모습이 담겼다.

우상호는 “저의 신혼집에서 안내상, 우현과 함께 지냈다”라며 두 배우와의 남다른 인연을 전했다.

우상호는 “우현씨는 당시 집회를 주도하는 연세대 사회부장이었다”며 “사진을 잘 보면 우현 씨 머리는 삭발을 한 상태인데, 이는 1987년 4월 13일 전두환 대통령이 호헌 조치를 발표했을 때 연세대 학생들이 항의하는 의미로 머리를 깎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우상호는 “우현에게 ‘단식을 할래? 삭발을 할래?’ 했는데 우현이 굶는 건 못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우현이 삭발을 하고 내가 단식을 했다”고 당시 상황을 회상했다.

MC 김구라씨가 “안내상씨도 학생운동을 열심히 하셨는데 사진에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질문했다.

우상호는 “당시 집회는 총학생회 집행부가 주도했기 때문”이라고 말하자, 유시민 작가는 “내가 알기로는 안내상씨는 지하에서 더 과격한 활동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우상호는 1988년 미국 문화원 도서관에 시한폭탄을 설치했던 안내상을 언급하며 “안내상씨는 미국을 못 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미국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배우 안내상씨는 1988년 폭탄 미수사건으로 총포·도검· 화약류 단속법 위반으로 8개월 복역한 바 있다.

△서대문 지역구에서 연세대 동문 이성헌과 여섯 차례 맞붙어
우상호는 1988년 총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평화민주당 영입 제안을 받았지만 거절했다.

이후 2000년 제 16대 총선를 앞두고 집권당인 새천년민주당에 '젊은 피'로 영입됐다. 서울 서대문구갑 지역에 출마해 득표율 45.16%를 얻었지만 연세대 81학번 동문인 이성헌 신한국당 후보(47.01%)에게 밀려 낙선했다.

우상호는 4년 뒤인 제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서대문갑에서 이성헌 의원과 다시 맞붙었다. 이성헌 후보의 우세가 점쳐졌지만 총선 직전 노무현 대통령 탄핵 사태로 후폭풍이 불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우상호는 46.06% 득표율을 얻어 이성헌 후보를 2.25%포인트 차이로 제치고 국회에 입성했다.

하지만 제 18대 총선은 이명박 정부 출범 직후 치러진 데다 당시 서울 전역에서 뉴타운 공약 바람이 불면서 이성헌 후보가 현역인 우상호를 상대로 약 8% 차이의 격차를 보이며 설욕에 성공했다.

이후 제 19대 총선에선 수도권에서 MB 심판론이 대세가 돼 우상호가 현역인 이성헌 후보를 8.73%포인트 차이로 여유 있게 따돌리며 국회에 재입성했다.

제 20대 총선에선 이성헌과 우상호의 다섯 번째 맞대결이 성사됐다. 서로 2승2패를 주고 받으면서 누가 3선 고지에 먼저 깃발을 꽂을지에 관심이 모아졌다.

당 사무부총장을 지낸 이성헌 후보는 친박 인사임을 강조하면서 집권여당 3선 의원의 힘을 강조했다. 반면 다른 선거구와 달리 국민의당 후보가 없어 사실상 야권 단일후보인 우상호는 박근혜 정부 심판론으로 맞불을 놓았다. 결과는 우상호 후보(54.88%)가 두 자릿수가 넘는 넉넉한 격차(14.61%포인트)로 3선 고지에 올랐다.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우상호 연세대 총학생회장(앞줄 가운데)이 1987년 6월9일 연세대생 이한열씨가 최루탄에 맞아 숨진 뒤 열린 영결식에서 영정을 들고 있다. 우현 연세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이 옆에서 태극기를 들고 있다. 우현은 나중에 배우가 됐다. <우상호 의원 페이스북>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6월항쟁 이끌어
우상호는 군부독재에 마침표를 찍은 1987년 6월항쟁의 주역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힌다.

우상호는 원래 학생운동을 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대 전역 후 운동권과 멀어지면서 취업을 준비하는 것이 일반적 운동권 대학생들의 모습이었는데 우상호는 이례적으로 군 복무 중에 학생운동을 결심하고 제대 후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의 소개로 사회과학 세미나에 참여했다. 문학을 함께 공부했던 친구 박래군씨가 먼저 학생운동에 뛰어들면서 우상호에게도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박래군씨는 나중에 인권운동에 평생 헌신했다.

1987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에 당선돼 학생운동 문화의 변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화염병과 투석전 중심의 학생운동에서 다수가 참여하는 온건한 운동으로의 변화를 시도했다.

이에 강성 학생운동 활동가들로부터 비판도 받았다. 전두환 대통령 이야기를 하던 도중 전두환도 잘한 점이 있다고 주장하다가 동료에게 멱살을 잡히기도 했다.

그러나 우상호가 학생회장으로서 대학생 시위를 비폭력으로 전환하자 학생들의 참여가 급격하게 늘었다.

전두환 정권이 1987년 4·13 호헌조치를 내놓자 야당, 시민사회, 학생운동이 강경해지는 가운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터졌다. 이에 서울의 학생운동 진영은 대규모 집회를 추진하고 집회 전날인 1987년 6월9일 예비집회를 열었는데 이때 우상호의 대학 후배인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을 맞고 사망했다.

이후 6월항쟁 과정에서 우상호는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으로서 대규모 시위를 이끌었다.

비전과 과제/평가

◆ 비전과 과제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맨 왼쪽부터),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 정무수석, 고기동 행정안전부 장관 직무대행, 타마라 모휘니 주한 캐나다 대사가 2025년 6월16일 성남 서울공항에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캐나다로 출국하는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탑승한 공군 1호기를 향해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상호는 이재명 정부의 첫 정무수석으로서 갈등해소와 통합에 힘써야 한다. 특히 우상호는 대통령 취임 1년 만에 치러지는 2026년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할 수 있도록 대비해야 한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2025년 6월8일 대통령실 수석 인사를 발표하면서 “이 대통령은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거듭 강조해왔다”며 “이번 인사는 국민통합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밝혔다.

강 비서실장은 이어 “이 대통령은 보수와 진보가 아닌, 국민과 대한민국만 있다는 국정 철학 아래 국민통합과 소통을 통해 민생 문제 해결에 집중해 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전했다.

우상호는 이러한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운영 철학을 실현하기 위해 여야를 초월한 소통은 물론이고 국민 갈등을 해소하고 통합을 이끌어야 한다.

일각에서는 우상호가 1973년생으로 3선 의원 출신인 강 비서실장보다 선수(選數)가 높은 ‘정치 선배’인 만큼 개헌 등 정치개혁이나 대선 이후 정치권 개편 과정에서 이 대통령이 주문하는 핵심 임무를 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 안팎에선 강원도지사 후보군으로 꼽히는 우상호를 정무수석에 임명한 것이 2026년 지방선거를 대비한 포석이라는 해석이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취임 1년 만에 치러지는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승리해야 정권이 안정적으로 순항할 수 있다는 생각이 강하다”며 “차세대 후보군을 다양하게 키우고 경쟁시키는 의미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 평가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왼쪽)이 2025년 6월10일 국회에서 국민의힘 김용태 비상대책위원장과 만나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우상호는 이재명 정부의 정무수석으로서 여야 간의 소통과 국민 통합을 위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에 향후 정치적 행보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대표적 586운동권 세대 정치인으로 '586세대의 맏형'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서의 역사성과 함께, 정치적 경험과 소통 능력을 겸비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합리적 중도파로서 어느 특정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행보를 걸어왔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인다. 특유의 소탈함 덕분에 언론과 관계도 매끄러운 편이다.

그는 2022년 비대위원장 시절 당헌·당규 개정 과정에서 쓴소리를 한 적도 있다. 우상호는 당시 "당이 의장 후보 선거로 시끄러워져 몇 마디 했다가 '왕수박'(강성 당원들이 비이재명계에 사용하는 멸칭)으로 몰리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04년 이라크 파병 반대 결의안에 서명했다가 철회하며 운동권 후배들로부터 '배신자'라는 소리도 들었다고 한다.

조리 있는 말솜씨와 촌철살인의 멘트로 유명한 달변가로 손꼽힌다.

1998년 국민회의 고건 서울시장 후보 선거대책본부 대변인으로 시작해 야당 대변인을 8번이나 했다.

대변인은 언론 노출도가 올라가는 장점이 있으나 높은 업무강도 때문에 여러 번 하는 경우가 드물고 지역구 국회의원이 여러 번 맡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덕분에 당을 위해 희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변인 경험이 많아 다른 정치인과 달리 유연성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86그룹 가운데 언론과 폭넓게 소통하는 몇 안 되는 인사다.

대변인을 하며 '칼을 찌르되 비틀지 않는다'는 격언을 마음에 품었다고 한다. 이는 상대의 자존심까지 짓밟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달변가로서 우상호의 능력은 그가 시인을 꿈꾼 문학도 출신이라는 것으로도 설명된다.

초등학교 때부터 시인을 꿈꿨고 연세대 국문과 재학 시절 오월문학상 시 부문 당선, 윤동주 문학상 수상 등으로 예비시인의 첫걸음을 내디뎠다. 대학진학 당시 여고 국어선생님을 목표로 했다고 한다.

무척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고 회고한다. 친척들의 도움으로 형제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했으며 대학에서도 아르바이트와 공사판 노동 등으로 학비를 벌었다.

대학 진학 초기에는 운동권을 멀리했다고 한다. 당시 스스로를 "회색지대에서 방황하는 소시민"이라고 평가했다.

사건사고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우상호 전 의원(맨 오른쪽) 등 정치인 8명이 2024년 10월28일 방송된 JTBC GOLF '클럽 하우스'에서 '골프를 사랑한 정치인' 특집 방송에 출연하고 있다. 서원밸리 컨트리클럽에 모인 여야 정치인 8명은 9홀 라운드를 하며 방송 최초로 골프 실력을 뽐냈다.
△경실련 '22대 총선 공천 배제' 34명 명단에 포함
우상호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경실련이 작성한 공천 배제 대상자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경실련은 2024년 1월7일, 2023년 현역 국회의원의 부동산재산과 주식재산, 발의건수와 결석률, 입법성향 등을 조사·발표했다.

앞서 경실련은 2023년 11월28일 불성실·부도덕 의심 현역 국회의원 22명 명단을 발표했고, 이후 자체조사와 의원실 해명을 바탕으로 추가 검증을 실시했으며 이번에 '현역 국회의원 공천 배제·검증 촉구 최종 명단'을 확정했다.

경실련의 자질 검증 기준은 대표발의 건수, 본회의 결석률, 상임위 결석률, 사회적 물의, 의정활동 기간 부동산 과다 매입, 불성실 의정활동 의심 상장주식 과다보유, 과거 전과경력, 반개혁 입법 등 8가지 항목을 제시했다. 경실련은 자질 검증 기준에 따라 '공천 배제 명단'과 '검증 촉구 명단'을 구분해 선정했다.

경실련의 자질 검증 결과 공천 배제 현역 국회의원은 34명(중복 제외)이 선정됐다. 공천 배제 명단은 문제가 확실하다고 판단된 경우다.

구체적으로 우상호는 김태호 의원(국민의힘·경남 산청군함양군거창군합천군), 권성동 의원(국민의힘·강원 강릉시)과 함께 본회의 결석률 상위 3명에 포함됐다.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비판하며 욕설
우상호는 2023년 6월7일 JTBC 인터뷰 방송 중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의 "만약 검사 독재가 있었다면 이재명 대표는 지금 감옥에 있을 것"이라는 발언에 대해 "쓸데없는 소리하고 지X이야"라고 말했다.

이에 국민의힘은 2023년 6월8일 한동훈 비대위원장을 비판하며 욕설을 사용한 우상호를 겨냥해 "대한민국을 더는 구태 운동권 세력에 맡겨둘 수 없다"며 정계 은퇴를 촉구했다.

윤희석 선임 대변인은 논평에서 "우 의원은 총선 불출마로 그칠 것이 아니라 그대로 정계 은퇴하면 된다"며 "방송에 나와서까지 상대 당 대표에게 저급한 욕설을 쓰는 걸 보니 평소 모습은 어떨지 안 봐도 훤하다"고 말했다.

윤 선임대변인은 "운동권 후배들에게 그 지위, 그 자리를 세습할 생각은 그만 접으라"며 "운동권의 구시대적 마인드, 끼리끼리 문화, 비뚤어진 특권 의식이야말로 대한민국 발전을 가로막고 있는 돌덩어리"라고 비난했다.

그는 "우 의원으로 상징되는 86 운동권들이 대한민국 발전과 정치 개혁을 위해 할 일은 남아있지 않다"며 "국민의힘은 이번 총선에서 '86 운동권 특권 세력 청산'이라는 시대정신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말했다.

△농지법 및 장사법 위반 의혹
국민권익위원회가 2021년 6월7일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과 가족 816명의 최근 7년 동안 부동산 거래 내역을 전수조사한 결과 우상호의 농지법 위반 의혹을 제기했다.

우상호는 2013년 6월 경기도 포천시에서 옥수수와 콩을 재배하겠다고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발급받아 취득한 농지에 곧바로 어머니 묘지를 조성했다.

묘지는 거리 제한 등 다양한 제약 사항이 있어서 거래허가를 받기가 어렵다. 이 때문에 우상호가 손쉽게 묘지를 조성하기 위해 '농업 경영' 목적의 농지취득 자격증명을 발급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농업 경영 목적으로 농지를 사놓고 곧바로 묘지를 조성한 행위는 농지법 위반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우상호를 비롯해 문제가 제기된 의원 12명에게 자진 탈당을 권유했다. 하지만 우상호는 "어머니 묘지로 쓰기 위해 구입한 농지로 계속 농사를 지어와 위법 소지가 없다"며 탈당을 거부하고 당 활동을 중단했다.

이후 8월19일 경찰 수사 결과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당 활동을 재개했다.

△'박원순 옹호' 2차 가해 논란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우상호가 2021년 2월10일 “박원순 시장은 제게 혁신의 ‘롤 모델’이었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논하던 동지”라며 적극 옹호하고 나섰다가 2차가해 논란을 일으켰다.

당 경선을 앞두고 지지층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분석되지만, 당 안팎에서는 박 전 시장 성추행 의혹으로 인한 보궐선거의 책임이 있는 여당 후보로서 ‘2차 가해’를 저질렀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우상호는 이날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박 전 시장이) 얼마나 힘드셨을까! 어떻게 견디셨을까!”라며 박 전 시장을 애도하는 글을 올렸다.

우상호는 최근 박 전 시장의 부인 강난희 여사가 박 전 시장의 무고를 주장하며 ‘내 목숨이 다하는 순간까지도 나의 동지’라고 쓴 편지글을 언급하면서 “(강 여사의) 글을 읽으면서 울컥했다. 이를 악물고 있는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박 시장의 정책을 계승하고 그의 꿈을 반전시키는 일, 제가 앞장서겠다”며 “박원순이 우상호고, 우상호가 박원순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서울시 정책을 펼쳐가겠다”고 했다.

우상호의 글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내 강성 지지층에 호소하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설 연휴 직후 펼쳐질 당 후보 경선은 당원들의 투표로 이뤄지는 만큼 박 전 시장 추모에 적극 나서는 식으로 표심을 공략하고 나선 것이라는 풀이가 일각에서 나왔다.

△코로나19 방역수칙 위반 논란
우상호가 동료 국회의원과 구청장 등 10여 명과 함께 찍은 기념사진을 놓고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어겼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던 우상호는 2021년 2월4일 서울 신도림역에서 1호선 지하화 관련 정책 발표를 한 후 민주당 의원 및 구청장 10명과 손잡고 'X자 악수'를 하는 모습으로 사진을 찍어 방역수칙 위반 논란이 있었다.

당시 방역수칙에 따르면 코로나19 거리두기의 핵심 수칙 가운데 하나가 '신체접촉(악수 혹은 포옹 등)을 하지 않을 것'이다. 우상호는 1월31일 광운대역에서 열린 행사에서도 비슷한 포즈로 사진을 촬영했다.

이와 관련해 우상호는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다가 논란이 커지자 "부주의했다"며 사과했다.

보궐선거 패배 다음날인 4월8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5명과 함께 술을 마신 사실이 확인되면서 '5인 이상 집합금지' 방역수칙 위반 논란이 제기됐다.

우상호를 포함한 4인 일행에 다른 일행이 합석한 형태였다. 주변에서 사진을 찍고 '방역수칙을 어긴 것 아니냐'는 지적을 하자 식당 사장이 우상호 측에 제자리로 돌아가달라고 요청하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논란이 불거지자 우상호는 "동행인과 함께 지나가는데 '우상호를 좋아한다'며 앉아서 한 잔 받으라고 해서 5분 있다가 나왔다"고 해명했다.

다만 선거 다음날 보궐선거 경선 후보의 처신으로는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2000년 5월17일 밀레니얼 NHK 사건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우상호는 2021년 2월 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한 국민의힘 이언주 전 의원과 설전을 벌이며 지난 2000년 자신을 포함해 86그룹 정치인들이 5·18 전야제날 광주 ‘새천년NHK’라는 상호의 유흥주점에서 술자리를 가져 논란이 된 사건에 대해 “제 인생에서 가장 후회하는 일”이라고 했다.

우상호는 “21년 전 일은 당시 진솔하게 국민에게 사죄드렸고 당사자들에게도 여러 번 사과드렸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마치 몸에 박힌 화살촉처럼 저를 경거망동 못하게 만드는 기억이기도 하다”며 “저는 제 자신이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는 자각 속에서 살아왔고, 그런 실수를 바탕으로 더 겸허해질 수 있었다”고 했다.

이언주 전 의원은 당시 “우상호는 5·18 전야제날 전남 광주의 새천년NHK 룸살롱에서 송영길, 김민석, 박노해 및 여성 접대부들과 어울리면서 해당 방에 돌아온 임수경 전 의원을 손으로 거칠게 잡아끌며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을 했던 사람”이라며 “이렇게 여성을 폄하하고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사람이 성추행이 원인이 돼 생긴 보궐선거에 출마하다니 얼마나 서울시민들을 우습게 여기면 그러겠느냐”고 비판했다.

새천년NHK 사건은 2000년 5월17일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 전야제 행사에 참가하기 위해 광주광역시를 방문한 386세대 정치인들이 전야제가 끝난 바로 직후 시내의 '새천년NHK'라는 유흥주점에서 다수의 여성 종업원을 대동하고 술을 마셔 논란이 된 사건이다.

새정치의 희망을 자처하던 86세대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박노해 시인, 이종걸 의원, 김태홍 의원 등 인사들의 추태로 큰 파문이 일었으며 특히 우상호는 임수경에게 폭언하여 도덕성 논란이 일었다.

이 사건은 잠시 술자리에 참석한 임수경이 386 커뮤니티인 '제3의 힘'에 올린 게시글을 통해 세간에 알려졌다.

당시 기사들은 대부분 '5·18 전야제 술파티 파문'과 같은 제목으로 사건을 보도했고 이후 한동안 인터넷 블로그 등지에서도 '5·18 전야제 술파티 사건' 등으로 회자됐다.

그리고 한동안 이 사건은 오랫동안 잊혀져 있다가 해당 사건 연루자들이 대거 거물급 정치인으로 성장한 2010년대 후반 다시 재조명됐다.

경력/학력/가족
◆ 경력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우상호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후보가 2004년 4월 15일 치러진 17대 총선에서 서울 서대문갑 국회의원에 당선 확정 후 부인 이현주씨와 함께 두 팔을 들어보이고 있다. <우상호사료관>
1987년 연세대학교 총학생회장,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 부의장을 맡았다.

1994년 도서출판 두리 대표와 월간 ‘말’지 기획위원을 맡았다.

1997년 비디오그래픽스 전무이사를 지냈다.

2001년 미국 콜로라도주립대학교 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을 거쳤다.

2004년 제17대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에 당선돼 원내부대표를 맡았다.

2006년 열린우리당 대변인을 맡았다. 18대 총선 낙선 이후 통합민주당에서 원외대변인을로 활동했다.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 소속으로 재선에 성공해 원내부대표를 맡았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3선 고지에 올랐고, 같은 해 5월 원내대표에 선출됐다.

2020년 21대 총선에서 4선에 성공했다.

2021년 더불어민주당 4.7서울특별시장보궐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다.

2022년 더불어민주당 제20대대통령중앙선거대책위원회 총괄선거대책본부장으로 활동했다.

2022년 6월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2022년 11월부터 2023년 1월까지 국회 이태원참사국정조사특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2024년 2월 이한열기념사업회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24년 재단법인 더미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다.

2025년 4월 더불어민주당 제21대 대통령선거 중앙선거대책위원회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2025년 6월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에 선임됐다.

◆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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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상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의 가족은 초등학교 6학년을 시작할 무렵, 고3 큰 형을 대학에 보내려고 어머니와 큰 형, 우 수석 세 가족만 서울 성북구 종암동 달동네로 이사 왔다. 이후 고등학교를 졸업한 누나가 서울에 와서 취직해 둘째 형과 우 수석를 건사했다. '우상호의 첫 번째 이야기' 중에서.< '촌놈 우상호' 블로그>
서울 숭례초등학교를 나왔다.

광운중학교를 졸업했다.

1981년 용문고등학교를 졸업했다.

1989년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2006년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 가족관계

배우자 이현주씨 사이에 2남1녀 우종혁, 우종하, 우지수씨를 두고 있다.

◆ 상훈

2017년 백봉라용균선생기념회 백봉신사상 올해의 신사의원 베스트10에 선정됐다.

2020년 대한민국공공정책대상 의정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 기타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매년 한 차례 공개되는 국회의원 재산 정보(국회 공보)에 따르면 우상호는 2024년 기준 12억8108만3000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는 건물 6억7397만5000원, 부동산에 관한 규정이 준용되는 권리와 자동차·건설기계·선박 및 항공기 704만 원, 예금 5억6617만 원, 토지 3389만8000원 등을 포함한 금액이다.

1983년 1월 입대해 1985년 6월 육군 병장으로 만기전역했다.

저서로 '촌놈'(2004),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다면'(2016), '민주당 1999~2024'(2024, 메디치미디어)을 냈다.

개신교(예장통합)이며 연희동교회의 집사다.

우상호는 골프를 즐기는 정치인으로 방송에 소개되기도 했다.

2024년 10월28일 JTBC GOLF '클럽 하우스'에서 방송된 '골프를 사랑한 정치인' 특집에 우상호를 비롯 여당 의원으로 신영균, 정의화, 주호영, 김성태 의원이, 야당 의원으로는 권노갑, 정세균, 우윤근 의원이 출연했다.

어록
[Who Is ?] 우상호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비서관
▲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총괄선대본부장이 2022년 3월 이재명 후보와 함께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등으로 식사를 하고 있다. 우 총괄선대본부장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사진을 공개했다. 우 총괄선대본부장은 사진과 함께 "어제 청계촛불광장 유세를 마치고 함께한 선거운동기간의 마지막 저녁 식사"라며 "선거운동 기간 내내 (이 후보가) 기대한 것 이상의, 상상한 것 이상을 보여줘서 행복했다"고 적었다. <우상호 페이스북>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 혹은 전광훈 목사와 같은 극우 세력과 단절해야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는데 마지막의 마지막까지도 우유부단했던 것이 이번 (대선의) 패인이다. 초반에 이미 보수를 총결집하고 중도로 외연을 확장하는 것이 전통적인 보수 정치 세력의 선거 기법이었다. (근데) 마지막까지도 내부 단속에만 열중한 것을 보면 매우 큰 오류를 범했다. 사실 대한민국 지형에서 보수 유권자들이 더 많기 때문에 (김문수 국민의힘 대통령선거 후보의 득표율은) 왜소한 득표율이다. 원래 40% 중반 정도는 너끈히 달성하셔야 하는데 보수조차 총결집시키지 못했다.” (2025/06/04 YTN라디오 ‘뉴스 파이팅, 김영수입니다’ 인터뷰 중 '이번 대선 결과를 “완벽한 심판”이라고 평가하며.')

"국민의힘 의원도 ‘왜 이재명을 도우러 기어나오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국민의힘 의원들 내부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이 좀 안 보였으면 좋겠다는 여론이 다수인 건 맞다. (국민의힘 안에서) 부글부글 정도가 아니라 제가 아는 국민의힘 의원도 ‘왜 그렇게 때만 되면 이재명을 도우러 기어나오는지 모르겠다’는 표현을 써서 제가 막 웃었다. (윤 전 대통령이) 자기를 지지하는 층은 자기 말을 들을 테니까 이런 망상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다.” (2025/05/22,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 중 '윤석열 전 대통령이 부정선거 관련 영화를 관람한 데 대해.')

"문제가 있다고 다 탄핵하는가 심 총장이 잘못했다. 저도 분노한다. 그러나 이게 탄핵할 사안인가. 탄핵하려면 위헌·위법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법률 위반이 아니라 잔수를 두고 잔머리를 굴린 것이다. 판사의 판결 결과에 따라서 (즉시 항고 포기를) 한 것이기 때문에 위법·위헌이 아니다. 그러니까 탄핵 심판으로 가면 기각된다. 냉정해야 한다. 탄핵이 나중에 기각되더라도 보복을 위해 탄핵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지 모르지만, 다가올 수 있는 대선에 도움이 되는가. 우리가 강수를 뒀을 때 지지율이 떨어졌지 않는가. 지금 화도 나도 법 집행의 문제 속에 숨겨진 작은 음모 혹은 잔수들이 다 보이지만, 이것은 우리가 정권을 잡은 다음에 바로 잡기로 하자." (2025/03/12,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당내에서 제기되는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 주장'에 대해)

"우리 입장에서 보면 김문수 장관이 대통령 후보가 되면 상대하기가 쉽다. 그분의 살아온 삶이 대통령감은 아니기 때문이다. 극좌에서 극우로, 경기도지사 하다가 대구 갔다가 서울로 왔다 갔다 하는 등 안정감 있는 후보로 볼 수 없다. 오세훈 후보가 상대하기 어렵다. 지난 20대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가 0.74%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던 원인이 서울이다. 서울에서 이겨야만 이번 대선도 승리할 수 있는데 그런 측면에선 서울시장 출신 오세훈 후보가 (여권에서) 제일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2025/02/01, YTN라디오와 인터뷰 중에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감정이 개입된 판결이다. 유무죄 판단에 대한 판사의 근거는 차치하더라도 이재명 대표의 옷을 벗기겠다는 목적이면 (벌금) 100만원 이상만 때리면 된다. 그런데 징역형을 내렸다는 건 감정이다. 저도 전과 2범이다. 선거와 관련해서는 우리가 사소한 실수도 엄하게 다룬다. 선거법 위반은 ‘잘 부탁합니다’ 이 한마디가 사전선거운동이라고 해서 70만원을 받았다. 허위사실유포죄 관련해서도 옷 벗은 분들도 많고 살아난 분도 많다. 지금까지의 100여건 사례를 분석해보면 이런 경우에 징역형 내리는 걸 처음 봤다. 이건 좀 심하다는 느낌이 들었고 판사가 판결에 감정을 개입시키면 안 된다. 2심 가서 (무죄를) 기대해봐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 (2024/11/29,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 중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내려진 징역형 집행유예 판결에 대해.')

"당이 의장 후보 선거로 시끄러워져 몇 마디 했다가 '왕수박'(강성 당원들이 비이재명계에 사용하는 멸칭)으로 몰렸다. 내가 사랑받고 싶으면 인기가 있을 발언으로 어떤 것을 하면 되는지 다 알지만, 그걸 하지 않는 이유는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당이 안 깨지고, 이재명 대표가 빛나고, 정권 교체에 도움 되기 때문이다." (2024/06/20, 저서 '민주당 1999∼2024' 출판기념회에서.)

“유가족의 눈물로 시작해서 유가족의 눈물로 끝난 국정조사였다. 개인적으로 국정조사 기간이 굉장히 힘들었다. 어떻게 하다 159명의 희생자를 만들어내고 국민들에게 아픔을 주는 대한민국이 됐나. 공감 능력 없이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데만 급급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나. 슬픔과 분노가 컸다.” (2023/01/17 '이태원 참사 국조특위 활동 종료 후 인터뷰에서 '위원장으로서 소회'를 묻는 질문에)
Cjour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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