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주요 기업들이 변화와 쇄신에 방점을 둔 연말 인사를 실시했다. 경제 성장 부진과 글로벌 정세 불안에 대응하고 새 성장동력을 찾으려는 오너와 이사회 의지가 반영됐다. 이번 인사에서는 각 기업별로 위기 돌파에 특명을 안게 된 ‘키맨’의 등장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중장기 목표 수립과 실행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에서 촉발된 탄핵 정국 속에서 존재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비즈니스포스트는 올해 실시한 인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키맨의 주요 역할과 과제를 짚어본다.
-글 싣는 순서
①롯데그룹 신유열 시대 성큼, 롯데지주 이동우·노준형 위기극복 해법 낸다
②삼성전자 한진만 파운드리 구원투수 주목, 2나노 기술력으로 위기 탈출 이끈다
③LG전자 김영락 가전구독 모델 정착 1등 공신, 100조 신시장 개척 가속도
④KB금융 비은행 첨병에서 은행 경쟁력 강화 수장으로, 이환주 ‘리딩뱅크’ 탈환 노린다
⑤화학업계 물갈이 비껴간 LG화학 신학철, 사업구조 개편에 주마가편
⑥뜨거울 2025년 정비사업 시장, ‘주택전문가’ 이한우 현대건설 1위 수성에 무거운 어깨
⑦40년 `철강 외길` 철강 전문가 포스코 이시우, 업계 불황 속 수익성 회복 해결 중책
⑧ 우리은행 내부 동요 줄여 재도약 기틀 다진다, 정진완 기업금융 확대 승부수 주목
⑨삼성SDS 호실적에도 변화 선택, 새 선장 이준희 AI 시대 맞아 신사업 이끈다
⑩넷게임즈부터 11년째 대표 지낸 넥슨게임즈 박용현, 넥슨그룹 신작 라인업 주도
⑪TSMC 웨이저자 회장 체제로 세대교체 성공적, 2나노 AI반도체로 파운드리 1위 굳힌다‘원점’
[비즈니스포스트] “우리은행의 가장 큰 경쟁력은 우리 직원이다.”
정진완 차기 우리은행장 후보는 내정 뒤 첫 출근길에서 무엇보다 임직원을 강조했다. 우리은행이 잦은 금융사고 등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내부 분위기를 다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의 키맨으로 발탁된 ‘영업 전문가' 정 후보가 실력으로 우리은행과 우리금융 도약을 이끌고 안팎의 의구심을 지워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12일 은행권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정진완 우리은행장 후보 제1과제로는 내부 분위기 수습이 꼽힌다.
우리은행은 전임 회장 관련 부당대출 등 금융사고로 내부사기가 크게 떨어진 데 더해 10월 말 돌연 대출전략을 전면 수정하면서 내부 불만도 커졌다.
우리은행은 당시 기업대출을 사실상 중단하는 방향으로 대출전략을 대대적으로 수정했는데 각 영업점에 주던 신규 기업대출 금리 전결권도 본사로 제한하는 내용이 담겼다. 각 영업점마다 부여하던 우대금리를 없애 기업대출을 조이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조병규 행장은 이를 두고 사과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기업금융은 그만큼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이 지난해 취임한 뒤 ‘기업금융 명가 부활’을 주문하며 공들인 분야였기 때문이다.
조 행장도 이같은 임 회장의 기조에 맞춰 발탁됐고 기업금융 특화창구 ‘BIZ프라임센터’를 주요 산업단지에 만들어 나갔다.
그 결과 우리은행 기업대출 잔액은 9월말 기준 지난해 말 대비 11.9% 늘어나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큰 증가폭을 보였다. 공격적 영업이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였다.
우리은행은 기업대출 확대 등에 힘입어 올해 들어 3분기까지 사상 최대 실적을 거뒀다. 3분기까지 연결 기준 순이익(지배주주)으로 2조5240억 원을 거두며 지난해 연간 순이익을 3개 분기만에 뛰어넘었다.
하지만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등에 따른 자본비율이 문제되자 갑자기 기업대출을 줄이는 쪽으로 방향을 튼 것이다.
정 후보도 급선회에 따른 현장 혼선을 인식하고 내정 뒤 첫 출근길 임직원 다독이기를 가장 강조한 것이다.
그는 내정 뒤 첫 출근길에서 “은행 성장을 위해 제일 큰 부분은 현재 직원 사기와 교육”이라며 “우리은행의 직원들이 지금은 갈피를 못 잡아 우왕좌왕하지만 조만간 잘 이겨내고 저와 함께 고객을 위해 잘 일할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우리금융과 핵심 계열사 우리은행이 나란히 올해 ‘도약’을 노리는 만큼 정 후보는 내부 분위기를 다독이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 조병규 우리은행장은 올해 목표로 '은행권 순이익 1위'를 내세웠다. 은행장이 순이익 1위를 내거는 사례가 흔치 않은 만큼 담대한 비전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됐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신년사에서 ‘선도 금융그룹 도약’을 목표로 제시했고
조병규 행장은 올해 초 ‘은행권 순이익 1위’를 목표로 제시하기도 했다.
정 후보는 이에 맞춰 내년 우리은행이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시야를 넓히는 흐름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은행 순이익은 4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 가운데 가장 적지만 전체 원화대출 잔액은 9월 말 기준 340조 원 가량으로 4대 은행 가운데 KB국민은행(약 361조 원)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한일은행 시절부터 이어진 삼성그룹과 인연 등 대기업 대출 몫이 크다. 우리은행 대기업 대출 잔액은 9월 말 기준 54조8280억 원으로 4대 은행 가운데 가장 크고 2위 KB국민은행(42조6천억 원)과도 10조 원 이상 차이가 난다.
정 후보는 첫 출근길에서 "우리은행 모태는 조선 상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곳이다"며 “저는 영업만 30년 했고 은행과 중소기업 영업은 제가 톱 클래스다”고 말했다.
기업 영업에 자신감을 드러낸 것인데 정 후보의 구상은 이르면 이날 발표되는 부행장 인사와 조직개편으로 드러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부문장제도를 없애는 동시에 부행장 및 본사 조직을 줄이는 대대적 쇄신이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인사를 통해서는 임 회장의 위기 대응 구상도 엿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금융은 우리은행 인사와 계열사 대표 인사를 함께 낼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은행 관점에서는 잇단 금융사고에 금융당국의 거센 압박을 받고 있었지만 금융감독원 검사결과 발표가 내년 1월로 미뤄져 안팎에 쇄신 메시지를 전달할 시간은 번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금융이 금융사고와 계파 갈등으로 내홍을 겪는 가운데서도 '영업 전문가'인 정 후보를 발탁한 데는 임 회장이 그동안 강조한 '지주는 전략, 계열사는 영업'이란 흐름을 이어간 것으로 해석됐다.
정 후보는 임 회장과 인연이 오래돼 '키맨'으로도 여겨진다. 임 회장은 20년 전 영국 런던에서 근무하던 시절 정 후보와 인연을 쌓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후보는 우리은행 기업금융 분야에서 주요 경력을 쌓았다. 1968년에 태어나 포항제철고등학교와 경북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95년 한일은행으로 입행해 우리아메리카은행과 종로3가지점장, 기관영업전략부장, 중소기업전략부장, 삼성동 VG영업그룹장, 테헤란로 VG영업본부장, 본점영업부 VG영업본부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중소기업그룹 부행장에 올랐다. 김환 기자